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경영 season 1_10
군대 제대 후 복학을 했다. 공백 기간을 합쳐 3년을 쉬고 왔는데 학생들을 잘 따라 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특히나 저녁에는 하던 아르바이트가 있어 바로 끊기가 어려워 함께 병행을 했다. 역시나 후배들의 감각은 훨씬 더 좋았고, 머리도 더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뒤쳐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수업시간 내에 많은 과제를 하려고 노력했다.
미대였기에 수업은 자유로웠다. 학생들은 창작을 위해 세상과 자연, 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의 사색에 빠졌다. (이건 좋은 표현이고, 나를 포함하여 그냥 카페와 잔디밭을 쏘다녔다. 최종 작품으로 내놓으면 되니까 말이다.)
복학생인 나는 항상 수업시간 전에 자리에 와 있었고, 수업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진도를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왜냐하면 늦은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했기 때문에 수업 후 개인 작업을 할 시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굳은 머리를 다시 회전시키며 많은 과제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11시에 다시 학교로 갔다. 교실(실기실)에는 당연히 학생이 없었다. (미대는 기말 때가 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밤을 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가끔 몇몇 학생들의 술 파티는 벌어지긴 했다. 난 한 두 시간 작업을 더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사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외로웠다. 그런데 1학년처럼 마냥 놀 수는 없었다. 장학금을 타야한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도 있었고, 뭔가 새로운 변화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매일 공부하고 작업만 하진 않았다. 동기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고,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는 카페도 갔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할 과제들이 많았다. 바인더에 각 과제의 스케줄 표를 만들고 언제 작품이 완성되어야 할지 역산하여 매일 조금씩 작업을 했다. 장학금을 타려면 전공 수업에 집중해야 했다. 계절 학기는 3과목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장학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난 어려운 교양수업은 필수만 제외하고 모두 계절학기로 돌렸다.
외로웠다. 어떤 일이든 함께 할 때 더욱 신이 나고 힘이 생긴다. 그런데 함께 한다고 모든 것을 함께 할 순 없다.결국에는 나 자신이 결정을 해야 하고, 용기를 내서 실천을 해야 하고, 끝까지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사실 미술은 완성이 없다. 회화든 조각이든 창작자가 만족하다고 생각이 들 때 그 때가 바로 완성인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난 당당히 장학금을 탔다. 후배들은 내가 매일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간다고 항상 일찍 가는 모습을 봤었기에, 내가 별로 노력도 하지 않고 전액 장학금을 탔다고 황당해 했다. 그들은 내가 매일 밤, 어둠 속에서 혼자 몇 시간 작업을 했던 것을 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 다음 학기도 마찬가지로 난 나의 계획에 맞게 매일 매일을 조금씩 준비했다. 어느 날 난 방황하지 않고 계획에 맞게 재료를 사들고 와서 땀을 닦으며 잠시 벤치에 앉았다.
그 때 살며시 바람이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지나갔다. “고생하고 있어!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으면 반드시 인정받을 거야?”라고 토닥이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날의 바람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간의 외로움과 수고를 모두 덜어내는 가슴 벅찬 자신감의 어루만짐이었다. 난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날 이후 난 동기들과도 잘 지냈으며 장학금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이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외로움의 순간을 이겨나가야 한다. 외롭게 자신과의 경주에서 스스로를 딛고 일어선다면 뿌옇던 안개가 걷히고 내면의 자신감이 생긴다. 그럴 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옆의 동료들도 손을 내밀어 준다.
나 자신의 삶으로 충만해질 때, 그리하여 내 삶이 알차고 바쁠 때 시원한 바람이 가까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지나갈 것이다.
글 | 백 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