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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10. 2020

하루키는 동생의 첫 고양이다

하루키가 그날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키는 동생의 첫 고양이다. 어쩌다 이웃나라 작가의 이름을 붙이게 돼서 좀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이렇게 하루키 이야기를 쓰게 될 줄 알았으면 신중히 이름을 골랐을 텐데 그 당시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 당시란, 하루키가 처음 우리 자매를 따라온 사 년 전 가을을 말한다.

     

  걷기에 좋은 날들이었다. 여름의 기운이 물러나면서 숲이며 골짜기마다 조금씩 색이 들어가는 나날. 길가 풀숲에 이삭을 부풀리고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 개밀이며 오리새 같은 벼과 식물들도 저마다의 탄력으로 바람의 환영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 일과를 서둘러 마친 우리 자매도 그 풍경의 흐름을 타고, 날마다 걷는 즐거움에 탄력이 붙었다. 대체로 아랫마을을 지나 삼거리까지 갔다가 돌아오지만 마음이 동하면 더 나아가 산책이 아닌 도보여행 수준이 되기도 했다. 그 해 가을엔 마음이 동하는 날이 제법 되어서 일주일이면 한두 번은 도보 여행이 되었다. 마음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인지, 한 번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 되돌아서는 게 내키지 않는다.

  삼거리 대로에 이르러 어느 쪽 길을 택하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집까지 오는 게 가능하기에 더욱 그랬다. 삼거리 오른쪽 길을 택하면 마을 두어 개를 거쳐 마지막에 아주 가파른 산길을 올라 우리 집 위의 고갯마루 도로에 닿았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오는 게 세 시간 가량 걸린다. 왼쪽 길은 읍내를 경유해 다른 산골 마을을 거쳐 고갯마루 도로에 닿는 길인데 거의 여섯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세 시간 코스와 여섯 시간 코스 두 길이 우리 집 위의 고갯마루 도로에서 일직선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 지점이 또 삼거리를 이루어, 가운데 내리막길이 우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세 시간짜리는 가파른 산이 솟아 있어 겨울산 코스라 부르고, 여섯 시간짜리는 달빛 마을을 거쳐 오기에 달빛 코스라고 우리는 불렀다.   

     

동생과 나. 누가 지팡이 오래 들고 걷나 내기 중

  하루키를 만난 날은 드물게 달빛 코스를 택한 날이었다. 아침 열시 경 집을 나선 것이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준비해간 커피도 마시고 샌드위치도 먹으며 쉬는 바람에 거의 일곱 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그 가을, 어쩌면 가장 긴 외출이었던가 싶은 날이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도로에서 우리 집 가는 샛길로 들어섰다. 몇 걸음 걷는데 길옆 풀숲에서 풀피리 같은 가느다란 울음이 들렸다. “뭐지?”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에이용, 에이용. 소리가 몇 번 더 이어지더니 곧 무성한 풀을 헤치고 조심조심 작은 동물이 기어 나왔다. 갈색 아기고양이였다. “어머! 너무 귀여워.” 동생이 반짝 반응을 하며 다가갔다. 다른 건 몰라도 걷는 것만큼은 나보다 못한 동생이다. 막판엔 말도 못하고 간신히 따라오더니만 역시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는 달랐다.

  “배 고픈가봐.” 동생이 배낭을 끌러 남은 샌드위치 끄트머리를 떼어 바닥에 놓았다. 아기고양이는 빵조각에 다가가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뒤로 물러났다. 에이용, 다시 우리를 올려다보며 가느다란 소리를 내었다. 뭔가 호소하는 듯했다. 어쩌지. 우리는 고양이와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목이 마른가.” 동생이 이번엔 물병의 물을 손바닥에 담아 내밀어 보았다. 그 사이 멈칫 물러난 아기고양이는 수풀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춰버렸다. 동생이 야옹아, 하며 계속 불러보아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동생을 채근해 나는 걸음을 옮겼다. 집이 코앞이었다. 얼른 도착해 쉬고 싶었다.


  다음 날에도 우리는 산책을 나섰다. 전날 꽤 무리했으니 한동안은 가볍게 삼거리까지만 다녀올 생각이었다. 마당에서 비탈을 내려와 우체통과 울타리가 있는 입구를 지났다. 동생이 걸음을 늦추며 길가를 유심히 살폈다. 좁은 농로인 그 길의 중간쯤에서 고양이를 만난 것이다. “아직까지 있겠니.” 내가 말하는데 동생이 “가만 있어봐. 들려.” 하며 걸음을 멈췄다. 설마 했는데 어제와 다름없이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곧 아기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내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여기 어디 얘 거처가 있는 건가 싶었다. 수풀 뒤로는 무척 낡은 비닐 창고가 있을 뿐이었다. 철제 뼈대에 반쯤 남은 비닐이 덮여 있고, 그 안에 버려진 농사 자재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그런 곳에서 지내는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가자.” 나는 고양이에게 계속 뭐라 말을 걸고 있는 동생을 잡아끌었다. 이번엔 물도 샌드위치도 없이 나선 거라 줄만한 것도 없었다. 고양이는 우리가 움직이자 다시 풀숲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에 한숨 같은 소리를 내던 것이 계속 귀에 걸렸다. 야옹, 이 아닌 ‘에휴’에 가까운, 뭔가 원망하는 소리로도 들렸다.

  다녀오는 동안 우리는 내내 그 녀석 얘기만 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어미 고양이는 어디에 있는지. 겁을 내지 않고 다가오는 꼴로 봐서는 사람 손을 탄 것 같기도 했다. 털이 깨끗했고 상태가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두 시간 여 만에 우리가 다시 그 농로로 돌아왔을 때 고양이는 또 풀숲에서 기어 나왔다. 좀 더 적극적인 울음에 나오는 동작도 빨라졌다. 몸짓에 반가움이 실린 것도 같았다.

  “아, 어떡해. 분명 우리를 기다린 거야.”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사랑스럽기보다는 애처롭다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언짢았다. 엄마는 어딨니,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다 별 수 없이 또 동생을 채근해 집으로 향했다. 몇 걸음 걷다 돌아보았다. 녀석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하루키, 쮸리, 쮸그리

 마당까지 따라온 첫날부터 고양이는 집 주변에 머물렀다. 보이지 않는다 싶다가도 우리가 문을 여는 소리만 나면 어디선가 달려 나와 반갑게 발치에 맴돌았다. 

  “마당은 괜찮지만 집엔 안 돼.”

  혹시 고양이를 집안에 들일까봐 나는 단단히 일러두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동생이지만 고양이와 살아본 적은 없었다. 동생 집엔 이미 나이든 패키니즈 모녀가 살고 있었다. 어미는 쮸그리, 딸은 쮸리로 한 살 차이였다. 내가 산골에 가서 집짓고 살자 했을 때 동생이 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인 건, 그 쮸그리 모녀 때문이었다. 평생 좁은 공간에서만 살다 이제 늙어 가는 두 녀석들에게 마음껏 자연을 누리게 해 주고 싶다고 했다.

동생 바람대로 쮸그리 쮸리는 산골의 마당도 실컷 즐기고, 하루 두 번 산책도 거르지 않고 있었다. 


  쮸그리 모녀가 마당에 나오면 멀찍이 피하던 고양이가 차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쮸그리와 쮸리는 고양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의식은 하지만 힐끗 곁눈으로 쳐다보는 정도였다. 뭐야 저 이상한 녀석은, 하다가도 사방으로 뻗치는 관심사에 이내 정신을 팔았다. 고양이는 보통 어딘가 높은 곳에 올라 앉아, 신중한 관찰자의 태도를 보였다. 쉽게 흥분하는 두 모녀를 골똘히 내려다보다 때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기도 했다.        

  “난 저렇게 우아한 동물은 처음 봐.”

  동생은 마당 의자 위에 다소곳 몸을 말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저 봐. 늘 두 발을 가지런히 모우고, 꼬리로 그 위를 차분히 덮고 있어. 처음엔 애가 발이 시린가 했잖아.”

  과묵한 아인데, 입만 열면 고양이 얘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툭하면 뭘 가만히 응시하는 거야. 정말 사색적이지 않아. 골똘한 뒤통수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어. 흥분하는 일도 없고, 도무지 흐트러짐이 없어. 밥을 주면 고대로 먹어. 사료 한 알 흩뜨리지 않는다니까.”

  동생의 종알거림이 계속 되어도 나는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내 눈에도 사랑스러운 동물이었다. 동그마하고 폭삭했다. 틈만 나면 털을 고르는 깔끔함은 감탄스러웠고, 움직이는 것을 향해 본능적으로 사냥 자세를 취하는 조그만 몸의 긴장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고양이에게 홀려가고 있는 동생인 것이다. 그러다 결국 집에 들이게 되는 건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잖아도 노견 두 마리를 돌보느라 밤낮이 고달픈 동생이었다. 동물도 나이 들면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쮸그리는 치매 증상으로 밤새 자박자박 집안을 헤매 다녔고, 쮸리는 화장실 가리는 것이 힘들어져 수시로 바닥 청소를 해야 했다. 거기에 고양이까지 들이게 되면 동생의 일과는 완전히 녀석들에게 바쳐질 것이었다.

     

  복잡한 내 심경과는 상관없이 고양이는 마당에 정착했다. 순탄한 과정으로 보여도 어린 생명의 필사적인 선택이고 의지였기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동생은 이미 바빠졌다. 인터넷이 연결되기 전이라 읍내 피시방에서 열심히 고양이 관련 검색을 해보고 필요한 것들을 갖춰 나갔다. 자투리 나무며 보온재를 활용해 고양이집을 만들고, 쉼터도 여기저기 마련해 주었다. 사료와 간식도 여러 차례 바꾸며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거나 잘 먹는 타입은 아니었다. 웬만한 간식엔 반응이 시원찮은 녀석에게 한번은 내가 김을 잘라 내밀어 보았다.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냉큼 받아먹었다. 내 손으로 뭘 줘보긴 처음이었다.

  “아, 얘도 김을 잘 먹네.”

  별 것도 아닌데 어째 코가 시큰한 게 다소 당황스러웠다. 다시 김 한 조각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다가와 김을 물고 갔다.   

 “맛있나 봐. 근데 그런 거 막 줘도 괜찮을까?” 

  옆에 있던 동생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지 않을까. 하루키의 고양이도 그렇다는데.”

  나는 말했다. 그 즈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고양이 식성에 관한 얘기가 씌어 있었다. 자신의 고양이는 식성이 별나서 김과자에 붙은 김만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김을 떼어 주고 자신은 김 없는 김과자를 먹는다는 것이다.    

  “하하, 뭔가 귀엽다. 둘 다.”

  동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으로 고양이 이름이 정해졌다. 하루키. 동생은 김을 장난감 낚싯대에 매달아 놀이로 발전시켰고, 하루키는 지금도 김을 좋아한다.     


  하루키가 우리 생활에 들어올수록 우리 일상은 조금씩 추가되는 것과 달라지는 것이 늘어났다. 길을 걷는 것은 이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거리도 줄어 아랫마을이나 삼거리까지만 다녀오게 되었다. 동생이 짬을 내기 힘들기도 했지만 해가 짧아지면서 나도 길에 나서는 것이 내키지 않아졌다. 동생은 목공에 재미가 들려 툭하면 톱질을 해댔고, 나는 집안에 묻혀 추운 계절의 은둔을 즐기기 시작했다. 겨울 초입의 추위를 나는 좋아했다. 각자 문을 닫아걸고 자신 안에 등불을 켤 때인 것이다. 하지만 그해 겨울, 등불은 켜지지 않았다.

  마당에 남겨진 하루키 때문이었다. 하루 수십 번 창가를 오가며 신경을 쓰게 되니 무얼 해도 마음이 어둑했다. 궁리를 하다못해 하루키를 햇볕방에 들였다. 햇볕방은 동생과 내 집 현관 앞에 길게 이어진 일종의 온실 공간이다. 바닥은 나무로 마루를 깔고, 천장과 바깥벽은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유리보다 가볍고 튼튼한 재질로 막은 곳이었다. 볕이 들 동안은 한겨울에도 여름처럼 기온이 올라 난방 효과가 컸다. 현관을 활짝 열어놓으면 위로는 따뜻한 공기가 들어오고, 아래로는 집안의 찬 공기가 흘러나가 집안이 훈훈해지는 것이다. 흐린 날만 아니면 겨우내 장작난로를 아침에 한 번 때는 걸로도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하루키를 들인 뒤로는 현관을 열어놓을 수 없어 햇볕 난방은 포기해야 했지만, 마음 불편한 것보단 추운 게 차라리 나았다. 하루키는 햇볕목욕을 즐겨 내가 마련해 준 폭삭한 바구니에 들어앉아 그 조그만 몸을 닦고 또 닦았다. 하지만 햇볕방은 볕이 사라지는 순간 기온이 이내 내려가 버렸다. 내 근심은 해결되지 않았다.   

     

햇볕방에서 양말 인형과 놀다말고 우리를 보는 하루키

동물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는 동생과 달리 나는 불행해지는 타입이다. 동물을 선뜻 만지지 못하고, 마음도 쉽게 주지 못한다. 어릴 때 시장에서, 살아있던 닭이 순식간 무생물로 변하는 광경을 보게 된 뒤로, 고기도 안 먹는다. 살아 움직이던 것이 멈추는 동안 그 생물이 겪었을 고통은 내내 나를 괴롭혔다. 성장기를 지나고 아이를 낳고 이제 중년을 지나면서도, 그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삶이란 그와 같은 고통을 무수히 맞닥뜨리는 과정이기도 해서, 급기야 모든 생사의 순환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이라 여기게 되었다. 잠시 좋은 시절이 있다 해도, 끝내 고달프고 슬픈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하루키를 대하는 둘의 시선은 달랐다. 동생이 새로운 사랑에 빠져 살맛이 났다면, 나는 갈수록 근심만 늘어 죽을 맛이었다. 그런 나를 알기에 동생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키를 햇볕방에 들일 때도 그랬듯이,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먼저 입을 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기상예보가 있던 날, 나는 항복했고 하루키는 곧바로 동생네 현관을 넘어갔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근심 하나를 벗어나면 다른 하나가 또 기다리고 있다. 내가 막지 못한 사태에 책임을 져야했다. 사실 하루키 문제는 둘 만의 합의로 끝날 게 아니었다. 우리에겐 다른 가족, 특히 세 딸과 함께 여행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인 엄마가 있었다.

  “쮸그리는 요즘 괜찮냐. 걔가 몇 살이냐?” 통화를 할 때 엄마가 간혹 동생네 애들 안부를 챙길 때가 있다. 그놈의 강아지들, 하던 엄마가 이름까지 특별히 기억해가며 묻는 까닭은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몇 년이나 남았나 싶은 것이다. 여행은 고사하고 명절에도 하룻밤조차 머물지 못하는 막내딸이 섭섭해 번번이 눈물을 보이는 엄마였다. 나는 동생과 한 묶음으로 여겨지기에 그 눈물의 원망을 피할 수 없었다. 엄마는 정말 그동안 오래 기다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겨우 한 살 아기고양이를 새로 들였다고 어찌 고할까. 생각할수록 진땀이 날 일이었다. 궁여지책, 나는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모녀들의 가족여행’을 어떡하든 실행해보기로 했다. 하루키에 대한 충격을 그걸로 다소 줄일 수도 있었다.

여행이라는 게 뭐 별건가. 그렇잖아도 나는 날마다 이곳이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바라는 게 굳이 비용을 많이 들인 유명 관광지를 딸들과 다니고 싶은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자주 못 보는 딸들과 사나흘 정도만이라도 오롯이 같이 먹고 자며, 실컷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일 거였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을 때, 우리 산골엔 나흘간 모녀들의 여행이 진행되었다. 가족 첫 공식적인 모녀 여행이라 평소 가족을 두고 집을 떠난 적 없는 언니도 빠질 수 없었다. ‘알아서 각자 살아남으시오.’ 언니 딴엔 대범한 한 마디를 두 조카와 형부에게 남기고 과감히 집을 떠나왔다. 엄마의 경우는 무리가 없었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집에 홀로 있는 걸 오히려 좋아했고, 남동생이 하루 한 번씩 가서 챙겨드리기로 했다. 나흘 일정은 적당했다. 같이 나물 뜯고 밥 해 먹고 주변을 걷고, 가까운 명소를 다녀오는 걸로 후딱 지났다. 밤이면 마루에 둘러앉아 엄마를 필두로 화투패를 돌렸다. 짝도 못 맞추는 것들과 노는 게 뭐 재미났을까만 엄마는 고수였다. 모두를 아우르는 장군의 기백으로 세 딸을 적재적소 몰아 한 판 승부에 목숨을 거는 세계의 맛을 보여주었다. 똥 세 장을 흔든 엄마가 쓰리고에 오광으로 천하를 평정한 직후, 하루키의 존재를 고백했다. 엄마의 굳은 표정이 잠시 우리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딸들과의 귀한 여행을 망칠 엄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행복하다니, 그럼 어쩔 수 없지.’ 장군의 여세로 통 크게 넘어가 주었다. 나흘의 일정을 마치는 날 남동생이 모시러 왔다. 집 앞 도로까지 가서 배웅하는 걸로 모녀들의 여행 공식 일정을 마쳤다. 뭔가 한 시절이 끝난 듯했다. 이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남았다. 우리는 농로를 걸어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조만간 겨울산 코스라도 한 바퀴 흠뻑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였지?”

  동생이 문득 입을 열었다. 창고 앞이었다. 더러운 비닐자락이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풀숲엔 칙칙하게 말라버린 묵은 풀 사이로 연초록 새잎이 섞여들고 있었다. 동생이 다시 중얼거렸다.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뭐가?"

내가 물었다.

"하루키가 그날 우릴 따라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형을 껴안고 바구니에 들어간 어린 하루키


동생이 만들어준 선반에서 쉬고 있는, 성장한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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