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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Jul 15. 2021

바다 위에 앉아서 생각했다

패들 보드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등지고 바다 위를 가르는 까만 젊은이들의 몸놀림은 대범했다. 바다 저 멀리까지 나가 패들 위에 떠 있는 무리들도 보였다. 잔잔한 물결 위에서 유연하게 노를 젓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대범하지 못하니 유연하게 자유를 누려보고자 자꾸만 시선이 가는 그들처럼 바다 위에 떠보기로 했다.


 마주한 파도는 눈으로만 봤던 파도와 달랐다. 잔잔하기는커녕 힘차게 달려와 강하게 철썩이며 부서졌다. 보드 자체를 처음 이용해보는지라 덜컥 겁이 났다. 부서지는 파도만 넘어가면 잔잔한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강사의 독려에 노를 꽉 쥐었다. 수직으로 잡아 들고 패들 옆부분을 긁는 느낌으로 앞에서 뒤로 느릿하게 저었다. 파도를 마주치면 패들링을 잠시 멈추고 파도에 맡겼다. 패들 코 부분이 뱃머리처럼 넘실 떠올랐다가 파도에 부딪히며 쑥 내려갔다.


'우워후~~'


 무서움을 쫓아보려 소리 내어 바다를 위협했다. 호기롭게 덤볐지만 성난 파도가 패들을 덮쳤다. ​어찌해볼 겨를도 없이 패들에서 나가떨어져 허우적 댔다. 패들에서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발목에는 패들과 연결된 끈이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끈만 찾으면 되었지만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발목을 더듬었다. 묶인 끈을 찾고 패들을 가까이 끌어와 담을 넘듯이 올라탔다. 자세를 다잡고 나아가려 했지만 파도는 어디 한 번 더 까불어봐라는 듯이 매몰차게 밀어댔다. 패들은 등 떠밀려 암초 더미 근처로까지 밀려났다. 강사가 암초는 더 위험하다고 했는데 죽기 살기로 노를 저었다.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앞으로, 앞으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두 팔에 힘을 꽉 쥐고 파도를 넘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들을 넘어서자 잔잔한 바다를 만났다. 노를 젓지 않아도 바다 위에서 넘실댔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잠깐 숨을 돌렸다. 망망대해에 몸을 맡기고 헤쳐온 방향으로 돌아봤더니 떠나 온 해안가가 까마득하다. 해안가 파도들은 아직도 격렬하게 부서지고 있다.  


 고요한 바다 위에 앉아서 어떤 큰 기쁨이나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다. 잠깐의 흥분과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력감이 컸다. 패들이 뒤집어져 물속으로 빠지면서도 본능적으로 살고자 했던 욕망이 크다는 것도. 얼른 땅 위에 발을 딛고 싶었다.


 바다로 나아가고자 할 때 거칠게 거부하던 파도는 땅으로는 가는 길은 등 떠밀어 주었다. 해안가에 도착하니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안도했다. ​파이는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패들 보드의 노를 저으며 흘려보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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