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은 "나의 인생은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이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했지요. 저는 제 인생에 대해 "무기력의 자기방해의 역사"라고 정의하는 중입니다. 무기력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지는 중이고, 그로 인해 제가 원하는 삶은 방해받고 있지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금방이라도 힘이 날 줄 알았는데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네요.
매일 아침이 되면 계획한 일을 하려 했는데 몸은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겨우 몸을 일으키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지요. 왜 이러는지 알아요.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죠. 잘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으면서 겨우 이 정도인 제 능력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런 중에 시도하고 싶은 욕심과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섞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힘만 빼고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할까 봐, 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시할까 봐, 혹시라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날까 봐 겁을 내는 제게 삐삐는 우상이면서 허상입니다. 삐삐처럼 힘이 세다면, 삐삐처럼 부자라면 거침없이 이것저것 시도를 하면서 실패마저 신나지 않을까, 하다가도 삐삐처럼 된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삐삐를 놓지 못한 걸 보면 여전히 그 아이가 그립고 부러운가 봅니다.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
삐삐의 이야기는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작품입니다. 린드그렌의 일곱 살 딸 카린이 폐렴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를 해 달라 했고, 린드그렌은 삐삐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름처럼 삐삐의 이야기는 기상천외하고 유쾌하고 신나지요. 어린이를 어른의 소유물로 보던 시대에 삐삐는 획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여자이고 아이인데돈이 엄청 많고, 힘이 어마어마하게 세고, 변덕스럽고, 어른들에게 절대로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으니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밖에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삐삐 시리즈뿐 아니라 『에밀은 사고뭉치』시리즈로도 유명한 작가입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산적의 딸 로냐』등의 수많은 작품을 썼지요.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능력이 뛰어나 노벨상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그녀는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시대 여성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재능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었겠죠. 린드그렌은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가 유부남인 편집장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가 청혼했지만 거절하고 홀로 아들 라르스를 낳습니다. 그 후 타자와 속기를 배워 비서로 일을 하고,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여 카린을 낳지요. 린드그렌은 카린에게 삐삐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뿐 글로 쓰지는 않다가 3년 후에야 쓰기 시작합니다. 1945년에 드디어 삐삐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작품들을 계속해서 발표합니다.
보수적인 시대에 미혼모였기에 그녀는 약자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여성과 인종 차별을 금지해 달라 목소리를 냈고, 동물복지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작가뿐 아니라 부당한 현실을 바꾸긴 위한 사회운동가로, 환경운동가로 활동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2002년에 사망하자 스웨덴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만들어 해마다 시상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삐삐의 스웨덴 이름은 '피피 롱스트룸프', 영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풀네임은 '삐삐로타 빅투알리아 룰가르디나 크루스뮌타 에프라임스도테르 롱스트룸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하지요.
삐삐는 아홉 살 아이입니다. 엄마는 삐삐가 갓난아기였을 때 하늘나라의 천사가 됐고, 선장인 아빠는 삐삐와 함께 항해를 하다 바닷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삐삐는 아빠가 식인종 섬에 도착해서 식인종의 왕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빠가 돌아오면 자기는 식인종의 공주가 될 테니 무척 신이 나죠. 삐삐는 뒤죽박죽 별장에서 원숭이 닐슨 씨와 말 한 마리와 삽니다. 엄마와 아빠가 없지만 그건아주 좋은 일입니다. 잔소리를 하거나 신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뒤죽박죽 별장 옆집에는 토미라는 남자아이와 아니카라는 여자아이가 삽니다. 이 얌전한 남매는 독특하고 개성 강한 삐삐와 친구가 됩니다.
삐삐는 거침이 없습니다. 넘어지고 다치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신나게 넘어지고 다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아요. 필요할 때 알면 되니까요. 좋으면 진심을 다해 좋다고 표현하고, 미안하면 바로 사과할 줄도 알지요. 불의를 참지 못해 나쁜 사람들을 응징하고, 사랑과 정의가 넘쳐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말 한 마리를 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세고,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즐겁게 움직입니다. 삐삐의 머릿속 세상은 언제나 폭죽이 팡팡 터집니다. 그 신선하고 재미있는 생각이 삐삐의 입에서 나올 때면 거짓말마저 귀엽습니다.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계산 없이 바로 실행하는 삐삐와 달리 『나의 작은 인형 상자』의 유진은 문을 여는 데도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입니다. 몇 번이나 주저하는 유진을 볼 때면 등을 토닥이며 응원해주고 싶다가도 당장 밖으로 나가라고 다그치고 싶어 집니다. 제게 유진은 공감이 많이 가는 친구이면서 분풀이를 하고 싶은 대상이지요.
삐삐가 꿈꾸듯이 바위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을 나는 건 어려울까?" 바위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었고, 땅바닥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삐삐가 계속 말했다. "사람은 날아서 내려가는 것 정도는 배워야 해. 날아서 올라가기는 어려울 테니까. 쉬운 것부터 해 보는 게 좋아. 그래, 한번 해 볼래." 토미와 아니카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삐삐. 제발 그러지 마!" 하지만 삐삐는 이미 바위 끝에 서 있었다. "날아, 날아, 날파리. 날아, 날았다!" 삐삐는 '날았다'고 말하는 순간 팔을 들고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곧이어 "쿵!" 소리가 났다. 땅에 부딪친 것이다. 토미와 아니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위에 엎드려 밑을 내려다보았다. 삐삐는 발딱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더니 거침없이 말했다. "날갯짓하는 걸 깜빡했지 뭐야. 그리고 뱃속에 팬케이크가 너무 많이 들어 있었나 봐."
-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 -
문을 열기까지의 망설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2년 연속 라가치상을 수상한 정유미 작가는 애니메이션 감독이기도 합니다. 『나의 작은 인형 상자』는 2006년에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지요. 그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특별상과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인정받은 이 작품은 2014년 그림책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연필로만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마다 작가의 세심함과 성실함이 묻어납니다. 셀 수 없이 이야기를 그리고 지우면서 갈등하고, 고뇌하고, 치유했을 시간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집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때에도 엄청나게 수정하고 편집했는데 그림책으로 각색할 때에도 그 작업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루하고 고된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졌지요. 우리의 내면도 이처럼 수없이 갈등하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시간을 거쳐야 단단해지고 말랑해질 수 있는 거겠죠.
"아니. 난 지금 못 가. 매일매일 거울을 보며 준비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여. 그걸 찾고 완벽해지면, 그때 나갈 거야."
- 나의 작은 인형 상자 -
『나의 작은 인형 상자』는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한 소녀의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작가의 경험이 이야기의 시작이지요. 자신이 직접 만든 인형 상자를 친구들이 보여 달라고 했는데 작가는 너무 부끄러워 인형 상자의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유진 역시 친구들이 상자에 대해 묻자 상자의 문을 닫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잠에서 깨어난 인형처럼 유진도 밖으로 나아가 소통하고 싶은데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두 발로 세상을 걷고 싶다는 유진의 새로운 자아와 이 상태에 머물고 싶다는 기존의 자아가 충돌하기 때문이지요. 유진이 2층에 있는 침실에서 1층 현관까지 가는 동안 만난 이불속 소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설거지를 하는 여인,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는 유진을 망설이게 하는 주요 원인입니다. 유진은 그들에게 같이 나가자고 제안하지만 그들은 모두 못 간다고 대답합니다. 지금 있는 곳이 따뜻하고 아늑해서, 완벽하지 않아서, 가진 게 부족해서, 바깥세상은 위험해서 나갈 수 없다고 하네요. 사실 이들은 모두 유진의 분신들입니다. 익숙한 공간에 머물고 싶은 안일함, 자신에 대한 불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유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기 위해서 유진은 자신의 내면을 넘고 넘어야 하지요.
삐삐는 양철통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작은 금속탑처럼 돌아다녔다. 그러더니 울타리의 철사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양철통이 땅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삐삐는 양철통을 벗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봤지! 내가 양철통을 안 쓰고 있었으면 땅바닥에 얼굴을 부딪혀 크게 다쳤을 거야." 아니카가 대꾸했다. "그래, 하지만 양철통을 머리에 안 썼으면 철조망 울타리 같은 데에 걸려 넘어지진 않았을 텐데……." 아니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삐삐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삐삐는 실이 감겨 있지 않은 실패를 들고 말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인가 봐. 너무너무 예쁜 실패다! 이걸로 비누 방울도 불 수 있고 목걸이도 만들 수 있잖아. 당장 집에 가서 목걸이를 만들어야지."
-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
문 밖을 나선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걱정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 밤버스 -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밖을 나섰지만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걱정까지 더해져 과연 이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나의 작은 인형 상자』는 문을 열기까지의 망설임과 두려움에 대해 그렸다면 『밤버스』는 밖으로 나가고도 불안과 걱정으로 고민하는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에 두근거렸습니다. 동시에 긴장감에 울렁거렸지요. 더군다나 밤에 떠나는 여행이라니! 그 시공간이 주는 낯섦과 설렘이 불안과 섞여 심장을 자꾸 자극했습니다. 표지의 색깔마저 신비롭고 몽롱한 느낌의 보라색입니다. 어둡고 짙은 보라색 바탕 위에 노랑, 빨강, 주황 등의 색이 돋보이네요. 달 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쌓아 올린 바위, 계단, 자전거, 버스, 회전목마 등은 위태롭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것들 위로 다양한 크기의 폭죽이 터지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재질로 불꽃을 표현해 표지는 시각적으로 강렬합니다. 그런데 촉감은 벨벳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이처럼 『밤버스』에는 여행이 주는 흥분과 낯선 곳으로 떠나는 두려움이 아슬아슬하고, 찬란하고, 강렬하고, 보드랍게 담겨 있습니다.
가방을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주인공은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혼자서도 괜찮을지, 짐이 너무 많은 건 아닌지, 뭔가를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건 아닌지 등등의 걱정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럴수록 불안은 커집니다. 상상 속에서 주인공이 탄 버스는 하늘을 떠다니기도 하고, 숲을 헤매기도 하고, 복잡한 도시를 지나가기도 합니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눈동자를 닮은 모양은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 오싹하고 괴상합니다. 언제든 짓궂은 장난을 칠 준비가 되어 있는 운명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이동 수단의 바퀴도 눈동자처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 달, 아이스크림, 사람, 나무 등 어느 것도 평범하지 않네요. 콜라주 기법으로 기괴하고, 낯설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표현하여 주인공의 복잡하고 불안한 내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로 26.1cm, 세로 33cm의 큰 판형 덕에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이의 마음이 더 강하게 와닿습니다.
프레임 없이 꽉 찬 화면을 보고 있으면 이 낯선 풍경 안에 제가 있는 느낌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주인공의 불안은 어느새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의 불안으로 전이되고 확대됩니다. 새롭게 도전하는 이 일을 잘 마칠 수 있을지 매 순간 의문이지요. 함께여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점점 무게를 더하고, 관계는 늘 어렵기만 합니다. 챙겨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디가 길인지 모르겠고요. 정답은 없다는데 오답은 있는 것 같은 이 삶에서 저를 지적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듯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느라 버스를 놓쳐버린 주인공처럼 걱정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시작을 했으면 거침없이 밀고 나가면 좋으련만 매 순간 용기가 없는 저를 마주하며 자책하느라 또 시간을 낭비하고 있네요.
대책 없이 즐기는 즐거움
"서둘러 뛰어가도 천천히 걸어가도 어차피 지각이니까." 이것이 적당 씨의 사고방식.
- 뭐 어때! -
표지를 보는 순간 이건 뭔가, 싶었습니다. 달걀을 의인화한 그림책인가, 생각했지요. 넥타이를 일부러 엉망으로 묶은 건지, 이것이 주인공만의 방식인지, 굳이 제대로 묶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하는 표지 속 인물의 모습 위로 크게 박힌 '뭐 어때!'의 흐물거리는 글씨체를 보니 주인공이 어떤 인물일지 예상이 가더군요.
『뭐 어때!』의 주인공은 적당 씨입니다. 시간을 잘못 맞춰 출근 시간이 지난 후에 알람이 울렸지만 그는 태평합니다. 느긋하게 하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여유까지 보입니다. 넥타이가 삐뚤빼뚤하지만 그래도 목에 맸으니 괜찮지요. 어차피 늦었으니 아침 식사를 하고, 경치까지 구경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뛰어가도, 걸어가도 지각이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나요. 신문 기사를 보다가 내려야 할 때를 놓쳤지만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즐겁습니다. 그 뒤로도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이 계속 생기지만 뭐 어때! 어깨를 으쓱하고 나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적당'은 '적당하다'의 어근으로 나옵니다. '정도에 알맞다,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 꼭 들어맞다'는 의미를 가진 '적당하다'는 '알맞다, 적합하다, 적정하다, 적절하다, 합당하다' 등의 비슷한 말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런 의미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그와 '적당'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태도는 긍정이 아닌 무책임이었고, 너무 대책 없이 그 순간만 즐기고 있다고 보았거든요. 그런데 한 번 더 읽으니 적당 씨에 대한 시선이 바뀌더라고요.
적당 씨의 집에는 선인장을 비롯해 몇 가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시들지 않고 싱싱합니다. 부지런해야 가능하지요. 그의 집을 채운 기타, 사진기, 책, 액자 속 사진과 그림 등을 통해 그가 일 뿐 아니라 취미생활도 열심히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려견 사진과 가족사진을 집안 곳곳에 두고, 꽃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적당 씨를 보면 그가 얼마나 낭만적이고 사랑이 넘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각을 하더라도 회사는 가야 한다고 말하는 건 성실함과 책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방과 옷까지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끈질기고 끈기 있는 사람인 거죠.
어쩌면 적당 씨에게 그날은 일탈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역시 매일매일 열심히 살면서 때로는 마음을 졸이고, 때로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을 겁니다. 초라한 현실에 좌절도 하고, 잘 나가는 동료에게 질투를 느끼면서 적당 씨는 적당한 삶을 찾기 위해 "뭐 어때!"를 외치는 건 아닐까요.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면서 한 번쯤은 이래도 된다고 충분히 계산하고 계획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그의 실수 때문에 문제 된 건 없습니다. 반려견 해피는 맛있게 사료를 먹었고, 적당 씨는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회사에 가겠다는 목적을 이뤘으니까요. 그리고 그날은 그래도 되는 날이었습니다. 설령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상사의 따끔한 질책과 인사 평가에서의 감점 정도이겠죠. 출근 좀 늦게 한다고 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지구가 멸망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감정에 감정을 보태면서 자신을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만들 필요가 없지요.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겁을 먹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적당 씨가 유쾌하게 웃네요.
그래도 신기한 것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만 있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행동하지 못한다면 욕구를 깔끔하게 접으면 되는데 그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미련하게 미련을 붙잡고 갈등을 반복하면서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냐'며 자신을 공격하기도 하고, '내가 그렇지'라며 스스로를 비웃기도 합니다. 예쁘지 않으면 사람들이 싫어할까 봐, 부족하면 무시를 당할까 봐,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닥칠까 봐 두려워서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가 많지요. 힘들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문 밖의 세상은 또 다른 두려움입니다. 그러니 걱정에 걱정을 얹어 과연 이 일을 끝마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신기한 건 그 두려움을 이기고 문을 열었다는 겁니다. 문 밖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와 위험이 있지만 또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풍경도 있습니다. 『나의 작은 인형 상자』의 유진이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면 '따스한 햇살'과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을 다독이며 한 발자국씩 나아갔기에 이 모든 걱정이 실제가 아닌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요. 밖으로 나온 유진에게 늘 밝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있지 않겠지만 이 단계를 거치면서 불안을 대하는 유진의 자세는 분명 달라지겠죠.
『밤버스』의 작가는 '여행하면서 느꼈던 불확실한 설렘과 분명한 불안감을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상반된 감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우리의 삶도 두근거림과 울렁거림이 교차하고 섞이면서 재미와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이 울렁거림도 즐겨볼까, 합니다. 삐삐와 적당 씨처럼 대책 없이 즐기다 보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겠죠. 뭐 어때요! 안 되면 그렇구나, 하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