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의 특권, 용기

마음경영 season 1_12

by 백 곤

20여 년 전 복사꽃이 만발하기 전 봄에, 나는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대학교를 그만두었다. 재수생활도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친구가 입시 때 한 달 정도 잠깐 다녔던 미술학원을 추천받고 무작정 상경했다. 위치는 강남 한복판이었다. 당시 강남구청 근처 미술학원이 다소 밀집해 있었다.


난 혼자 상경하여 원장선생님과 약속을 잡고 학원으로 찾아갔다. 바로 이맘 때였던 것 같다. 20여 년 전임에도 미술학원의 수강료는 비쌌다. 보통 드로잉과 전공과목 수업 두 과목 수강이 필수인데, 홍대지역 미술학원은 한 과목당 약 25만원에서 36만 원 선이었다. 두 과목이니 약 50만원에서 70만 원 선이었다. 그런데 강남은 한과목이 50만원 이상이었다. 최소 100만원의 수강료를 내야했다.


난 원장선생님을 만나서 말씀을 드렸다.

“제가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혼자 올라왔기에 제가 다 책임을 져야 해요. 수강료를 모두 낼 형편은 안 되니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낼 테니 좀 깎아주세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날이었고, 원장선생님은 나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했다. 원장선생님이 큰 눈으로 나를 뚫어지듯 쳐다보시더니 말했다.


“음! 그렇게 하면 나는 돈은 벌 수 있겠지만 너는 네가 올라 온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 같고, 집중을 하기 힘드니까 학원비를 내지 말아라. 대신에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알겠지?”

난 너무나 감사했다.


Smith-Courage.jpg?type=w1 이미지 출처 www.newyorker.com© Illustration by Taku Bannai


그리고선 정말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몇 개월 뒤 학원에 내 그림들이 하나 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잘 그린 작품은 모범이 되라고 걸어놓는다.) 훗날 원장선생님께 들었던 그 날의 기억은 이랬다.


“한 시골 애가 머리에 손수건을 질끈 묶고 와서는 사투리를 쓰며 해내겠다고 말하는데, 강렬한 투지의 눈빛이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투지의 목적이 아니라, 이마에 손수건을 묶는 유행을 따라했을 뿐이었다.)


나는 원장선생님의 은혜로운 배려로 100만원의 수강료를 내지 않는 대신에 선릉역에 밀집해 있던 단과학원을 다니는 시간 빼고는 온종일 미술학원에서 그림만 그렸다. 내가 진짜 원하던 길이었기에 다른 어떤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그 원장선생님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난 다른 학원에 가서 협상 아닌 협상을 했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 독립을 하겠다는 내 삶의 의지도 의지였지만 분명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학원비를 충당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주말에 난 이미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은 알바 안 쓴다는 사장님께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급하면 불러달라고 전화번호를 주고 왔고 그 사장님이 연락을 했다. )


안되면 되게 하면 된다. 아마 원장선생님은 나의 그러한 열정을 높게 보셨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변화시켜주신 고마운 분이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나는 노력에 노력을 하였고, 학원에 내 그림들로 거의 다 채워졌다. 그 결과 조금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게 되었고, 내가 그렇게 원하던 예술의 의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고 대학원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고 20여 년 전의 그 열정이 약해지고 무뎌질 즈음 나는 다시 열정과 용기를 불사르기고 결정했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현재에 희생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달리기로 한 것이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 불확실성의 가능성에 뛰어들고, 자녀는 자녀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꿈을 위해 현재에 충실하면서 즐기고 미래를 계획하고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용기는 꿈꾸는 사람을 위한 특권이다.

용기는 부끄러움과 체면, 현실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창조적인 희망이자 주변을 동화시키는 따뜻한 횃불과도 같다. 용기가 있는 눈은 흐리멍텅하지 않고 밝고 맑다. 용기는 또한 축져진 내 어깨의 우울함을 스스로 끌어올린다.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용기를 내는 일이다. 오늘 20여 년 전의 손수건을 이마에 질끈 묶은 젊은 소년을 떠올려본다.


글 | 백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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