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집을 내줘라

자녀교육 season 1_03

by 두두그린

5세 이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고민이 있다. 바로 아이가 낙서를 마구 하는 것이다. 연필이든 볼펜이든 여기저기 다 낙서를 한다. 간혹 유성매직이라도 아이 손에 들려있는 날은 난리가 난다. 뺏어서 높은 곳에 올려놔야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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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낙서를 많이 할까?’

돌이켜보면 우리도 어린 시절 낙서 많이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관광지에 가서 몰래 바위나 담벼락에 ‘누구누구 왔다간다’라고 써놓고 오니 할 말 다했다.


그런데이 낙서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냥 집 자체가 도화지라고 생각하고 깔끔함과 깨끗함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집을 내줘야 한다.(이는 진정 도를 닦는 인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아이가 표현이 풍부해져 부모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첫 째 아이가 두 돌이 지날 때 쯤 본격적인 낙서가 시작되었다. 손에 잡히는 모든 필기도구와 물감, 매직, 심지어 화분의 흙으로도 낙서를 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 기대감에 예쁘고 아름다운 물건들,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히고자 한 부모의 바람과는 반대로 아이는 자신의 옷과 사물들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의 낙서인생과 나의 삶이 공존해야 하기에 나는 한 방을 비우고 벽에 하얀색 전지를 붙였다.


“여기서만 그림 그려야 해. 알았지!”

들은 건지 안들은 건지 우선은 그 방에 있는 하얀색 전지에 낙서를 하다가 그 낙서는 벽을 타고 고스란히 거실로 나왔다. 다시 전지를 붙인 방에 데려다 놓아도 아이는 절대 거기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아이와 부모의 삶이 깨끗하고 예쁘게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IMG_3473.JPG?type=w1 [두두그린의 낙서권장하기] 아이는 매직으로 바닥에 자동차를 그리고 온갖 낙서를 시작했다. 이건 단지 시작이었다.


'그래 결심했어!' 아내와 나는거실과 방을 모두 메울 수 있는 쿠션매트를 여러 개 깔아서 덮었다. (매트가 생각보다 비쌌지만 층간소음에 대한 에티켓이라 생각했다.)

벽에 전지를 몇 번 교체하다가종이를 아예 때버리고 아이에게 내주었다. 그리고선 거실에 어린이용 책상을 놓고 연필, 색연필, 크레용, 물감, 매직, 테이프 등 낙서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을 모두 가져다 놓았다.


아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여기저기 낙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난감 자동차 바퀴에 물감을 묻혀 매트 위에 자국을 남기고, 거실은 이미 대규모 도로로 바뀌었다. 벽지는 또 어떠했을까? 손님이 오면 창피할 정도로 여기저기 낙서로 가득했다.


부모된 입장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고 이론적으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면 정말 난감하고, 매일을 눈으로 봐야하는 생활인으로서 견디기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미술을 전공한 우리 부부는 낙서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서 버틸 수 있다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정말 쉽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권장해야 한다. 벽지는 다시 도배하면 되고, 바닥은 매트를 교체하면 되니 사실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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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9E%90%EB%8F%99%EC%B0%A8%EC%B9%A0%ED%95%98%EB%8A%94%EC%A0%95%ED%99%98%EC%9D%B4_2015%EB%85%84_12%EC%9B%94.jpg?type=w1 [두두그린의 낙서 권장하기] 낙서는 꼭 연필이 아니어도 된다. 아이는 붓으로 자신의 장난감 자동차 바퀴에 물감을 묻혀 놀다가 장난감 전체를 칠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미술의 정의를 물을 때가 종종 있다. ‘미술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 만들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인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며, 부모인 우리는 표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아를 찾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그 표현의 시작이 바로 낙서이다.


현대미술교육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 잘 그리게 만드는‘표현기능중심’, 둘째,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의성을 육성하는 ‘창의성중심’, 셋째 표현을 넘어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말하게 하는‘이해중심’이다.


%EA%B3%B5%EC%A6%9D%EC%9D%B8.jpg?type=w1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1960~1988), <공증인 Notary>, 1983.


※ 천재화가 바스키아는 흑인작가로 1970년대 지하철과 벽에 낙서를하면서 주목받았다. 아프리카 원시적 예술과 순수성으로 주목을 받으며 검은 피카소로 불려졌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 교류하며 전성기를 누린 미국 최초의 흑인미술가이다. 그의 작품은 소더비 경매에 1,248억원에 낙찰될 정도다.


이 세 가지 흐름을 알든 모르든 아이의 낙서에는 이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창의성 미술교육의 이론적 체계를 구축한 로웬펠트(Viktor Lowenfeld, 1903-1960)는 아동의 표현 발달단계를 6단계로 나누고 그 첫 번째를‘난화기’ 즉, 마구그리기 단계라고 말했다.


자기표현의 첫 번째 단계인 2~4세 아이는 마구 그리면서 본능적 요구를 표현하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찾는다. 주변 환경을 접촉하고 시각과 손 근육을 통해 선으로 일정하게 반복하면서 세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파악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가 되면 자기 스스로 파악한 난화(마구그린 그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는것이다. 이 난화기를 거쳐야 비로소 의식적인 표현이 싹터 인물이든, 나무든 자신의 눈으로 본 것들을 싱징적으로,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ED%82%A4%EC%8A%A4_%ED%95%B4%EB%A7%81.jpg?type=w1 키스 해링(Keith-Haring, 1958-1990)은 낙서그림으로 회화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해냈다는 평을 듣는다. 한때 유행했던 좌절 드로잉 이미지의 원조이다


“우리 아이는 미술 안 가르칠 건데?”

낙서는 미술이 아니다. 낙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첫 번째 단계이다. 나는 아이의 이 첫 번째 단계인 낙서를 부모가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성장에 비교하면 바닥매트와 벽지 도배비는 너무나 저렴한 비용이다. (물론 부모의 정신적인 비용은 당장은 환급받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어린 자녀를 둔 아이의 부모라면 지금 당장 벽과 바닥을 아이에게 내어주기를 바란다.


글 |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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