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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 그리고  출발

나 정말 J성향 맞아? 무계획으로 떠난 미야코지마

by 제이 Feb 05. 2025

이번 미야코지마 여행은 완전히 랜덤 하게 결정되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갈 무렵 교환해 둔 마일리지는 이미 2년이 지나가며 유효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국제선 예약에는 거의 아무 쓸모가 없는 ANA 마일리지는 우리에게 ‘일본 국내의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적당한 여행지를 고민하다가, “저렴하게 멍 때릴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오키나와 근처의 섬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다 비수기에 따뜻한 바다, 적당히 한적한 분위기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미야코지마라는 결론을 내리고, 11월 말의 예약 가능한 일정에 맞춰 비행기 표를 확보, 숙소와 렌터카를 대충 예약한 뒤, 우리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상에 치여 준비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10월과 11월 내내 남편과 나는 일과 육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학부모 면담, 행사, 운동회, 소풍, 생일, 시부모님 방문 등으로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일본은 가을 학기가 시작되는 10월부터는 정말 행사가 너무 많다.


우리 부부는 하루하루 스케줄을 겨우 소화해 나가느라 여행 준비는커녕 같이 앉아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머릿속엔 항상 일정을 짜고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대체하며 살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새 출발 하루 전이 되어있었다.




출발 하루 전, 난 공항 리무진 버스를 예약하고 그날의 작업을 마친 후에서야 겨우 현지 날씨를 검색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너무 심했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무계획으로 떠난 값을 조금은 치러야 했다.


출발 당일 오전 9시, 분주하게 집을 나서고 한참이 지나서야 전자기기 충전에 필요한 모든 충전기를 빼놓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버스 시간 때문에 집에 다녀올 수도 없었다. 여행이 아니라도 일상적으로 꼭 들고 다니는 이어폰도 없었고, 모바일 배터리도 없었다. 이런…


아이가 조금 성장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 리무진 버스. 리무진 버스는 가격 대비 빠르고 편리했지만, (만) 두 살 반 아이에게 30분 동안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과자, 물, 그리고 휴대폰 영상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 큰 가방 + 작은 가방 + 6.5킬로 유모차. 작은 가방 반정도는 항상 기저귀다.우리가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 큰 가방 + 작은 가방 + 6.5킬로 유모차. 작은 가방 반정도는 항상 기저귀다.

마음의 여유가 콩알만 해져서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ANA 국내선은 연착이 잦기로 유명하다고 했다(쇼핑 포인트를 ANA 마일리지로 전부 전환한 걸 후회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행기가 한 시간 이상 연착되면서, 예상보다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건 어쩌면 잘된 일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아이들과 전망대에 올라가 비행기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 뒤 아이스크림까지 즐길 시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출발해야 한다"는 마음에 쫓기던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면서 여행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2살 아이와의 비행기 탑승은 극기훈련이다.

국내 비행의 경우 만 3세까지 티켓이 필요 없다.


하지만 마일리지를 쓰는 거고 아마도 힘들 테니 좌석을 잡자고 한 남편의 의견에 따른 것이 이렇게도 감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막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건 이번이 여섯 번째인데 보통 좌석은 남편이 큰아이들과 같이 앉고, 내가 막내를 무릎에 앉히는 방식으로 해왔다.


이번에 막내를 위해 좌석을 확보하고 나서야, 국제선에서 만 2세가 되면 좌석을 확보하고 요금을 내도록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딱 만 2세가 되기 전에 했던 비행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막내는 더 이상 엄마 무릎에 앉는 것도, 조금 놀다가 젖을 물고 잠드는 것도 거부했다. 이제는 언니, 오빠가 보는 동영상을 함께 보고 싶어 했고,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으려 하자 온몸을 뒤틀며 울어댔다.


그렇게 낮잠을 재우며 조용히 비행시간을 보내려던 나의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예전에 아들이 두 살 반일 때 한국에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울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떠오르더라니.


결국, 비행기에서 막내를 조용히 있게 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과자를 제공하는 것뿐…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간식을 제공하자 도착 40분 전쯤에 잠이 들었고 비행기 안에서 그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나니 우리는 미야코지마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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