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Apr 16. 2022

어린 왕자의 순수함이 피곤해질 때

- 『어린 왕자』& 그림책


 



질문을 잊어가는 나이




왜요?

- 왜요?-


  그림책 『왜요?』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넘치는 아이가 나옵니다. 릴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온종일 "왜요?"라고 묻습니다. 릴리의 아빠는 딸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옷을 입으라고 할 때에도, 달걀이 익으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할 때에도, 악어가 살았다는 부분을 읽을 때에도, 이젠 잘 시간이라고 말할 때에도 릴리는 왜요,라고 묻거든요. 가끔씩 피곤하거나 바쁠 때면 아빠는 릴리에게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왜요,라고 묻는 릴리에게 그건 그냥 그런 거라며 쿠션에 얼굴을 숨기고 괴로워하기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마어마한 우주선이 릴리가 사는 곳에 착륙합니다. 험상궂은 외계인들이 지구를 파괴하러 왔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덜덜 떨지만 딱 한 사람, 릴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외계인이 왜 지구를 파괴하러 왔는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왜요?

- 왜요? -


  같은 제목의 그림책 『왜요?』에도 왜요,라고 묻는 여자 아이가 나옵니다. 이 아이는 천장을  백화점에 침입한 엑스레이 박사가 전혀 두렵지 않나 봅니다. 다들 물러서라는 엑스레이 박사의 말에 백화점에 있던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쁜데 이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왜요,라고 묻지요. 고개를 높이 고, 눈을 크게 뜨고, 당당하면서도 심드렁한 모습으로 말이에요. 엑스레이 박사의 대답이 끝나면 아이는 또 왜요,라고 묻습니다.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소파에 앉아 홍보지 같은 종이를 넘기면서, 박사에게 감자튀김을 건네면서 질문을 반복하지요. 선택받았다며 을 과시하던 박사는 아이의 왜요, 라는 질문이 이어질수록 여리고 안타까운 자신을 드러냅니다.   


  『왜요?』의 주인공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면 상대방은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황제가 시킨 대로 지구를 파괴하러 온 외계인들은 릴리의 왜요, 덕에 자기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자기의 운명이라던 엑스레이 박사는 왜요,라고 묻는 어린아이의 질문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이 두 아이가 소크라테스처럼 사명감을 갖고 상대방을 깨우쳐주기 위해 질문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외계인과 엑스레이 박사의 생각이 바뀌고, 세상이 더 평화로워졌죠.  


  『어린 왕자』의 어린 왕자도 이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답을 들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묻고 또 묻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왕자를 귀찮아하던 비행기 조종사  '나'는 어린 왕자를 통해 잊고 있던 순수를 만납니다. 『어린 왕자』는 질문을 잊고,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세상과 타협하는 어른들에게 진정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지요.


  "양은 작은 나무를 먹으니까 꽃도 먹겠지?"
  "양은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먹지."
  "가시가 있는 꽃도?"
  "그럼, 가시가 있는 꽃도."
  "그럼, 가시는 대체 어디에 필요한 거지?"
  그것은 나도 모르는 문제였다. 나는 그때 내 모터의 나사가 너무 꼭 죄어 있어 그것을 빼내는 일에 정신이 팔여 있었다. 비행기의 고장이 매우 중대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먹을 물이 바닥이 드러나고 있어 최악의 상태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몹시 불안했던 것이다.
  "가시는 대체 무엇에 필요한 거지?"
  어린 왕자는 일단 질문을 하면 상대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할 때까지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나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

- 어린 왕자 -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난 순수함



찢기고 빛바랜 나의 어린 왕자


  작가이자 공군장교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던 그는 1921년 자비로 훈련을 받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지요. 조국인 프랑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쟁에 참전했던 생텍쥐페리는 1944년 7월 31일, 정찰비행 중 실종됩니다. 독일군에게 격추당했다, 정비불량이다, 스스로 추락했다 등 그의 죽음은 논란이 많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와는 달리 순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유로화로 통용되기 전 프랑스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만큼 그는 프랑스가 사랑한 작가이자 세계 곳곳의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작품의 작가입니다


  1943년에 발표한 『어린 왕자』는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찾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화가를 꿈꾸었지만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로 인해 '나'는 비행기 조종사가 됩니다. 어느 날, 비행기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고, 그곳에서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는 소년을 만나죠.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서, 두려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만난다는 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아이가 '나'의 그림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그 누구도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 소년은 단번에 알아채죠. 이렇게 화자는 어린 왕자를 알게 되고, 이 소년에게 B-612라는 자신의 소행성을 떠나 여러 별을 거쳐 지구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는 속으로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거든.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린다면, 그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들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 어린 왕자 -



  처음에 조종사는 어린 왕자가 귀찮고 성가십니다. 당장 비행기를 고쳐야 하는데 어린 왕자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떼를 쓰거나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을 퍼부으며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어린 왕자에게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다른 어른들처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며 화를 냅니다. 어린 왕자는 자기의 별에 있는 단 하나뿐인 꽃이 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껴 웁니다. 조종사는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젠 비행기를 고치는 일도, 목이 마른 것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모두 우스워집니다. 어린 왕자와 가까워지면서 그는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길들여진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를 깨닫습니다. 어린 왕자 덕에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어린 날의 순수를 다시 만난 거죠.



잃어버린 것 VS 버려진 것




어떤 것들은 그저 버려진다.

- 잃어버린 것 -



  병뚜껑이 가득한 면지를 넘기면 작가의 소개와 책에 대한 정보가 나옵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전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지요. 그들 중 유일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보이네요. 어딘지 장난기가 배어 있는 그는 소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의 서술자이면서 주인공입니다. 예전에는 재미있는 얘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주웠던 이야기를 한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전차를 타던 그때가 몇 년 전 여름, 어떤 물건을 만난 시절인 거죠.


  평소와 다름없이 그날도 동전을 수집하다가 그는 '그것'을 만납니다. 그것은 기묘하고, 슬프고, 버림받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말을 걸어보니 그것은 꽤 살갑습니다. 그것과 함께 있는 시간은 무척 재미있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그것을 누군가가 데려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제 그것은 '버려진 것'이 됩니다. 모르는 것이 없는 피터에게 버려진 것의 주인을 찾겠다고 하자 피터는 희망적이지 않는 얘기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부모님은 발견된 곳에 갖다 놓으라고 하네요. 뒷마당에 있는 헛간에 숨겼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신문에서 정리함에 대한 광고를 발견합니다.


  숫자와 글자와 그래프와 도면이 어지럽게 깔린 밑바탕 위에 펼쳐지는 『잃어버린 것』의 주된 배경은 낡고, 복잡하고, 삭막하고, 기괴한 기계가 가득한 공장단지입니다. 집들은 하나같이 똑같고, 사람들의 표정 역시 그들이 사는 공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부모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이야기하느라 너무나 바쁩니다. 버려진 것에게는 조금의 관용도 베풀 수 없지요.


  한때는 버려진 것을 위해 그것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장소를 찾아다니던 주인공도 이젠 변했습니다. 버려진 것들을 보면 잠깐 멈출 뿐, 그냥 지나칩니다. 이제 그의 표정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꽤 많이 알고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요.


  '잃어버린 것'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것은 '버려진 것'으로 나옵니다. 잃어버린 것과 버려진 것은 분명 다릅니다. 잃어버린 것에는 고의성이 없지만 버려진 것에는 고의성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는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버려진 것에는 그런 마음이 거의 없지요. 어쩌면 작가는 버려진 것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건 아닐까요.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버렸을 때, 소중한 무언가도 함께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왕자는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봐야 하죠. 마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찾을 수 있고, 마음이 없으면 눈앞에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상하고, 난해하고, 기묘하고, 명확하지 않은 이 그림책이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안타깝다면 아직 희망은 있는 거겠죠.


  , 『잃어버린 것』의 책을 꼼꼼하게 살펴본다면 서술자 '나'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수 있어요.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는 적이 없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지? 나비를 채집하지 않니?"
  그들은 이런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지? 형제는 몇이고? 체중은 얼마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야?" 하고 그들은 묻는다.
  그제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어른들에게, "창턱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 분홍빛의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정말 좋은 집이구나!" 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 어린 왕자 -



관계에 대해 책임을 느끼기 시작할 때




우리는 어디론가 계속 떠나는 중이었다.

- 카키 -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날아온 씨앗이 꽃을 피었습니다. 무척 아름답고, 겸손하지 않고, 심술궂은 허영심과 네 개의 가시를 갖고 있는 꽃이죠. 동시에 이 꽃은 척 연약하고, 순진합니다. 후에 어린 왕자는 그 꽃이 장미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린 왕자의 꽃은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꽃은 없다며 자랑스러워했는데 지구에 오니 똑같은 꽃이 정원에 가득합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귀한 꽃을 갖고 있다고 여겼던 어린 왕자는 자신의 꽃이 평범하고 흔하다는 것을 알고 소리 내 웁니다. 그때 지나가던 여우가 '길들인다'에 대해 얘기합니다. 여우의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꽃에게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 주고, 바람을 막아주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이제 어린 왕자는 그 꽃이 흔하고 흔한 장미가 아니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카키』의 주인공 소녀에게도 그동안 보아 온 개들과 다른 존재의 개가 있습니다. 카키를 만나기 전, 소녀는 아빠의 재혼으로 방학이면 시골집에 버려지듯 맡겨집니다. 언젠가부터 아빠는 연락이 없고, 이제 소녀는 무심하고 나이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삽니다. 시골집 마당 감나무 옆에는 꼬질꼬질한 개 한 마리가 묶여 있습니다. 산책도, 목욕도 해 본 적 없는 개는 목이 묶인 채로 마당을 지킬 뿐입니다. 한 마리가 사라지면 다른 한 마리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이름은 늘 똑같기에 그건 이름이 아니라 지칭 수단에 불과하죠. 어느 날, 할머니가 발라 준 살코기가 사라진 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녀는 그때의 찝찝함과 배신감 때문에 멍멍이라는 이름이 싫습니다. 그래서 새로 온 개에게 '카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카키가 묶여 있는 감나무의 색에서 따온 이름이죠. 카키는 자기의 이름을 아는 것처럼 굴고, 소녀를 보면 좋아서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소녀는 멀리 길을 걸을 때면 꼭 카키를 데리고 갑니다. 카키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마당에 꼼짝없이 묶여 있는 모습이 보기 싫기 때문이죠.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소녀는 온종일 무기력하게 있는 카키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낍니다. 그래서 화도 나고요. 그렇게 시간은 지나 이제 소녀는 10대가 아닙니다.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시골집에는 갈 일이 없어집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주인공은 카키가 없어진 것을 알고 죄책감에 펑펑 웁니다.


  주인공에게 카키는 시골집 마당에 묶여 있던 다른 개들과 달리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어주었고, 산책을 할 때면 꼭 데리고 나갔고, 가출을 시도했을 때도 함께했고, 카키의 온기를 느끼며 잠을 잤습니다. 외롭고, 무기력하고, 서글픈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길들인 거죠. 그런 카키의 존재를 주인공은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어린 왕자』의 명문장은 거의 대부분 여우의 대사입니다. 여우는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거나,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등의 명대사를 날리며 '길들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합니다. '길들다'는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며 여우는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남깁니다. 어린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장미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별로 돌아가죠.  


  『카키』의 주인공은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시골집에 가지 않습니다. 가끔 카키가 생각났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지요. 그런 주인공의 행동은 무책임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부모에게 버려졌고, 무기력이 일상이었고, 나이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최소한의 의식주 외에 다른 욕구를 해결해주지 않았으니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겠죠. 장례식 내내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사라진 카키 때문에 펑펑 운 이유는 주인공이 카키에게 길들여지고, 카키를 길들였기 때문입니다. 책임감을 느끼기에 죄책감이 올라온 거죠.


  싱그러운 연둣빛에서 애잔함이 느껴지고, 푸른 바다가 서글퍼지는 『카키』를 보고 있으면 제게도 그러했던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책임지지 못한 채 버리고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며, 더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중얼거립니다. 『카키』의 주인공도 이제는 누군가와 진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치유하고, 성장하길 바랍니다. 외롭고 서글펐던 시절을 함께 해 준 카키를 간직한 채 그 시절이 싱그럽게 푸르렀다고 기억하면 좋겠네요.

 


어린 왕자의 '순수'가 더는 아름답지 않을 때




삶의 모든 순간, 당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 삶의 모든 색 -

 


  힘들 때마다 들춰보던 『어린 왕자』를 3년 전에 다시 읽었을 때, 제 마음은 전과 달랐습니다. 과연 순수하다는 게 좋은 걸까, 하는 의문과 반감이 생겼죠. 분명 어린 왕자는 매력적이지만 꽤 피곤하더라고요.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의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모습에 화가 났지요. 어른들을 전부 이상하다고 하는 어린 왕자에게 '네가 어른의 삶을 알아?'라고 소리칠 뻔했습니다.  


  몇 년 동안 화가 났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보겠다고 결심한 건 『삶의 모든 색』을 만난 후였습니다. 『삶의 모든 색』은 아이부터 노년까지의 순간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적이었다가 상처도 받는 <아이의 삶>, 세상이 뒤죽박죽 보이다가도 세상을 발 밑에 둔 것 같기도 한 <소년의 삶>, 모두들 노래를 부르는데 나만 가사를 모르는 것 같아 불안한 <자기의 삶>,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부모의 삶>,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거나 여전히 찾고 있는 <어른의 삶>, 마음은 아직 스물두 살이지만 몸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수도 있는 <기나긴 삶>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삶에는 행복과 고통이 있고, 웃음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신비롭고, 아름답고, 서글프면서 웃긴 그림과 글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하다가도 피시식 웃음이 나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마저 다양한 색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 당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라는 문장이 그림과 함께 오래오래 남지요.

  

   <어른의 삶>이라는 제목 옆에 있는 그림에는 '젊고 앞날이 기대되는'이라는 표지판과 반대쪽으로 가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것도 슬프고 안타까운데 신발에는 바퀴가 달렸고, 길은 내리막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젊고 앞날이 기대되는' 쪽과 멀어질지 예상이 됩니다. 어린 왕자에게 이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네가 어른의 삶을 알아?'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마냥 순수해도 피곤한 나이



  언젠가부터 저는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와 가치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하거나, 그냥 하지 않는 게 많아졌죠. 『어린 왕자』속 어른들처럼 숫자로 판단하고, 진정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 바쁜 것도 없으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피곤으로 받아들이고, 불필요하다며 버린 것들도 많지요.


  오랫동안 감동했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났던 『어린 왕자』가 이번에는 머릿속을 복잡하게 합니다. 진정한 순수가 무엇인지, 다시 찾아야 할 어린아이의 마음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 생각이 많아지네요.


  지금의 결론은 어린 왕자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으며 어떤 부분은 거부하겠다, 입니다.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떼쓰고, 어른들을 싸잡아 이상하다고 여기고 싶지도 않아요. 만약 그런 게 순수라면 저는 마냥 순수하지 않으려 합니다. 순수를 바탕으로 현실의 때를 묻히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을 이해하고, 저 역시 이해받으려 해요. 저도, 어린 왕자도 길들여짐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갔다가 반성하면서 순수에 성숙을 쌓아가야겠죠.


  


 

*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지음, 김제하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 『왜요?』, 린제이 캠프 글, 토니 로스 그림, 바리 옮김, 베틀북 펴냄

* 『왜요?』, 애덤 렉스 글, 클레어 킨 그림, 최루비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 『잃어버린 것』, 숀 탠 지음, 엄혜숙 옮김, 사계절 펴냄

* 『카키』, 한수지 지음 , 엣눈북스 펴냄

* 『삶의 모든 색』, 리사 아이사토 지음, 김지은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이전 03화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을 대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