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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Oct 24. 2021

섬에서 섬으로

제주도

 섬에서 또 다른 섬 여행을 떠났다. 세화에서 남쪽으로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가면 여객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왔다. 거기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여의도 3배 정도 크기의 화산섬, 우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주도 내에서만도 관광할 거리가 많아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우도 여행을 쉽사리 일정에 넣지 못한다. 왔다 갔다 다녀오는데 하루를 통째로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우리는 시간이 많았고 기꺼이 우도를 들리기로 했다.

 동네를 한 바퀴 하면서 파악해뒀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성산 방향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는 제주도민 할머니 세 분이 앉아 계셨다. 알아듣기 힘든 제주 사투리, 조용한 도로, 가로수 어딘가에 붙어 맴맴 울어대는 매미 소리, 드리워진 나무 그늘 풍경이 편안해 보였다. 버스를 탄다는 생각에 들뜬 아이의 종알거림에 나도 덩달아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레었다. 버스를 타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이 차량 렌트를 하지 않고 버스로 제주도를 여행하고 있었다. 젊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 외국인,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까지. 짐가방도 대형 트렁크에서부터 등에 달라붙어 곤충의 등껍질을 연상케 하는 배낭까지, 버스를 타는 여행객들은 다양했다. 제주도를 올 때마다 차를 대여해서 다녔던 나로서는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린 나 자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하늘이 아무리 깊고 광활해도 우리는 우리한테 허용된 하늘밖에 못 볼지도 몰라요.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슬퍼져요. 할 수 있는 한 얼굴을 하늘로 들고 그냥 걷고 싶어 져요”


 정혜윤 작가의 「사생활의 천재들」에서 읽은 글귀처럼 나 자신의 한계에서 조금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여객선은 수시로 여행객들을 날랐다. 너른 장판 같은 선실에 들어서자 빼곡하게 들어찬 관광객들로 숨이 막혔다.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캐한 석유 냄새가 풍겼고 배는 통통거리며 출발했다. 



 우수수 쏟아져 내린 관광객들은 저마다의 길로 흩어졌다. 우리는 전동차를 빌려 우도를 돌기로 했다. 길마다 전동차를 대여해주는 가게들이 마주 보고 경쟁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고객을 잡기 위해 시간을 많이 준다거나, 저렴한 가격이라는 말을 외치며 한 팀이라도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가장 성의 있게 고객을 유치하고 있던 아저씨의 가게로 들어갔다. 보통 인터넷 예약을 하고 가면 현장에서보다 저렴하다고 생각하는데 흥정을 하다 보니 가격은 비슷해졌다. 세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전동 오토바이를 물었더니 미니 자동차를 보여주었다. 창문과 외벽으로 탄탄하게 보호되어있는 자동차와 같은 종류였다. 우리는 문이 없는 오토바이 같은 것을 타면서 우도를 맨살로 느끼고 싶었다. 옆이 뚫린 전동차는 없냐고 물으니 그건 2인용이랬다. 미취학 아동도 1인으로 치는 (깍두기로 쳐주지 않는) 야박한 셈법이었다. 정원이 두 명인 전동차와 1인용 전기 자전거를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짝수로만 탈 것들이 규정되어 있는지 3인 가족으로서는 억울함이 들었다. 

 어쨌든 받아 든 전동차는 오토바이 형식의 것이었다. 다소 촌스러운 분홍색 바탕에 오래된 연식 때문인지, 바닷바람 때문인지, 붉게 부식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운전석은 멋스러운 오토바이 모양이었는데 옆에 딸린 좌석은 그저 앉아만 있는 수 있는 자리였다. 투명한 아크릴 소재의 천막이 둥글게 말려 처마를 만들었는데 햇빛을 막아 줄 만큼 가려지지는 않았다. 부자(남편과 아들)는 그 핑크 오토바이를 타고 나는 홀로 검은색 최신식 전기 자전거를 탔다. 

 제 얼굴보다 큰 헬멧을 머리에 쓰고 조그만 주먹으로 옆에 있는 손잡이를 꽉 쥔 아이의 모습이 긴장되어 보였다. “무서워?”라고 묻는 말에 “아니? 하나도 안 무서운데?”라며 허풍을 떨고는 손잡이에 손을 더욱 꽉 쥔다. 둘의 꽁무니를 따라 천천히 길을 따라갔다. 덜컹거리는 바닥을 그대로 흡수해 잡은 봉에 머리를 부딪치는 아이를 보니 걱정되었다. 다가가 괜찮으냐 물어보려 했더니 그마저도 신나서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났다. 서로를 잡고 추격하는 놀이가 계속되다가 이끌리는 풍경에 잠깐 멈춰 풍경을 즐겼다. 하얀 모래와 투명한 바다가 펼쳐진 서빈백사에 발을 담그고 하얗게 부서진 산호초들과 조개껍데기의 다른 모양들을 자꾸만 해 집어 봤다.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여기가 하와이다’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산물 가득한 칼국수를 한 젓가락 먹는 틈에도, 우도 땅콩이 골고루 뿌려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풍경은 멈추지 않고 눈으로 들이닥쳤다.   


 

 선명한 원색의 파라솔들이 해를 가려주고 연둣빛 잔디가 억세게 자라 있는 카페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길 때였다. 앞으로 전동 오토바이들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있었고 건너편에는 잔잔한 바다가 햇빛에 일렁이고 있었다. 평온한 시간이었다. 카페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바람을 맞으며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으면 싶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아이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잔디밭을 경계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만 뛰어다니며 몸을 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잠깐 눈을 돌렸다. 파라솔과 파라솔 틈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뜨거운 햇볕을 느꼈다. 눈을 감고 바다 내음을 맡고 옆에 앉은 신랑과 오붓하게 손도 잡았다.

 평온한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고요한 순간, 부모들은 불길한 징조를 느끼곤 한다. 너무 조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섭다. 얼른 주변을 둘러 아이의 행적을 찾았다. 잔디밭에서 뛰놀던 아이는 어느새 세워져 있던 전동 오토바이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주차된 곳은 뒤로 약간의 경사가 있던 바닥이었다. 아이가 핸들을 옆으로 살짝 돌렸을 뿐인데 브레이크가 풀려 슬금슬금 뒤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머나!! 안돼!!"


 옆에 있던 신랑과 나는 거의 동시에 의자에서 튀어 나갔다. 조금 더 빨랐던 신랑이 오토바이가 차도로 내려가기 전에 붙잡았고 아이도 다치지 않았다. 다행인 마음을 쓸어안고 아이를 다그쳤다. 놀란 마음에 감정을 쏟아내고 보니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이를 꾸짖은 내 행동도, 철렁했던 가슴도 햇볕을 그대로 받아 낸 팔처럼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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