병원에 입원하는 동안은 출혈 때문에 당장의 걱정을 하느라 애도할 여유가 없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나에게는 심전도 기계가 연결되어 있어서 시끄러웠다. 삐-삐- 기계소리에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는 다른 병실로 옮겼다.
혼자 눈물을 훔치고 있으면 간호사가 불쑥 찾아와서 출혈양을 체크했고, 밤에도 낮에도 수시로 와서 혈압을 재고 피검사를 위해 내 몸에 바늘을 꽂아댔다.
빨리 집에 가서 실컷 울고 싶었다.
드디어 퇴원해서 집에 왔다.
냉장고에는 시어머니께서 만들어준 미역국과 반찬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나를 혼자두지 않으려고 아껴두었던 연차를 며칠 썼다.
유산을 겪어본 맘카페 인생 선배들이 유산도 출산처럼 몸조리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해서 나는 수면양말을 신었다.
미역국, 남편, 수면양말..
이제 나의 공간에서 마음껏 슬퍼하기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내가 사랑하는 코코(언니네 강아지)까지 위로를 돕기 위해 남편이 데리고 왔다.
슬픔을 제대로 슬퍼하지 않으면 우울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슬픔을 참고 사는 사람이 그러했을까. 내가 아는 사람은 입꼬리가 내려간 표정을 매일 짓더니 나이 들어서는 그 표정이 그 사람의 얼굴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제대로 슬퍼한 뒤에 슬픔을 떠나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작정하고 슬퍼하려니 슬프지가 않았다.
우리 집에는 당근마켓으로 나눔 받았던 아기 바운서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데 그걸 봐도 슬프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덤덤하게 보냈다. 이상하리라만큼 기분도 좋았다. 종종 눈물이 난 적은 있지만 감정을 쏟아서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가슴이 미어터질 줄 알았는데, 내 눈물로 우리 집은 대홍수가 날 줄 알았는데 막상 집에 오니 마음이 편했다.
내가 강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
눈물이 홍수처럼 터졌을 때는 아기 물건을 봤을 때도 아니고 임신을 추억하며 말할 때도 아닌, 아주 의외인 곳에서 발생했다.
그 시점은 개가 짖었을 때였다.
먹보 코코는 내가 간식을 주지 않자 간식 창고를 보며 크게 짖어댔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니 나도 모르게 소리 빽 질렀다. 그리고는 엉엉 울었다.
나의 슬픔은 생뚱맞게 개가 짖어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코코가 나쁜 놈이 된 황당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생명체에게 내가 화가 났을 리가 없는데 내 감정은 정상이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나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남편은 안절부절못하고, 코코는 히융하면서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이 눈물을 닦아주며 그만 울라고 했다.
“오빠, 나 이상해.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너무 괴로워.”
그동안 우울감의 밑바닥을 경험한 것은 밑바닥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땅 속으로 꺼진 느낌이었다.
이 감정은 그동안 쌓아왔던 나의 빅데이터에는 없는 새로운 정보였다. 잠깐이었지만 무서운 감정이었다.
남편 품에서 울다가 진정이 되었고, 코코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에게 화낸 게 아니야 미안해. “
코코는 잠시 나를 기다려주더니, 다 울었으면 간식을 좀 주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죄책감이 덜 들게 해 줘서 고마웠다.
위로 차 왔다가 봉변당한 개 '코코'
그날 이후 몇 차례 훌쩍이긴 했지만,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슬픔이 나를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서둘러 해피엔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부터는 내가 원했던 대로 '이제 다 울었다'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불과 2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게 나도 조금 신기했다.
마음이 괜찮아지니 이제 수습할 일이 생각났다. 임신을 축하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유산된 사실을 알려야 했다.
이 불편한 소식을 언제 알릴지 기준은 내가 전화로 말하면서 울지 않을 때로 정했었는데, 나는 유산되고 2주가 지나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내 슬픔을 일시불로 처리할 수는 없겠지만 당장 치러야 할 슬픔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잔여 슬픔은 계절이 바뀌면 저절로 해결될 테니..
뜨거웠던 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의 냄새를 맡으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