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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되어야 첫눈이지!

by 초마

"오늘 6시부터 눈이 온다고 하니 빨리 들어가거라!"


아버님은 눈 예보가 있는 날에는 꼭 전화를 걸어서 당부를 하신다.


"나는 네가 제일 걱정이다. 운전하고 오는데 눈 많이 오면 차 밀리고 힘들어서, 빨리 들어가면 좋겠다.."


"네, 아버님, 오늘은 다행히 거래처 미팅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와서 이제 집에 거의 다 와가요. 걱정 마세요."


아버님과의 통화를 끝나고 나니 눈이 전혀 올 것 같지 않았다.

목요일은 초롱이의 학원 일정이 빡빡한 날이라 우리는 늘 저녁으로 빨리 먹을 수 있는 김밥을 먹는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밥집은 초롱이가 2살 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거의 10년이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먹던 김밥집은 이젠 초롱이와 초콩이까지 거의 함께 키워주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장님, 저 김밥 3줄 포장이요! 6시 30분까지는 갈게요!"

이렇게 시작되었던 김밥은 어느새 "사장님 김밥 4줄 포장이요!"가 되었다.


김밥에 대한 이야기는 할 말이 많으니, 나중에 다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김밥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길, 시간은 6시가 조금 넘으니 신기하게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인지 아니면 내 눈이 피곤해서 보이는 것인지 몰랐는데, 어느새 눈발이 조금씩 거세지면서 2025년의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을 성복엿에서 만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은 제법 쌓이기 시작했다.


원래 목요일은 초롱이의 수역장도 성복역이기에 7시쯤 초롱이까지 태워서 집으로 가야 했지만, 요즘 들어서 자꾸 혼자 있기를 무서워하는 초콩이 때문에 나는 일단 집으로 가서 초콩이를 기다리다가 다시 초롱이가 수영이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나오기로 했다.


위의 사진을 찍은 시간은 저녁 6시였고, 아래 찍은 사진은 7시에 다시 찍은 같은 장소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운전으로 그리고 눈으로 식겁할 사건이 벌어질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엄마 어디야?"


눈이 갑자기 많이 내리는 덕분에 성복역까지 가는 길도 차들이 엉금엉금 가는 바람에 초롱이에게 조금 늦게 도착했다.


짧은 거리인데도 눈을 잔뜩 맞은 초롱이에게 준비해 간 모자를 건네며 얼른 차에 타라고 했다.


"오늘 저녁은 김밥이랑 콩나물국밥이야."


"맞아 엄마, 오늘 같은 날은 콩나물국밥이 딱인데!"


"오늘 같은 날 콩나물국밥도 좋은데, 일단 시간이 없으니 김밥으로 먹자!"


이렇게 말을 하고 우리는 좀 더 거세진 눈발을 느끼며 집 근처 골목까지 도착했다.


우리 집 아파트는 두세 개의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데, 진입로가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다. 이제까지 이곳에 13년을 살면서 한 번도 그 오르막으로 인한 불편함은 겪지 않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진입로까지 차들이 이동하지 않았고, 시간은 어느새 20분 이상이나 흘러 있었다.


"어디오?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남편은 초롱이가 8시면 한우리에 가야 할 시간인데, 우리가 7시 40분이 되어도 도착하지 않자 전화를 걸어왔다.


"초롱아, 안 되겠다! 너 먼저 그냥 걸어가!"


그렇게 초롱이를 먼저 걸어가라고 보내고 나는 또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어찌어찌 다가온 진입로에는 자동차 한 대가 엉거주춤 비상등을 켜고 멈추어 있었다.


'아니 저 차가 문제였구먼!'


내 앞의 차는 멈추어 있는 차를 크게 돌아서 앞으로 지나가려는 듯 보였고, 나 역시 그 차 뒤를 이어서 그렇게 갈 생각이었다. 마음은 이미 그 멈추어 있던 차를 지나갔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내 앞의 차와 나 역시 멈추어 있던 차와 같은 모양새로 헛바퀴만 돌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일단 비상등을 켜고, 브레이크로 차를 멈춘 후, 폭설로 변해버린 눈이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주변에는 삽을 들고 바닥의 눈을 치우는 분들과 차들을 조심스럽게 안내해 주면서 일단 아래로 내려오게 한 후 한 번에 올라가서 그 언덕을 지나가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일단 아래로 내려오세요.. 그리고 단번에 멈추지 말고 올라가셔야 해요!"


"아니 그런데, 저 앞에 서 계신 분들이 계셔서 단번에 못 올라갈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거기까지 못 가실 테니, 일단 신경 쓰시지 말고 쭉 한 번에 올라가기만 하세요!"


의심반 걱정반으로 나는 일단 부릉 출발하기 시작했다. 남자분의 말씀대로 내 차는 바로 앞에 계셨던 분들이 있는 곳 까지도 가지 못하고 다시 멈추려고 했다.


부릉! 부릉!


액셀을 너무 밟았더니 차에서는 엔진이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일단 발을 떼고, 다시 천천히 밟고 올라갔다. 다행히 차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올라갔고, 일단 1단계 언덕배기는 통과했다.


다음은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두 번째 언덕배기이다. 여기는 횡단보도가 있어서 더 걱정이었다. 앞서 올라온 차들 역시 비상등을 켜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여기서는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지하주차장에는 억지로 한 대를 댈까 말까 한 곳에 내 차를 살포시 주차를 하고 올라왔다.


나름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고, 20년간 운전하면서 이렇게 눈 때문에 식겁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괜스레 관리사무소 아저씨에게 입을 삐죽였다.


"아저씨, 저 아래 언덕에서 올라오려다가 죽을 뻔했어요!"


"거기는 용인시청이랑 수지구청에서 제설 처리 해야 해요! 우리가 아냐!!"


아저씨는 내가 불평을 늘어놓는 줄 알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고생했네.. 이 말을 듣고 싶었는데, 아마도 많은 분들이 관리실 분들에게 제설이 빨리 안되면 어떻게 하냐면서 민원을 넣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첫눈, 이렇게 요란하게 시작하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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