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정말 '대물림'되는 걸까?

<한 남자>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by 정겨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문제없이, 보통 사람보다 건강한 멘탈을 지니고 살고 있지만 나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우선, 난 양주를 마시지 못한다.

냄새를 맡는 순간 역하다.


아빠는 엄마를 때릴 때 진열장에 모아 둔 양주 한 병을 병째로 들이마시고 시작했다. 풍비박산이 난 집안에 들어서면 늘 양주의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는데, 그 냄새가 닿아있는 기억 때문에… 뒷날 머리 깨짐, 숙취도 없다는 값비싼 양주를 입에도 못 대는 사람이 되었다.


연인관계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위에 대해서 용납을 아예 못한다.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나’다. 그런 유사한 행위가 일어나면 난 속으로 ‘이 자식, 나중엔 나 때리겠네.’ 생각하고, ‘너도 결국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구나’ 아빠의 프레임에 넣고 그 관계를 끝내려고 한다. 그렇게 상대를 몰고 가는 행위가 건강하지 않음을 알지만, 여전히 내겐 어려운 허들이다.


아빠로부터 시작된 폭력의 역사는 오빠로 이어져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다.

힘으로 제압당해서 맞을 때의 공포. 무력감. 비참함 감정을 안겨줬다.


아빠의 못된 점을 쏙~ 빼닮은 작은 오빠는 언니와 나를 때렸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비열하기 짝이 없었는데 화를 내는 기준이 없다는 게 정신병자 수준이었다. 집에 와서 씻지 않고 강아지를 만지거나,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 물기를 제대로 닦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방으로 들어와.


오빠가 말하면 언니와 나는 속수무책 방으로 들어갔다.


‘딸깍’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방문을 잠그는 소리와 함께 때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똑같은 방식으로 때린 적이 없었는데 싸대기를 맞아서 양 볼이 팅팅 부기도 했고,

파리채로 손바닥 100대를 맞아 한 동안 연필을 쥐지 못하기도 했다.


즐겨 사용했던 방법은 ‘넘어트리기’였다.

세워 놓고 발을 계속 걸어 넘어트리는 것인데, 일어나지 않고 끙끙대면 발로 밟기 시작했기 때문에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야 했다. 아프다고 소리를 내면 더 맞았다.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일어나야 원래 계획대로, 그 양만큼만 맞을 수 있었다.


그렇게 넘어지다가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오빠가 던진 잠바 자크에 머리가 맞아 피가 흘러 땜빵이 생겼다.


어린 시절 키가 작고 왜소해서 130cm가 채 되지 않았고, 30kg이 넘지 않았다.

그 작은 몸으로 오빠의 폭력을 견뎌야 했다.


한바탕 때리고 나면 오빠는 바로 후회했다.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거나 치킨을 시켜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게 너무 싫어서 난 옥상에 숨어서 오빠가 나를 찾아도 모른 척하고 나오질 않았다.




키워 주시던 어머니가 이혼을 하기 위해 언니와 함께 집을 나간 후, 오빠와 나 할머니 그리고 아빠 네 식구가 살았다.


내 인생 마지막으로 맞았던 날,

언니 없이 홀로 방에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두려움은 두 배가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빠는 방문을 잠갔다. 처음은 익숙하게 발을 걸려 넘어트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더 맞지 않으려고 일어나면 내 꼬인 스텝 속에서 다시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수없이 일어나기를 반복.


갑자기 오빠의 주먹이 얼굴을 후려쳤다.

코가 깨지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손에 파묻고 한참을 끙끙댔다.


-당장 일어나!! 안 일어나????


오빠가 소리를 질렀지만 들리지 않았다. 코의 얼얼함이 머리까지 전해져 머리가 지끈거렸다.

따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피.

쌍코피였다.


쌍코피가 터지는 걸 거울로 본 순간, ‘더 이상 맞지 않겠구나’ 안심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오빠에게 메일로 물었던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때린 거냐고,

방학이 되면 더 자주 맞아서 내가 방학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아느냐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빠의 답이었다.


개자식.





난 아직도 오빠를 용서하지 못했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오빠에게 그런 걸 물려준 아빠의 옛날은 여전히 용서할 수 없다. 괴물이 된 오빠도 문제지만, 그 본보기는 아빠였으니까.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생각해 봐도 때리는 것들은 똑같이 뒤지게 맞아봐야 한다고 결론이 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이라는 관계 아래,

부모라는 명패 아래,

주먹을 휘두르는 모든 사람들이 제. 대.로. 벌 받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아팠다.
여전히 아파서 놀랍고,
서글펐다.
keyword
이전 17화"경찰서죠? 저희 아빠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