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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May 25. 2016

에곤 실레 : 작은 마을

작은 마을


 빨래들이 바람에 펄럭거리며 웃고 있다. 펄럭거리는 빨랫감들 중에 더러는 낮술에 취한 술주정 같기도 하고, 가족의 불화에 내지른 비명 같기도 하다. 창문들은 각각의 사연이 담긴 책과 같아서, 어떤 책은 행복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고, 어떤 책은 우울하고 불우한 개인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어떤 책은 가출한 아이를 기다리는 어미의 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어떤 창은 영영 읽히지 않는 책처럼 닫혀 있어서, 닫힌 마음 안에 희망이 사라진 슬픔이 드러나기도 한다. 도대체 남향으로 창을 내고도 닫혀버린 저 집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가족 모두 돈벌이 나가서 텅 빈 집의 공기는 또 얼마나 서늘한지... 창의 햇빛에 기대 누군가 열심히 소설을 쓰고, 어느 여인은 밤의 유흥을 위해 화장을 고치고 있다. 나는 이제 누군가 오랫동안 비워 둔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듣는다.. 지옥 같은 이 도시가 싫어 달아났던 이가 남루한 걸음으로 돌아와 그를 기다리는 어항에 물을 갈아주고 낡은 침대에 몸을 던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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