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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Jan 27. 2021

한국이 독일을 이길 때, 나는 독일인 수백 명과 있었다

도나우 강가에서 2018 월드컵 독일전 관람

2018년 여름, 유럽에서의 러시아 월드컵 관람을 꽤나 고대했 다. 유럽의 낮시간에 경기가 진행되어 한국에서 처럼 밤을 새가며 경기를 지켜볼 필요도 없었고,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를 구장에 서 지켜본 바 독일의 축구 열기는 꽤나 높아서 독일 경기를 보는 것이 엄청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식당마다 야외에 큰 티 브이를 틀어놓고 중계를 했고 꼭 독일 경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 은 야외 펍에서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적어도 독일이 4강 정도 까 지는 가서 이 열기를 계속 느껴보고 싶었다.

야외에 설치된 TV와 펍

마을 근처 도나우 강변에서는 크레인을 동원한 대형 스크린과 물 담배, 맥주를 파는 거대한 가든 스테이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당시의 한국팀이 너무 못해서, 독일은 이기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 2대 1정도로 지는 것을 예측했다. 독일 친구들도 자신들이 이길 것 이라 당연히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기는 생각 과는 다르게 흘러 갔다. 계속 공만 주고 받다가 한 골도 넣지 못 체 90분이 흘렀다


- 그날

경기는 0:0 무승부로 심심하게 끝나는 듯했다. 나도 슬슬 갈 준 비 를 했고 퇴장 인파를 우려한 몇몇 독일인들은 이미 자리를 떴 다. 그런데 곧이어 한국 선수가 영 좋지 않은 곳에 부상을 당했고 시간 을 끄는 것 같은 행위에 독일인들 사이에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부상 부위를 확인하고는 곧 사그라 들었다. 그리고 10분간의 롤러 코 스터가 시작된다.

도나우 강가에서 마련된 야외 응원장

그리고 곧 독일인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추가 시간에 한국이 한 골을 넣은 것이다. 당시에는 너무 멀리서 봤고, 자막이 안보 여 서 누가 넣은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었고, 그 선언에 독일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그 때 까지만 해도 안 타 까웠지만 매우 침착했다. 곧 정당한 골로 선언되었고 나 혼자 이성을 잃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골이야?, 왜?, 왜? 골이야?


라고 대답 없는 물음을 외쳤고, 수백 명의 독일인 사이에 있던 나 와 내 친구를 몇몇 독일인들이 쳐다봤다. 그때부터 나 혼자 소심 하게 '대~한~민~국~'을 외쳤다. 추가 시간은 6분으로 연장되었 고, 독일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몇 번 놓치자 독일인들은 더욱 많 이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손흥민의 골로 2:0으로 마무리 되었다. 주변의 몇몇 독일인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나는 기뻐하며 "SudKorea"라고 크게 소리쳐 답했다.

 

- 3명의 한국인

수백 명의 독일들 사이에서 나와 내 친구만 한국인인 줄 알았으 나 한 명의 한국인이 더 있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어설프게 스케치북에 태극기를 그린 한국계 독일인 친구였다. 비록 그 친구 가 한국말을 하지 못해, 영어로 소통했지만 구하기 힘든 태극기를 직접 그려서 응원할 정도로 자신의 나라를 잊지 않은 그 친구가 신기했다. 서로 몇 마디 나누고 사진을 찍은 뒤 헤어졌다.


- 한국인보다 신난 사람들

멕시코가 지는 바람에 16강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서 슬펐지만, 멕시코 친구들은 말 그대로 신이 났다. 만나는 한국인 마다 고맙다고 땡큐 땡큐를 외치고 남미의 특유의 그루브로 춤과 파티를 밤새 벌였다. 4년 전의 복수를 해준 브라질 친구들도 연신 고맙다고 해댔다.


- 화난 독일인을 조심해

집으로 가는 와중에 독일인 친구를 만나고 'Two Zero'라고 놀 렸지만, 독일인 친구의 표정이 진짜 때릴 것 같아서 더 이상 놀리 지는 못했다. 모든 친구들이 'Angry German'을 조심하라 했고 독일에 인종 차별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선진국인 만큼 경기에서 졌다고 한국인을 때리는 사례는 없었다. 그 후로 한동안 독일인을 만나면 이 주제로 얘기하긴 했다. 독일 팀이 이번에는 너무 못했 다는 평이 대다수라 그렇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 경기 후의 독일

디펜딩 챔피언이던 독일의 월드컵은 조별리그 탈락으로 너무 빨리 끝났다. 도나우강에서 가든은 철거되고 있었고, 식당마다 있 던 야외 TV는 어느새 실내로 들어갔다. 길거리서 팔던 월드컵 응 원 용품도 자취를 감췄고 한창 16강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많은 경기가 남아 있었지만, 독일은 월드컵이 없었던 듯한 평온한 세계 로 재빨리 돌아갔다.

끝나고 정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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