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가 이혼했으면 좋겠어.

<한 남자> 딸의 배신(2)

by 정겨움
난 엄마가 아빠랑 이혼했으면 좋겠어.


두 명의 엄마에게 말했었다. 8살 때 나를 키워 준 어머니께 한 번. 20살이 넘어서 내 친 엄마에게 다시 한 번. 어릴 때는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모르고 했다. 이혼이 얼마나 치졸하고 힘든 싸움인지도 몰랐고, 부모님 중 한 쪽을 볼 수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아픔인지도 막연했다. 20살이 넘어서 친 엄마에게 말할 때 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혼한 가정의 딸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큰 불이익인지.


근데 나는 따불의 점수를 깎고 시작하는 셈인거다. 띠용~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혼한 집의 딸이라고? 인간적으로 심한 결격사유 아닌가!!! 내 아들을 그런 며느리한테 주고 싶을리가 있나!!!


그래도 눈 질끈 감고 친 엄마에게 말했다. 살면서 내가 겪을 불편한 시선보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삶이 찌그러지는 모습을 보는 아픔이 더 컸기에.


30살의 중반이 되고 그 사이에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이혼을 한 집의 딸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험도 진짜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부족한 내 가족을 더 따듯하게 안고 가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런 결함(?)을 커버할 만큼 건강하고 예쁘게 내 삶을 보살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아빠는 친 엄마와 내 가슴을 쑤시는 말도 참 잘했는데 “네 년이 버리고 간 겨움이” “넌 엄마 자격도 없는 년”이라고 말했고,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가출을 하면 “네 엄마는 널 한 번 버렸으니 두 번도 버릴 거다. 넌 죽을 때까지 이제 네 엄마는 못 봐”라고 했다.


불쌍한 사람.


아빠는 자신의 아픔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린 딸이 받는 상처나, 자신의 아내가 받을 타격에 대해서는 전혀 계산이 없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실인 것처럼 믿고 떠들었다.


아빠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대학생 때 나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진심으로 이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엄마의 삶이 나로 인해서 더 이상 아빠 곁에 묶여 있는 게 괴롭다고.

엄마가 아빠 베개 밑에서 부엌용 칼을 보고 무섭다고 전화한 날이었다.


엄마가 아빠랑 처음 다시 합치고 얼마 후 맞았을 때, 엄마는 이혼을 하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겨움이 너는 아빠가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니까 여동생만 데리고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또 나만 두고 다들 가는구나.. 나중에 커서 나도 결혼을 할 텐데.. 아무리 그래도 이혼 두 번은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엄마에게 나를 봐서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다. 시집갈 때까지만이라도 참아달라고 했다. (36살이 되도록 시집 못 갈 줄 그때는 모르고..)


그랬던 내가 엄마에게 먼저 말한 것이다. 제발 이혼하라고.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엄마의 삶이 더 이상 얼룩지고 힘든 걸 보고 싶지 않다고 구구절절이 적었다.


전화가 왔다. 아빠는 엄마가 이혼소장을 넣었다며, 이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 다음날 전화가 와서 엄마가 이혼에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넣었다며 신세한탄을 했다. 가만히 들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이혼을 하게 되면 넌 죽을 때까지 엄마 볼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라고 했다. 중. 고등학생 때는 이 말에 경기를 일으키며 반응했는데, 대학생이 되었으니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었기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반응이 뜨드미적지근하자 아빠는 화가 났다.


(아빠) 네가 진짜 딸이면 이럴 때 부모가 합쳐지도록 전화해서 엄마를 설득해야 하는 거야.

(나) 네 알겠어요.


'이번에도 아빠는 나를 빌미로 엄마를 잡으려는 것이구나!'

그 전에도 한바탕 크게 싸움이 있고 나면 아빠는 내게 전화해서 백화점으로 나오라곤 했다. 예쁜 옷을 사주고, 맛있는 밥을 사주었다. 동생을 데리고 잠적한 엄마랑 내가 어떻게든 연락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고, 엄마에게 연락 좀 해보라며 배시시 웃곤 했다.

늘 나를 이용해서 엄마의 발목을 붙잡는 아빠가 너무 싫었다.


엄마는 그때 이혼하지 못했고, 5~6년이 지난 시점에 이혼했다.


아빠는 여전히 모른다. 그때 엄마를 부추기고, 이혼하라고 하고,

엄마에게 재판이 유리하도록 아빠가 엄마 손찌검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을 내어 준 사람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여겼던 당신의 막내딸이었다는 걸.




이혼을 해서 난 행복해졌고
아빠는 불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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