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충실하기
코로나를 기점으로 여행이 상징했던 자유라던가, 새로움, 도전 같은 희망찬 의미는 적어도 올해까지는 적용되지 못할 듯하다. 마음껏 언제든지 누리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 이상. 그러면 현시점에서 여행을 다시 생각해본다. 여행을 왜 꼭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무엇, 자유라고만 생각해야 하는지를. 떠나지 않아도 지금 내 삶에서도 여행과 닮은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삶도 여행처럼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전에 다녔던 여행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지금 당장,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도 여행자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이번 코로나 사태는 원래 가려고 계획했던 음식점이 문을 닫아 다른 음식점을 찾아야 하는 것과 같은, 하나의 이벤트로 적용될 수 있다. 암울한 시간이었지만 일상적인 평범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난날들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서 빨리 일상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현재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마스크를 쓰고라도 지금 이곳에서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하듯이 살아보자고. 근처에서 재미를 찾고 소소한 아름다움을 수시로 즐기면서 살아간다면 매일 똑같다고 생각한 일상의 시간이 풍부해지지 않을까. 떠나지 않는 순간마저도 꽉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본 작가 사노 요코는 그녀의 책 「사는 게 뭐라고」에서 “생활은 수수하고 시시한 일의 연속”이라며 싱겁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라며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자질구레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금보다 단 0.0000001%라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도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좋은 곳으로 멀리 떠나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이소영 작가의 책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에서 본 글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두 작가는 일상에서 가치를 찾으면 풍부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금요일 오후, 신랑과 아이와 나는 돗자리를 들고 호수 공원으로 나갔다.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지나가는 다둥이 부모,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뛰고 있는 젊은이, 데이트하는 커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호수 공원 주변에는 빼곡하게 아파트 단지들이 있고 병원이며 학원이 들어찬 상가들도 즐비하다. 내년이면 오픈하는 쇼핑센터 자리에서는 마감을 향한 망치질이 계속되고 있었다. 호수 공원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서울을 드나드는 광역 버스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새삼 내가 보냈던 유년기와는 다른 동네 풍경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내 아이는 어린 시절 동네 풍경으로 신도시의 모습을 떠올리겠지.
어렴풋이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꽉꽉 거리던 오리도, 지저귀던 새소리도 사그라들고 별처럼 가로수의 불들이 들어온다. 시야가 좁아지니 들리는 소리가 더 커진다. 돗자리 위에서 색칠공부를 하겠다고 열심히 칠하는 아이의 사각거리는 색연필 소리, 산책하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 웃음소리,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돗자리의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모든 소리가 어우러져 귓가에 다정하게 흘러들어온다.
배경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옛날만큼 동네의 정겨운 모습은 기대할 순 없지만 만들 수는 있다. 소중한 자연의 소리를 듣고 이웃과 왕래하며 행복할 수 있는 습관을,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를 찾는 날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여행이 삶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