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 여행 셋째 날 - 등대, 동굴 그리고 바다 바다 바다
셋째 날 아침에는 바나나와 귤 등 과일밖에 없어서 대충 아침을 때우고 일어나자마자 시마노에키(しまの駅)에 가서 간단한 요기를 샀다.
일본 전국에는 지역의 농산물을 주민과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하는 '미치노에키(道の駅, 길 역)'이 있다. 천정이 탁 트인 창고 같은 건물에 제철 과일, 채소, 지역 명산, 선물거리 등을 파는데,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맛있는 식당이나 신선한 도시락을 판매해 지방 여행 시 필수 코스다.
미야코섬에도 이런 곳이 있었는데, 섬이라서인지 '섬(島, 시마(노)) 역'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도쿄 같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지역 농산물을 구경하고(가져갈 수 있다면 사고 싶었으나, 비행기에 못 가지고 탈 가능성도 있어 그냥 구경만), 빵집과 도시락 코너에서 아침으로 먹을 바나나빵, 소금빵, 점심 도시락거리, 오키나와 도넛인 사타안다기(サーターアンダーギー)를 샀다.
식당도 있었지만 이른 아침이라 영업을 하지 않아 차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오늘의 첫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30-40분 정도 떨어진 미야코지마 최남단에 있는 등대였다.
등대로 가는 길은 동북쪽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는데, 이 쪽은 주택도 많지 않고 거의 바닷가와 넓게 펼쳐진 사탕수수밭뿐이었다.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이 지역의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면 바다거북이가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풍경이 계속되자 남편은 이런 데서 살아도 좋겠다고 했다. 한 번쯤은 시골에 살아보는 게 로망이지만, 현실은 도시 사람인 우리 부부에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해 주차를 하고 도보로 걸어 등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 곳곳에 보이는 갈대밭,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탁 트인 뷰가 압권이었다. 일본의 절경 100위 안에 드는 곳은 이렇구나 싶었다. 해돝이가 유명한 이유도 알 것 같다.
가파른 석회암 절벽가까이 가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와~ 하며 무서워하는 아이들.
등대에 올라가서 보는 뷰는 조금더 특별했을까? 우리는 등대에는 올라가지는 않고 등대 근처까지 가서 주변 갈대밭을 빙 둘러 산책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만 2살 반인 딸에겐 꽤 먼 거리라 결국 안고 오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기분 좋은 산책길이었다.
도로는 모두 포장되어 있으니 어린 아이들과 간다면 유모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
등대를 둘러보고 나오니 시간은 벌써 11시. 근처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와 벤치, 테이블이 있었다.
아침에 시마노에키에서 산 도시락을 펼치고 주차장 트럭에서 파는 사탕수수 주스를 사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셋인걸 보시더니 주스하나는 선물이라며 그냥 주신 맘씨 좋은 아저씨… 감사합니다.
식사 후 아이들은 근처 놀이터에서 노는게 너무 신나서 갈생각을 안하더라... 해변에는 따뜻할 때 가야한다고 꼬셔서 겨우 출발했다...ㅎ
사실 이때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화장실은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 화장실에 비해 위생 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 기저귀를 갈아줄 만한 공간이나 비누도 없었다. 근처에서 어린아이와 함께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면 사전준비가 필요한 장소이다.
또 간식거리와 음료를 파는 트럭이 몇 대 있긴 했지만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먹을거리를 꼭 챙겨가길 추천한다.
등대에서 탁 트인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향한 곳은 아이들과 갈 만한 작은 규모의 나카바리 석회암 동굴(仲原鍾乳洞, しょうにゅうどう)이었다.
시골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입구 표지판과 개인 집 마당 정도 되는 주차장이 있는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곳이었다.
입구를 지나 동굴로 내려가는 계단은 마치 관광지가 아닌 듯한 느낌. 벌레 소리가 들리고 자연 그대로를 거의 손대지 않은 듯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최소한만 갖춘 느낌이랄까.
한단 한단이 높고 불편한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신비롭기도 하고 좀 무서운 분위기에 아이들은 주춤거렸지만 괜찮다고 달래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지하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는데,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습도와 온도가 올라가며 땅속에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동굴의 깊이가 100~200미터 정도라 그리 깊지 않아 아직 어린아이들도 구경하기에 충분했고, 바닥도 미끄러지지 않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10~15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동굴은 난생처음 경험일 터, 그 안에서 느낀 땅속의 따뜻함과 습기 등이 매우 신기했던 것 같다.
이 동굴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일본 전국에서 보내온 놓은 술들이 잔뜩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술맛을 유지하는 데 좋은 환경인가 보다.
해변 쪽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동굴이었지만 만족도 100%였다.
해변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전날과는 다른 해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요나하 해변에서 보이는 다리를 건너면 도착하는 아주 작은 섬이 미야코지마의 서쪽에 위치한 크리마(くりま,来間)섬인데, 그곳의 해변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나가마하마 해변은 구글맵만 보고 간 곳이라 어떤 곳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계속 숲 속으로 들어가는서 '해변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은 나무숲을 지나야 해변에 도착하는 경우는 흔하다).
입구로 생각되는 숲 근처에 있는 농원에 차를 세우고 숲을 지나 걸어서 내려가 보니 바위가 많고 바깥쪽에 방파제가 있는 협소한 해변이 나왔다. 사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야 바위가 줄어들면서 모래 사장이 넓은 해변이 나오는 듯하다.
아이들과 놀기에는 그다지 좋은 해변은 아니라 생각해서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색다른 해변의 모습에 신기했는지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나도 신발을 벗고 조금 걸었는데, 바닷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는 여러 바다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직 어린 소라게를 발견했다.
허밋크랩이라고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은 신기해서 난리였고, 부끄러운 소라게가 소라 안으로 쏙 들어가 숨어 도망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만 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해변이라 밤하늘의 별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모래 위엔 뱀들이 다닌 자국도 있었고 밝은 낮에 가는 건 괜찮지만 밤에 가는 건 추천하기 어려울 듯싶다.
나가마하마 해변 입구에서 주차를 한 곳은 히비스커스 꽃을 재배하는 농원이었다. 미야코 섬에서는 이 꽃을 이용해서 상품 개발을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아주 작은 농원이라 그냥 한번 들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바나나 나무와 키가 엄청나게 큰 사탕수수도 바로 옆에서 키재기를 하며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농원을 떠날 때 농원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시던 세 분의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들을 보시더니, 가져다 먹으라고 바나나를 열 개나 그냥 주셨다. 바나나를 너무나 좋아하는 막내가 어찌나 기뻐하던지… 도시에서 벗어나면 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가마하마 해변에서는 맘껏 뛰어놀 수가 없었던 아이들이 어제 다녀온 요나하 해변에 다시 가고 싶어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어제보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 시간 정도 모래놀이를 실컷했다. 이 날은 햇살이 따가워 선크림이 꼭 필요했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는지 남편이 이런 데서 노을 보면 좋을 것 같지 않냐며 제안을 해왔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보니 저녁 식사을 하고 씻고 나면 잠들기 바빴던 터라 여행을 갔을 때도 바닷가에서 해 질 녘 노을과 밤하늘의 별을 본적이 아직 단 한 번도 없었다(너무 삭막했네...).
그래, 그럼 노을을 보러갈까? 노을을 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면 너무 늦을 것 같아 먼저 슈퍼마켓 근처에 있는 일본정식 체인인 오오토야(おおとや, 大戸屋)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린이 메뉴도 있어 온 가족이 균형잡힌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식사를 마치니 5시, 조금 이른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노을 명소인 미야코 선셋 해변 (宮古サンセットビーチ)으로 향했다.
선셋 해변에는 노을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주 작은 해변인데 이라부 대교와 함께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 특별한 풍경이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분위기 내며 노을 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며 한창 노을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화장실이 급하단다…ㅎ
요나하해변에서 뛰어놀고 물을 엄청나게 마셨으니… 선셋 해변에도 화장실이 있긴 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재빠르게 오다가 본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기로 했다.
가게 안에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장식이 가득했고, 오키나와 특유의 과일과 식재료를 사용한 아이스크림 맛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모형을 쥐고 사진도 찍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신이 났다. 덕분에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었네?
돌아오는 길 별을 보거 갈까 생각을 했지만 밤하늘에 구름이 많은 날이라 단념했다. 아이들은 내일도 다시 해변을 찾고 싶어 해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해변이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 미야코 섬 서쪽의 이라부 섬을 탐방해 보기로 다음 날을 기약하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