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모든 것에는 깨진 틈이 있어.
빛은 바로 거기로 들어오지.
-김갑수,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우리는 편하게 내일을 말하고, 미래를 꿈꾼다. 마치 보장되어 있듯이 시간을 쓰고,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함부로 다루기도 한다. 주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술 담배를 전혀 하시지 않는 아빠가. 너무나 건장하고 힘이 세서 어린 내게 무섭기만 했던 나의 아빠가 하루아침에 쓰러졌다. 그가 누리며 살던 자유, 인간으로서 지켜졌던 존중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혼을 두 번이나 한 내 아빠의 곁을 지켜 줄 아내는 없었다.
2010년 12월.
어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더 출근하고 싶지 않았어~
-나도!
동료들과 희희낙락 수다를 떨며,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나) 네, 작은 아버지.
(작은아버지) 어 그래. 잘 지내니?
뜬금없는 월요일 아침 전화였다.
(작은아버지) 근데 어쩌냐.. 네 아버지.. 이제...
(나) 왜요?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작은아버지) ….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토요일에.. 너는 서울에 있으니까. 괜히 걱정할까 봐 미리 말 안 했는데 네가 알아야 할 것 같다.
(나) 쓰러지셨다고요?
......
회사 옥상이었다.
유난히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던 아침.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세상에… 우리 아빠가 뇌경색이란다.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고, 오른쪽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빠가 쓰러지기 전 주에 원래 서울에서 아빠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다.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속을 미뤘다. 그것이 온전한 아빠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인생의 기회였음을 그때는 몰랐다.
KTX를 타고 천안에 내려갔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빠의 몸에 너무 많은 호스가 끼워져 있었다. 몸이 퉁퉁 불어 있어서 잘 생긴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빠가 퉁퉁 부은 눈을 뜨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왈칵,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그냥 다 미안해...
물 한 모금도 드실 수 없어서 입술은 다 갈라져 있었다. 아빠의 양손은 침대 난간에 묶여 있었는데, 묶인 줄을 풀려고 힘을 줘서 손목 언저리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나) 이것 좀 풀어주시면 안 돼요?
간호사에게 부탁했지만
“ 환자분이 난간에서 넘어지거나 머리에 충격이 가면 위험할 수 있어서 안됩니다."라는 메마른 대답뿐.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아빠의 말을 내가 100%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내 말을 아빠가 100% 알아들을 수 있었던 그때,
생각해 보면 아빠는 항상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줬다. 그 사랑이 내게 행복을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빠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항상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을 받았기에
아빠 혼자 허리도 세우지 못하던,
“응응…” 소리밖에 하지 못했던,
알몸 아빠를 내 손으로 목욕시켜줘야 했던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아빠와 내 삶의 큰 균열로, 틈 사이로
(자칭)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아빠와 내 삶에 큰 균열이 생긴 날
그 틈으로 우리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쓰러졌던 날 손을 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