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오후 - 따뜻한 해 질 녘의 분위기에 녹다
연착 끝에 드디어 오후 늦게 미야코지마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에 20년 넘게 살면서 오키나와에 다녀온 건 의외로 "처음"이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언어를 배우고, 정착하고 어느 정도 안정되게 먹고 살 때까지는 여행을 할 생각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볼일도 없이 "휴양지"로 여행을 간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11월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고, 공항 주변에는 열대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일본 국내라 잊고 있었지만 사실 오키나와의 섬들은 북위 24~27도로 대만과 위도가 비슷하다. “아, 여긴 진짜 일본 최남단의 섬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수기이기도 했지만, 미야코지마의 공항은 규모도 작아 본토나 대도시의 공항과는 전혀 다른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따뜻한 공기 속에서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래서인지 난 그냥 남편이 끌고 가는 대로 정신을 놓고 따라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원래는 렌터카 회사에서 제공하는 밴이 있었는데, 남편이 미처 그걸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택시를 잡아탔고, 5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라 큰돈이 들지는 않았지만... 준비도 없이 여행지로 오면 당연히 생기는 일인 거 같기도 하고.
렌터카를 수령하자마자, 숙소로 향하면서 아이 셋을 데리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언제나 그렇듯 슈퍼마켓이었다.
일단 저녁을 먹고 아침거리를 준비해야 했고, 빠뜨리고 온 충전기도 사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숙소 근처의 슈퍼마켓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마음이 놓이고, 동시에 그 지역의 분위기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어 우리 가족이 여행지에서 항상 가장 먼저 하는 루틴 중 하나이다.
로컬 슈퍼마켓에 가면 그 지역 특유의 도시락과 만날 수 있고 이 지역의 물가가 대충 어떤지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피곤에 지쳐있었고 해가 질 무렵이라 서둘러 장을 보고 나와야 했지만, 이국적인 과일과 식재료를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아이들도, 남편도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도시락을 하나씩 골라 장바구니에 담고 아침에 먹을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숙소로 향했다.
이번에도 숙소는 에어비앤비(Airbnb)였다.
아이 셋과 함께라면 방이 여러 개인 숙소가 필수적이라,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가 훨씬 편리하다.
이번에 예약한 곳은 일본에서 말하는 2 LDK 구조, 즉 방 두 개, 거실, 부엌, 화장실, 샤워실이 있는 전형적인 집이었다.
추가로 우리 가족이 짐을 줄이기 위해 숙소를 예약할 때마다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가 세탁기와 건조기인데, 이번 숙소에 딸려 있는 건조기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도보 5분 거리에 코인빨래방이 있어 그곳에서 건조기를 이용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점은 승용차까지 제공되는 숙소였지만, 우리는 인원 초과인 데다가 카시트도 사용해야 했기에 쓸 수 없었다(이것만으로도 비용이 엄청나게 절감되었을 텐데…).
첫날 오후 비행기가 연착이 되지 않았다면 어디 한 군데 정도는 가볼 수 있겠다 생각했었지만 도착이 많이 늦어져 바로 집으로 향해 슈퍼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쉬기로 했다.
배가 조금 부르니 이제야 비로소 여행 계획을 세울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ㅎ
내가 짐을 푸는 동안 남편이 인터넷을 검색해 가볼 곳을 일단 몇 군데 정하고, 다음 날 점심은 오키나와 소바를 먹기로 정했다.
그렇게 가볍게 일정을 짜고, 들뜬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