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어둠속에서 켜는 후레쉬

마음경영 season 1_13

by 백 곤

어둠 속에서 후레쉬를 켜는 것과 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현명한 것인가?”


몇달 전 내가 한 미라클 모닝 모임에서 했던 질문이다. 후레쉬를 켜는 것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 눈이 적응하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어둠을 보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은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후레쉬를 켜서 어둠을 밝힌다는 것은 빨리 그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밝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빛에 의지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할 때 이 후레쉬는 길을 알려주고 그 길을 안전하게 걸어가게 해준다. 하지만 빛이 머물지 않는 어둠의 공간은 여전히 미지의 어두움으로 남아있다.


반면 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처음에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 또한 나 자신이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어둠 속에서 분명 사물을 분별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나 스스로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는 분명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불안감을 떨쳐내고 내 눈으로 직접 주변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이 밝아졌다면 그 어둠은 이제 어둠이 아닌 것이 된다. 이는 단순히 낮과 밤의 경계가 아니라, 나 자신의 믿음과 의지를 넘나드는 나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 때 비로소 경계의 틀이 사라진다.


84255.jpg?type=w1 빛과 어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wallpaperaccess.com


그러나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더 현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빛의 도움을 받고 의지하여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분명 후레쉬를 끄고 내 눈으로 직접 어둠과 마주하여 어둠 속에서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론 대낮의 밝음을 경험할 수도 또 때론 칠흑 같은 어둠속에 내던져질 수도 있다. 또한 빛과 어둠의 경계가 빚어내는 여명의 순간을 목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가는 존재이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물론 잠시 쉬기도 하고 어둠을 기다렸다가 다시 아침이 오면 걸어갈 수도 있다. 혼자 꿋꿋하게 걸어가기도 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기어가기도 한다. 또한 완전한 절망에 빠졌을 때, 내 마음속이 모두 어둠으로 꽉 차있을 때 누군가의 후레쉬를 절실하게 기다리며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미래의 삶을 향한 나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길을 빛으로 밝히고자 하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둠 속에서 후레쉬를 찾고 또한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리며 마음의 후레쉬를 켜기도 한다.

홀로 걸어가다 둘이 걸어가고 자녀와 함께 걸어가기도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잠시 후레쉬를 빌리기도 하고 또한 내가 빌려주기도 한다.


삶은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허물고, 타인의 도움과 나의 의지를 희망으로 채울 때 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미래를 맞이할 수가 있다.


희망은 내 삶을 온전히 밝혀 스스로 빛을 내는 후레쉬와 같다.그렇기에 희망은 나를 밝히기도 하지만 또한 스스로 빛나는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밝혀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 스스로 빛나는 희망의 후레쉬를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다.

자! 이제 어둠 속에서 어떤 후레쉬를 켤 것인가?


글 | 백 곤


1399857.jpg 내 눈 바깥이 어둠인지, 내 눈 안이 어둠인지는 온전히 나의 마음이 결정한다. 이미지 © wallpaperacc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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