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딸의 배신(3)
다급히 전화가 왔다.
- 겨움아 엄마 좀 살려줘. 네 아빠가 머리채를 잡아서 내동댕이치고 끌고 다녀, 지금 겨우 방에 문 잠그고 숨어있어.
분노를 넘어서서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당장 고꾸라져 죽어 버리고 싶었다.
내가 아빠에게 물리적인 힘을 쓸 수 없는 딸인 게 한스러웠던 적이 너무 많았다. 엄마를 향해 들어 올리는 아빠의 손목을 비틀고, 부러뜨려서 다신 그 누구도 함부로 내려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려갈 수 없었다. 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나) 경찰서죠? 저희 아빠 좀 말려주세요.
나중에 엄마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니, 아빠는 경찰이 오자 엄마가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으면서 짧은 옷만 입고 다니는 바람난 아내 취급을 했고, 그때 내가 다시 경찰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나) 이게 처음이 아니에요. 저희 엄마 좀 집에서 탈출시켜 주세요.
따로 통화를 한 경찰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아빠는 당연히 내게 노발대발했다.
“호적을 파겠다”는 둥, “네 아빠가 감방에 가도 넌 오지도 못할 것”이라는 둥, “배은망덕하게 어떻게 경찰에 신고를 하냐”는 둥 세상 모든 원망을 쏟아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답했다.
(나) 아빠가 아무리 제 아빠 여도, 저한테 이렇게 말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엄마한테도 손찌검하지 마세요. 또 그러시면 또 경찰 부를 거예요.
그렇게 나는 내 엄마를 살리기 위해
내 아빠를 숱하게 죽이고,
욕하고,
배신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칠 때의
아픔
(나) : 엄마, 아빠가 집 안 컴퓨터까지 다 부셔서 벽에 피 묻어있고, 식탁 유리 다 깨져서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던 날 기억 나? 아빠가 난리 치고 나가서 엄마랑 나랑 퉁퉁 부은 눈으로, 이제 더 이상 울 기운도 없어서 서로 쳐다보다가 말했잖아.
(엄마) : 라면 끓여먹자고?
(나) : 응 ㅋㅋㅋㅋㅋㅋㅋ
(엄마) : 그 날이 그 날 아니야? 기분 전환이나 하자고, 아산댐으로 가서 보트 타고 막 소리 지르고 논 날.
(나) : 맞아. 밖에서 맛있는 거 사 먹고 보트 타고 스트레스 풀고선 집에 들어올 때 진지하고 기운 없는 척해야 한다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연기 연습하고 그랬어. ㅋㅋㅋㅋ
(엄마) : 응. 진짜 옛날이다.
(나) : '아빠는 왜 저럴까?'하고 매일 논문 쓰듯이 엄마랑 이야기하다 나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또라이다'하고 결론 냈는데. 그치? 아직도 난 그때의 아빠는 '내 아빠' 하기 싫어.
(엄마) : 엄마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다 같이 고생한 거지 뭐. 그러니까 너도 남자 잘 만나야 해.
(나) : 왜 이야기가 갑자기 그쪽으로 흐른대? ㅋㅋㅋㅋㅋ
(엄마) : 힘겨운 순간마다 자식을 낳은 걸 후회했어. 생명에 대한 책임이 이렇게 무서운 건데, 겁 없이 낳았구나 싶었지. 다시 태어나면 결혼도, 자식도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어. 근데 나이가 들고 너희가 이렇게 크니까, 자식이 없었다면 너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 든든해.
(나) : 그럼, 다시 태어나면 결혼할 거야?
(엄마) : 아니.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의 삶에서 내가 ‘위로가 되는 딸’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