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 여행 둘째 날
이튿날 아침, 아이들은 평소처럼 일찍 눈을 떴다. 숙소에서 과일과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아직 뭔가 아쉬운 마음에 해중공원으로 가는 길에 근처 로컬 식당에 들렀다.
그렇게 향한 곳이 쿠지라 식당(クジラ食堂).
이름 그대로 '고래 식당'인데, 스팸이 들어간 오니기리(주먹밥)로 꽤 유명한 곳이었다.
아침 8시 반 정도였는데 셋뿐인 테이블이 이미 다 차서, 우리 다섯이 앉을자리는 없었다. 약간 느끼한 오니기리를 따뜻하고 짭짤한 된장국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테이크아웃을 해서 가게 뒤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먹는 것도 여행 기분도 나고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행의 본격적인 첫 코스는 미야코 섬 해중공원.
낮 기온이 23도 정도라 따뜻할 줄 알았는데, 막상 차에서 내리자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게다가 하늘까지 흐려서 예상보다 훨씬 쌀쌀했다. 아이들의 옷을 여름 기온에 맞춰 준비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약간 헷갈릴 수 있는데, 주차장에서는 건물 입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
일단 주차장에 주차 후 약 100~150m 정도 걸어가면 위의 사진과 같은 바위의 표식이 나타난다. 건물 가까이에 있는 주차장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므로 주차할 때 주의해야 한다.
입구가 소박한 작은 건물이라 "여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는 기념품 가게와 작은 어항들이 있는데, 티켓을 구입한 후 반대쪽 출구로 나가면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계단을 따라 바다 깊숙이 내려가면 해중공원에 도착한다.
말이 공원이지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바닷속의 아주 큰 건물인데 어항 속에 갇혀 물고기와 입장이 바뀐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방에 창문이 나 있는 박스형 구조물 안에서 바닷속을 헤엄치는 자연 그대로의 물고기 떼를 감상할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바다거북이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바다거북이를 찾겠다며 창문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바깥을 살폈다.
햇살이 바닷속을 비추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생태계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미야코섬의 해양 생태계에 대한 안내도 있고 가끔 안내인이 물고기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들려주었는데, 덕분에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작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15-20분이면 충분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주변 산책도 가능했지만, 워낙 바람이 세서 "아 추워~를 연속으로 외치다가 다음 장소로 향했다.
남편이 이곳에 가자고 했을 때, 솔직히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전날 이동과 피로로 지쳐 있었고, 마침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별다른 반대 없이 따라갔다. (우리 부부는 한동안 커피를 끊고 있었지만, 이 날만큼은 예외였다.)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생산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고, 유리창 너머로 소금을 만드는 기계와 동영상을 통해 ‘눈소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곳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먹을거리 때문이었다.
카페와 기념품 가게에서는 소금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눈소금 아이스크림과 소금 커피를 주문했다.
짭짤한 커피라니… 짠맛이 나는 커피?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의외로 단 커피에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나며 밸런스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쓰고, 달고, 짜고… 이 세 가지 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나니 왠지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소금이 놓여 있어, 아이들은 호기심에 하나씩 맛을 보며 서로 다른 소금의 맛을 비교해 보기도 있다.
그 후에는 피부에 좋다는 소금팩 체험도 하고, 회사 동료와 친구들에게 줄 선물과 다양한 소금 제품을 구매했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예상보다 많은 지출을 했지만 그 소금들은 지금도 매일 식탁에서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 ㅎ
점심은 유키 시오 뮤지엄에서 가까운 미야코섬 북쪽에 위치한 이케마(いけま, 池間) 섬에서 해결했다.
미야코 섬과 이케마 섬을 연결한 다리를 벗어나자마자 식당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우리는 오키나와 소바, 고야 챔플, 오키나와 도넛 등을 파는 카이미이르(かいみーる,海美来)에서 점심을 먹었다.
건물 외관만 봐도 대만이 떠오르는 방한 시설이 거의 없는 단순한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이다. 창문도 한 겹뿐이라 바닷바람이 그대로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고, 창밖으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는 풍경 덕분에 마치 열대섬의 로컬 가게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1층에는 테이블이 단 4개뿐이어서 사람이 많으면 모르는 사람과 합석해야 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바다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전망대와 돌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기 전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1층의 가장 큰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 소바 3인분과 고야 챔플을 주문했는데, 음식을 보고 그 양에 깜짝 놀랐다.
항상 참새먹이만 한 양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가격이 저렴해 양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키나와 소바는 일반적인 양의 1.5배 정도나 되었고, 고야 챔플 역시 푸짐했다.
너무 많이 시켜서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맛이 좋아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다. 다만, 이곳은 어린아이들이 이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구조이고 아이들용 식기 세트는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간 아이들용 식기 세트가 유용하게 쓰였다.
식사를 마친 후, 매점에서(식사 주문도 매점에서 한다) 맛있는 오키나와 도넛을 하나씩 집어 들고 바로 옆 해변으로 향했다.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너무 예쁘다~"란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더라(아직 다른 해변을 안 본 상태라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녔지만, 점점 거세지는 바람과 예상보다 쌀쌀한 날씨 탓에, 결국 해변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이케마섬에서 다시 미야코 섬으로 돌아와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농원으로 향했다.
식후라서 그랬는지 모두가 노곤해졌고,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농원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다 같이 30분 정도 낮잠을 청한 후, 몸을 가볍게 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관광객이 아니면 오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서는 파인애플과 다양한 열대 과일을 재배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처럼 왔으니 유료 안내 차량을 타고 농원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11월은 재배 시기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파인애플이 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바나나 나무가 잔뜩 있어 바나나 열매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나무와 꽃들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코스 중간에 있던 목장에서는 말에게 먹이도 주었다.
차량으로 농원을 한 바퀴 도니 20분 정도 지났으려나.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30~40분 정도 산책을 했다 (산책로와 차량이 다니는 길이 나눠져 있다). 아이들과 산책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각종 나무에 열린 작은 열매들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바나나, 아세로라, 패션후르츠 등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고, 거대한 열대우림의 잎사귀도 직접 만져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깨끗하게 관리된 우리도 있었는데 염소들이 평화롭게 건초를 먹고 있었다.
농원을 다 둘러본 후, 아이들이 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다. 오키나와의 열대과일들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그냥 지나치는 건 역시 힘들지... ㅎ
아이들은 선물가게에 딸린 예쁘게 꾸며진 정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분내고 있었고, 마침 샤미센을 연주하는 분이 있어 바로 앞에서 연주를 감상하는 뜻밖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슬슬 날이 저물어가던 4시 즈음, 아이들이 계속 해변에 가고 싶다고 해서 마이파리에서 차로 2~3분 정도 떨어진 요나하 해변(与那覇海岸)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해변을 거닐기에는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요나하 해변을 보니, 이케마섬에서 본 해변이 미야코섬에서는 기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밀가루처럼 보드랍고 하얀 모래사장,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바다… 너무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흥분해서 모래놀이에 정신이 없었고, 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가 보았다.
이날은 구름도 많고 따뜻한 편이 아니라서 바다에 들어간 사람들은 춥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3~4도만 기온이 올라도 충분히 물놀이가 가능할 것 같았다.
한참을 뛰어놀다 보니 해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고, 저녁을 먹을 겸, 공항 근처의 몰로 이동하기로 했다.
미야코지마에는 상점이 모여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하나가 그중 하나가 슈퍼마켓이 있는 곳이고, 또 다른 하나가 공항 근처의 몰이다. 동남쪽에는 이런 상점가가 전혀 없어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꼭 공항 근처로 와야 하니 숙소를 정할 때 주의해야 한다.
로컬 식당에서 저녁을 먹어도 되었지만 몰에 간 이유는 밤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졌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조금 더 두꺼운 옷을 사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 몰에 무인양품(MUJI)이 있어서 아이들 옷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모든 무인양품에 아이들 옷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깜빡했다 (규모가 큰 매장에서만 판매한다).
결국 허탕을 치고 일본의 가장 남단에 있는 오쇼(王将, 일본식 중국요리 체인점)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어제 갔던 슈퍼마켓 근처에 있던 니시마츠야로 향했다.
니시마츠야(西松屋, にしまつや)는 저렴한 아동/아기의 의류와 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워낙 물건이 마구 섞여있어서 사이즈 찾기가 아주 조금 귀찮은 곳이지만, 여기서 다행히 저렴하고 두툼한 스웨터를 구입할 수 있었다.
너무 따뜻해서 밤도 그리 춥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건 착오였다. 낮 기온은 25도 정도로 일본에서 말하는 여름 기온이었지만, 11월이라 역시 구름이 낀 날씨나 밤에는 꽤 쌀쌀했다. 일본은 집에 난방이 없는 경우가 많고 오키나와는 따뜻한 지방이기 때문에 특히 더 난방이 구비되어있지 않다.
그날 밤 나는 있는 긴팔을 전부 껴입고 잤는데도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오더니... 다음날 가벼운 감기에 걸려버렸으니. 다음번엔 따뜻한 지역에 갈 때도 잠잘 때 챙겨 입을 따뜻한 긴팔옷을 꼭 준비해야겠다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