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딸의 배신(1)
-엄마한테 올래?
엄마한테 간다는 것은 언니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빠를 배신하는 것이다.
주저 없이 “응”이라고 대답하고 짐을 싸서 엄마한테 갔다.
그날 밤. 엄마가 거처하고 있던 외할머니 댁은 난리가 났다. 아빠가 쳐들어 온 것이다.
(아빠) 네가 어떻게 겨움이를 데리고 가? 지 자식 아니라고 버리고 간 년이. 당장 겨움이 내놔. 다 부숴 버리기 전에!
두려워서 집안의 구석으로 구석으로 더 깊게 숨었지만, 결국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빠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이혼소송을 몰래 내고 외할머니 댁으로 언니와 함께 피신한 엄마 곁에 있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난 아빠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타고 이젠 아무도 없는 집으로 향했다.
(아빠) 저 년이 널 왜 데리고 간 지 알아? 나쁜 년…. 이혼 소송하는데 불리하니까 그런 거야. 너는 그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거길 따라가니?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해라”
아주 어렸을 때, 언니와 두 오빠,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 아빠가 지은 2층 집에 함께 살았다. 우리가 함께 모여 살던 때. 큰 오빠가 잘못을 하면 아빠는 쇠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엉덩이 살이 터지도록 후려쳤다.
(아빠)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알아야 해. 똑똑히들 봐.
큰오빠가 방망이 한 번에 고꾸라지는 모습을 작은오빠, 언니, 나, 엄마는 나란히 일렬로 서서 지켜봐야 했다. 내 나이 6살이었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참지 못한 엄마가 말리면 그때부터는 2차전.
(아빠) 이 썅년아~ 네가 자식 교육을 이렇게 해 놓고, 뭐? 그만해? 그럼 네가 맞어. 네가 맞어!!!
엄마는 아빠의 손과 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아빠는 화가 풀릴 때까지 때렸다. 그 모습을 큰오빠와 작은오빠와 언니와 나는 또다시 울면서 지켜봤다.
(아빠) 울어? 왜 울어! 맘이 아픈가들 보지? 그럼 너네가 대신 맞을래? 대신 맞을 거 아니면 당장 안 그쳐???
내 어린 날, 이 기억들이 큰 상처가 된 것은 폭력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밟히는 상황에서도 내 안위를 지키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서지 못하는 바닥의 비릿함을 느끼게 해 줬기 때문이다.
10살 때, 엄마는 이혼을 결심했다. 소송장이 오기 전에 외할머니 댁에 몰래 피신해 있을 요령으로 아빠 몰래 짐을 쌌다. 나도 엄마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어머니) 잘 들어. 넌 내 딸이 아냐. 네 엄마의 이름은 ‘김미영’ 이야. 알겠니? 그래서 난 널 데려갈 수 없다. 널 끔찍이 사랑하는 네 아빠랑 있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엄마가 지난번에 할머니랑 다툴 때 자식이 3명밖에 없다고 소리 질렀는지, 할머니가 유난히 나를 안쓰러워했는지, 말 많고 시끄러운 내 성격을 엄마가 못 견디어하며 “넌 죽으면 물 위에 주둥이만 둥둥 떠 다닐 거야”라고 말했는지.
단 한 번 따듯하게 안아준 적 없었지만 그 엄마를 사랑했다. 갓 태어난 병아리가 닭 뒤 꽁무니만 쫓아다니듯 사랑받고 싶었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혼자 손을 들고 벌을 서기도 했고, 그녀가 믿는 종교 활동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사랑받지 못했다 해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밖에서 데리고 온 자식을 제 자식처럼 품고 키웠던 그녀의 시간이 얼마나 지옥이었을지 난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결국 이혼을 하게 된 그때, 엄마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마지막 순간 날 버리고 간 것도 남편을 향한 마지막 복수였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젠 충분히 헤아린다.
그땐 어려서 그 모든 걸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가 전화로 다정하게 오겠냐고 물었을 때 마냥 행복했다.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걸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그 후, 엄마를 기다렸지만 연락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아빠만 없으면 내 인생은 행복해질 것 같았는데 결국 나는 아빠 딸이라 아빠 곁에 버려졌다.
그게 너무 싫어 나는 아빠 딸이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댁에서 나를 데리고 나오는 아빠의 얼굴은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슬펐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