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대한 고백

아빠에 대한 고백

by 정겨움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




‘누가 더 불행한 가정 속에서 자랐는가’ 대회가 있다면 상위권 안에 들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들 정도로 우리 집은 불행했다.


집 밖에선 성공한 사업가로,

사업가의 아내로,

착한 딸로 살고 있었지만,

집안은 늘 긴장이 서렸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을 안고 지냈다.


나의 어린 날은 콩가루 집안이 갖출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었는데, 그 조건을 만들어 준 큰 지분이 아빠에게 있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싶었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밤이면 ‘비행기가 떨어져서 아빠가 죽기를’ 기도했다. 아빠만 사라지면 내게도 행복한 가정이 생길 것 같았다.


30대 후반이 된 나는 이제 안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달콤한 비스킷으로만 채워진 상자’가 아니라는 걸. 징글맞게 싸우면서도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암묵의 룰이 필요하다.


‘가족인데 뭐 어때?’가 아니라 ‘모든 관계는 예의를 지켜야 해!’ 하는 성숙함을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부간,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생활 속 불편함을 조근조근 대화로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행복한 관계는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은 ‘있다’는 말 보다 ‘함께 만든다’는 표현이 적절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교훈을 ‘아빠’로부터 배웠다.




-아빠-

아빠는 선 넘기 선수다. 본인이 화가 나면 모든 걸 집어삼킨다. 어렸을 적, 난 아빠의 존재가 버거웠다. 인생의 모든 초점이 사업에 맞춰진 그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그 커다란 손과 쇠 야구 방망이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채기를 내는 한 인간이, 다정할 때는 한 없이 다정다감해서 나를 물고 빠는 남자가 모두 아빠였다.


-한 남자-

아빠를 ‘인격체’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운 감정이 옅어졌다. 내 아빠가 한없이 부족하고 미완성된 존재임을 자각했다. 어른이지만 지지부진하게도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어린 내 눈에는 보이는 많은 것들을 아빠는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그에겐 모든 기준이 본인이었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패고 때려 부셨다. 많은 것을 갖고 있었지만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그로부터 모든 것은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반타의 적으로 그의 곁을 떠날 수 없던 내 눈에는 홀로 남겨지는 그가 보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않은 척했다). 난 그 남자가 안쓰러웠다.



-장애인-

2010년 겨울. 아빠가 쓰러졌다. 세계를 누비며 사업을 하던 그가 뇌경색이라는 병명으로 쓰러진 것이다. 골프장에서 골프공을 줍다 그대로 한쪽으로 기울어 넘어졌다고 들었다.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생각보다 혈관이 막힌 부위가 컸다. 오른쪽을 움직이지 못했고, 언어를 관장하는 왼쪽 뇌가 막혀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아빠는 내 미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픈 아빠와의 싸움은 무조건 내가 이기기 마련이니까!

소리를 지른 날이면 어김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짜증내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면

“갠찬하..”라고 말하는

아빠의 어눌한 답변이 날 아프게 했다.


아빠에게 내가 그랬듯,

내 삶에서 아빠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이 글은 징글징글하게 사랑하는 아빠의 곁에서 함께 한 36년의 기록이다. 건강한 아빠와의 기록이었다면 원망으로 가득했을 글들이 사랑으로 가득함을 글을 다 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오늘도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절뚝절뚝 걸으며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휘돌고~. 한 손으로 밥을 드신 후, 7시 50분부터 소파에 앉아 딸의 출근 전화를 기다렸을…


세상 하나뿐인 나의 아빠에게 이 글을 바친다.



수없이 아빠를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내다 버리지 못한 지난날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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