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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그린 Oct 27. 2020

과학자에서 예술가로

예술경영 season 1_04

인생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이 불리고 싶은 데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자신의 인생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 인생의 설계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바꿔 가면 된다. 그러면 다시 사회적 얼굴이 바뀌게 된다.


작년에 만난 한 작가가 있다. 대전에 살고 있는 작가였는데 개인전 준비를 위해 두어 차례 만났다. 나는 그를 만나고 그의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꾸준함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그는 화가이다. 그리고 또한 과학자이다. 그는 대전의 정보통신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이다. 그는 퇴직을 몇 년 앞 둔 과학자로서 화가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는 어릴 적 미술을 배운 적도,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림의 깊이와 통찰력은 평생을 작품 활동에 몰입한 작가들의 작품과 견주었을 때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가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마흔에 가까워졌을 때라는 것이다. 20년 전 그는 과학자에서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결심했다. 당시 그는 미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으며, 평소 미술관을 다니며 전시를 관람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과학자로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미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에는 그의 영혼 속에 태초부터 내재해 있던(미술을 했건 안했건 간에) 예술적 심미안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 Maman>, Stainless steel and marble, 927x891x1024cm, 1999.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70세가 넘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1911-2010) *거미를 본따 만든 마망으로 유명하다. 

내가 미술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여러 분들이 자신도 미술에 관심 많고 이 다음에 꼭 미술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실제 실천을 하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 작가는 용기를 내서 직접 실천하기로 결심 한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미술에 대해 알고자인터넷 자료를 찾아보고, 우리나라 미술관 사이트를 넘어 전 세계 미술관의 홈페이지를 매일매일 방문하여 미술관련 글을 읽고, 동시대 미술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전시를 하고어떤 이슈가 중요한지 꼼꼼하게 분석하였다.


그는 이 과정을 10년동안 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 미술계 이론과 철학,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과 흐름들이 술술 나온다. 그는 과학자처럼 미술을 공부했다. 그의 방식대로 이론을 어느 정도 공부한 후에 그는 그림 그리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한 화가에게 2년간 가르침을 받으며 기본을 다졌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김순선, <지의류-불영사에서> , acrylic and sand on canvas, 53x73cm, 2019


그는 하루에 4시간씩 매일매일 그림을 그린다.

아침 출근을 해야 하기에 새벽에 일어나 2시간 그림을 그리고,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여 저녁에 2시간을 또 그림을 그렸다. 회사에서 너무 피곤할 땐 사무실에서 잠을 잘 수는 없으니까 화장실에 들어가 쉬는 시간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7년간 미술계에서 화가로 꾸준히 전시회를 개최하며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지금도 출퇴근을 한다. 처음에 그림 그리는 것을 말렸던 가족들은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나는 그를 만나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내가 이 작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더 많은 시간 집중해서 연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화가 김순선의 대전작업실에 걸려있는 작품과 작업한 많은 그림들© 김순선

그는 과학자로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였다. 그는 철저하게 이성적이면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예술적 열정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에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퇴직하고 60살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는데, 나는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었다.”


20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하고, 진실성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진정한 예술가인 그의 말과 철학에 나는 존경심을 표한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단지 하나의 직업적 구분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살면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그 인생은 결정되는 것이다.


'어릴 적 조금만 더 공부할 걸, 이 과가 아니라 다른 과를 선택했었어야 해. 이 직업보다 돈 잘 버는 저 직업이 좋은데….'

76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1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림을 그린 미국 국민화가모지스 할머니( Anna Mary Robertson Moses, 1860 ~ 1961)의 그림 Grandma Moses, Calhoun, 1955, Oil on pressed wood, 16 x 24 in. © Grandma Moses Properties


수많은 이유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내 인생은 그 누구도 것도 아닌, 바로 이 세상에 하나로서 존재하는 ‘내’가 만들어가는 삶이라는 것이다. 진지하게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자. 그리고선 내 내면 속 깊숙히 있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 마주하고 물어보자.


'나는 내가 바라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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