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season 1_05
“에구! 어떻게~ 안 다쳤니?”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가던 어르신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보며 지나간다.
“너울아! 어서 일어나세요.”(*너울이는 첫째의 태명이다. 개인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태명으로 사용한다.)
나는 넘어져 엎어져 있는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가 지나가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나는 웬만해서는 아이를 일으켜주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일어나야만 울지를 않고 떼를 쓰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금쪽같은 내 아이가 넘어졌을 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고 얼른 달려가 몸을 일으켜주는 것이 모성이고 부성이다. 그런데 좀 단호해야 한다. 넘어졌을 때 누군가가 일으켜 세워주면 다음에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아이도 본능적으로 이러한 보모의 마음을 이용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말이다.
그런데 아이 스스로 일어나게 할 때는 하나의 철칙이 있다.그 순간만큼아이의 존재를 인격체로 인정해줘야 한다. 아이에게 반말을 하면 안 된다.
“너울아! 어서 일어나.”
“너울아! 어서 일어나세요.”
대아이는 ‘일어나’라는 부모의 반말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받아들이고 억지로 일어난다. 그러나 ‘일어나세요’ 라고 하면 아이 스스로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말엔 또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배려도 있다. 물론 부모의 교육철학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에게 모두 존댓말을 써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반말만 쓰는 부모도 있다. 존댓말은 아이를 존중해주긴 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고, 반말은 친밀하긴 하지만 존중이 없다. 난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한다.
반면 아이는 어른을 대할 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게 하였다.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부터 훈련이 되어야 한다. 사내아이는 넘어져도 괜찮은데 여자아이는 넘어져 다치면 흉터 지니까 바로 케어 해야 한다고도 한다.
우리집은 똑같다. “은별아! 일어나세요.” (*은별이는 둘째의 태명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넘어져서 운적이 없다. 왜냐하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너무 안 일어나면 먼저 앞서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아이들은 넘어지면 툴툴 털고 스스로 일어난다.
※ 기적의 놀이터는 놀이터 기획자 편해문이 만든 자연적이고 위험한 놀이터이다. 그는 '위험해야 놀이이고 안전하다'라는 철학을 교육하고 직접 실천하고 있다.
이는 놀이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놀이터를 가면 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난 멀찌감치 서 아이들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노는 것을 구경한다. 물론 자주 같이 놀기는 하지만 스스로 미끄럼틀에 올라가고 정글짐을 기어 올라갈 때 부모가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면 아이의 행동은 자유롭지가 못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냥 신나게 놀게 해줘야 한다. 조금 다치면 어떤가? 자신의 행동을 아이 스스로 제어하게 해야 한다. 자전거를 탈 때 넘어져 본 사람만이 자전거를 더 잘 탈 수 있다. 이는 아이나 어른이나 똑 같다.
아이들이 넘어지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자. 길을 걷다 넘어지든, 인생의 항로에서 살짝 비켜가든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 한다. 본인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어야 넘어진 친구에게 여유롭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
“괜찮아!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되지”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