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자녀교육 season 1_01

by 두두그린

2004년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갤러리]가 생겼다. 약 4평(12㎡) 남짓한 작은 전시공간과 옆 까페가 전부였던 이 갤러리는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인왕산과 북악산 중간지점, 자하문터널 위에 위치한 부암동은 한 때 서울에 있는 시골풍경으로 유명했다.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다지만 교통이 꽤 불편했다.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었고, 경복궁에서 간선버스를 타고 가거나 산책하듯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언제 폐관되었는지는 모르지만 2010년까지 전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갤러리는 이름 자체로 유명했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불편함을 감수하고 전시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깊이 있는 전시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한 번은 탈북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김정일의 초상화 그림을 걸어서인지 주변 주민들이 민원을 넣었고 경찰들이 매일같이 찾아가 작품을 내리라고 했다. 작품의 예술성을 넘어서 이념논쟁이 발생 해 전시장 앞 도로는 마비가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민들과 경찰들의 대치로 인해 이 위험한 작품은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으며 언론의 큰 호응까지 얻었다. 어쨌든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은 진정 호기심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 이 갤러리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그리트 Rene Magritte,  Listening Room.jpg 마그리트 Rene Magritte, Listening Room, 1952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호기심을 가진다. 그 호기심이 잠깐의 충동이 되기도 하고, 취미가 되기도 하고, 평생 직업이 되기도 한다. 잠깐의 충동이든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뜨거운 열정이든 간에 ‘책임’이라는 무겁고도 중요한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책임이 쉽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자녀교육이다.

아이는 결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고 그 존재자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 빠지면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부자면 자녀교육을 더 잘해낼까?물론 그럴 확률이 더 높을 수 있지만 우리사회의 여러 사례들을 확인한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교육시킬 수 있을까? 탈무드를 비롯하여 여러 지침서에는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라’라고 말한다. 대체 어떠한 모범을 보여야 할까? 부모가 교사인 자녀들은 더욱 바른 학생으로 거듭나는가? 경찰의 자녀들은 더욱 정의감에 불타서 불의를 참지 못할까? 그것보다 우선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서 더 좋은 과외를 시키고 더 좋은 교육기관에 자녀를 맡겨 국영수를 더 잘해서 엘리트 대학에 가게 해야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아이가 1등을 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를 소망하는 수많은 부모들이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열광한 이유가 아닐까? 나는 우리 아이가 공부를 1등 하는 것 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 보다 가장 먼저 자신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다하기를 바란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어떠한 길들이 있는지를 부모들이 알려주어야 하기에 다양한 교육을 먼저 시켜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피아노도 시키고, 발레도 시키고, 태권도도, 풀룻도, 미술도, 과학과 수학, 영어, 논술 등도 가르쳐봐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진정 원하면 시킬 수 있다. 그런데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지각하기 위해 그 많은 경험들을 할 필요가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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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우리는 물고기 잡는 법이라고 하지만 '이런 맛난 물고기', '저런 예쁘고 비싼 물고기'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요사키의 표현에 따르면 ‘물고기(Fish)를 주면(Sell) 아이를 이기적(Selfish)으로 만든다’고 한다. 물고기를 주되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 주면 어떨까?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하고, 구워먹든지 삶아먹든지 어떻게 요리할지를 고민해서 자신만의 물고기를 먹는다면 스스로 그 물고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닐까?


금융적 책임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척들을 만나면 으례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은 부모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엄마가 모아놨다가 나중에 크면 줄게”

아이가 조금 크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그 때 받은 내 돈 어디 있어?”

“응 너가 먹고 싶다는 거 사달라고 했잖아. 그때그때 다썼지~. ”

“힝~ 엄마 미워!”


누가 잘못 한 것일까? 부모가 잘못했다. 우선 약속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둘째 아이들에게 경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들의 돈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부모가 맡으면 아이들은 어릴 때 스스로 돈을 만질 기회를 잃게 된다. 그냥 받은 대로 다 주든지 통장에 잘 넣어놨다 돌려줘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 돈에 대해 어릴 적부터 경영을 해봐야 한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말이다.


%EC%9D%B4%EC%B1%84%EC%9D%BC.jpg?type=w1 이채일, , 캔버스에 유채, 72.7 x 90.9cm, 2013

몇년 전 우리 아이의 일이다. 어느 날 6살짜리 첫째가 집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스포츠카 앞부분을 나뭇가지로 긁었다. 내가 한눈 파는 잠깐의 순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얼른 달려가 천으로 닦아봤는데 없어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난 아이에게 단순히 호기심에 긁었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의 차를 훼손했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우선 차주에게 사과를 하고 만약 수리를 할 경우 아이도 용돈 받은 돈에서 일부분 물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난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주가 왔다. 5살짜리 첫째가 성큼 걸어나갔다.

“저 죄송해요. 차가 너무 멋져보여서 호기심에 나뭇가지로 긁었어요.”

아주 멋진 표현이었다. 나도 나서서 사과를 했고, 수리비는 물어준다고 하고 일단락이 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차주에게 연락이 왔다. 아는 공업사에 가서 컴파운드로 닦으니까 얼룩이 사라졌고, 수리비는 깍아서 5만원만 주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계좌번호를 받고 첫 째에게 말했다.


“수리비가 5만원 나왔다고 하는데, 아빠가 50% 보태줄게”

“아니 아빠 괜찮아요. 저 용돈받은 거 5만원 있어요. 제 돈으로 다 할께요.”

순간 나는 너무 놀랬다. 5살짜리 애가 수 개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요즘 경제관념이 조금 빠른 것일까? 기특하기도 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말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이에게 5만원을 받아서 차주에게 입금을 해주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의 호기심에 대해 사회적, 경제적 책임을 졌다.’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부모인 내가 보호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데,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보호자로서 내가 책임을 져 준다고 아이가 그 책임을 자신의 경험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나이가 많던 적던 간에 호기심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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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갤러리’가 다시 한번 더 떠올랐다. 우리가 자녀교육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모로서 내 자녀에 대한 교육적 호기심은 (교육적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부모된 자격으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한다는 것은 단지 우리 아이만이 배우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녀교육은 참 쉽지만은 않다.)


가끔 삶을 살면서 내 생각과 행동에 대한 책임에 대해 여러 고민이 들 때 부암동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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