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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Jan 22. 2021

가사, 내 몸의 주인이 되는 노동

"딩동"

휴일 아침이지만 일찍 잠이 깨었다. 3개월에 한 번 있는 방역 작업이 이루어지는 날. 집에서 작업하시는 분을 맞아들이고, 집 곳곳을 안내하고, 작업이 끝난 후 인사와 함께 배웅을 드린다.

손님이 돌아간 현관 앞에는 주중에 택배로 받은 휴지와 생수가 쌓여있다. 요 며칠 내린 눈 비에 더러워진 바닥도 보인다.

'아무렴 어때.'

방치된 일거리를 슬그머니 외면한 채 화장실로 들어서니 이번엔 타일에 낀 물때와 조용히 차 있는 휴지통이 눈에 들어온다.


사소하면서도 뭉근하게 이어지는 이 일들의 이름은 가사(家事)이다.




사람의 삶은 흔적을 남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세포는 각질을 만들어내고 머리카락은 흘러내린다. 몸을 씻고, 몸이 지나간 자리를 닦고, 몸의 흔적을 치우는 것이 존재의 생(生)이다. 그 생을 위해 수행되는 일이 가사다.


혼자 산다는 건 한 사람 몫의 가사를 온전히 운반하는 일이다. 그 일을 직접 하든, 누군가에게 위임을 하든 노동을 투입해야 할 절대적인 '일'이 생산되고 그것을 처리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자취를 하면서 하나의 몸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용액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눈금이 달린 비커에 부어 보듯,

나라는 사람을 9평짜리 원룸에 담아보니 '일상'이 측정되었다.

평균 5일마다 10L의 쓰레기를 생산하고, 15일마다 12L의 생수를 소비하며, 30일마다 30만 원의 월세가 지불되는 나라는 사람의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의 빈틈에 스며드는 것은 숨 쉬듯 수반되는 노동이다.




가사를 직접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한 사람으로 독립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가사는 내 몸의 주인이 되는 일인 셈이다.

그러나 이 주인 됨의 결과는 어떠한 명예도 보상도 아니요, 그저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과 성가신 책임들이기에 때로 이 몸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고, 주인 됨을 회피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혹은 내가 다른 누군가의 몸을 소유하여 그에게 내 몸의 일을 모두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신분 제도에서 행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일은 가까운 과거에도 일어났으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부양자의 도움으로 19살까지 살았다.


너무나 평범한 집안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 물건들이 처음부터 거기에 있지 않았음을, 그 상태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 속, 평범한 풍경이 있기까지의 지나간 장면들을 입체적으로 투시하듯 바라보고 그 수고에 공감하는 이들, 생활의 일선에 선 노동하는 몸들을 위해 이 말을 건넨다.


수고하셨어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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