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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Sep 05. 2020

웬수 같은 내 동생

우리의 커피 타임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다


  

  “나 이가 뿌셔져떠.”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동생이 말했다. 말투가 세 살쯤 되었다. 별 일 아니다. 둘이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대개 자매란 중년이 되어서도 함께 한 모든 시절을 쉽게 오가는 사이인 것이다. 세 살도 서른 살도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뭔 말이야? 뭐 이가 뿌셔뿌셔 과자냐, 깨지게.”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기에 나는 열 살 정도로 말을 받았다.

 “몰라, 깨져서 조각이 나오더라. 어제 저녁 먹는데. 큰 건 아니고 쪼만한 거.”

 동생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내가 내민 커피 잔을 받았다.

 “어디, 어금니?”

 그쯤에서 나는 사십대로 훌쩍 건너뛰고 있었다.

  “응, 오른쪽 위에 어금니. 근데 약간 쪼개진 거야.”

 동생은 여전히 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멀쩡한 이가 그냥 부서질 리가 있냐. 속에 뭔 사단이 생긴 거지. 어디 봐.”

 나는 이제 본래 나이로 돌아왔다.

  “싫어. 약간 깨진 거야. 어, 구멍 같은 게 느껴지긴 하네.”

 동생은 입안을 보여주지 않고 저 혼자 혀끝으로 더듬어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충치가 생긴 모양이었다. 타닥거리며 타는 장작 소리는 고요했고, 희미하게 감도는 연기엔 커피 향이 섞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커피 타임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다. 문제가 생겼고 해결해야 했다. 감기나 이런저런 통증이라면 참고 지내는 중에 낫거나 증상이 경미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치아 문제는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만 커진다.

  

  고양이 중성화 수술로 몇 차례 동물 병원에 다녀온 것 말고는 산골 생활 6년 동안 우리가 병원에 간 것은 한 번뿐이다. 동생의 새끼손가락 사고 때문이었다. 고양이 집을 만든다고 한동안 톱질을 한다 싶더니 결국 일이 벌어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들고 현관 앞에 불쑥 나타난 동생을 보고 그때 얼마나 혼비백산했던가. 허둥지둥 소독약과 거즈와 밴드를 찾고 응급처치를 한다, 읍내 보건소에 전화를 건다, 가까운 병원 검색을 한다, 혼자 난리를 치는 중에 동생은 “나 병원은 안 가. 절대!” 아이처럼 종알대고 있었다. 그때 읍내 의료기관은 보건소 말고는 작은 의원 하나가 유일했다. 병원이 문 닫을 시각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보건소는 이미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의원에선 다행히 누군가 전화를 받았지만 진료가 끝났다고 했다. 간호사도 퇴근했고 자신도 막 문 닫고 나가려던 중이라고, 원장이라는 남자는 말했다. 금방 갈 테니 좀 기다려달라고 나는 부탁했다. 녹슨 톱에 동생이 다쳐 피가 펑펑 난다고 다소 과장된 표현에 파상풍 주사를 준비해달라는 말도 끼어 넣었다. 의사가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동생이 보이질 않았다. 내가 통화를 하는 중에 숨어버린 것이다. 동생네에 가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마당에 나가 고양이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가르쳐주질 않았다.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의사를 붙들어 놓은 참이라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양쪽 집을 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안 나오면 이제 영원히 끝장이다. 나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천 년은 산 무서운 곰처럼 무시무시한 소리를 뱃속에서 끌어올리며 말했다. 비장했던 만큼 내가 듣기에도 다시는 지구가 제정신으로 자전을 못할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소리에 동생이 헤헤, 거리며 어디선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헤, 웃겨서 더 못 숨어 있겠다.” 내 집 벽장 안이었다. 그날 동생은 손가락 다섯 바늘을 꿰매고 파상풍 항체 주사를 맞았다.


  그러니, 하고 나는 동생이 자기 집으로 건너간 뒤 혼자 고심에 빠졌다. 이제 또 저 웬수 같은 년을 어떻게 끌고 간단 말인가. 이해하시라. 고집불통 동생을 데리고 살다 보면 나처럼 막말이 는다. 나는 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가까운 치과를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다. 작년 봄인가 읍내 약국 이층에 치과 간판이 새로 걸린 것을 보긴 했다. 실제로 영업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전화를 연결했다. 다행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내심 도시까지 다녀올 각오를 하고 있던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일이 수월히 풀리는 것 같아 나는 안도했다. 점심시간은 오후 한 시에서 두시, 예약은 특별히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오후 네 시까지는 도착해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제 겨우 오전 11시, 가까운 읍내이니 시간은 넉넉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동생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이미 예약을 했다는 내 말엔 화를 버럭 내었다.

  “왜 멋대로 예약은 하고 그래.”

  물론 예약했다는 말은 그래야 쉽게 따라나설 것 같아 던진 거짓말이었다. 꼴에 책임감이 남다른 아이라 약속을 해 놓은 것은 여간해서 어기지 못하는 성미인 것이다.

  “몰라, 안 간다고. 날도 추운데 왜 다짜고짜 예약은 하고 난리야.”

  동생은 현관문을 꽝 닫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런, 버르장머리. 노인처럼 중얼대며 나도 내 집으로 들어와 난로 옆 의자에 무력하게 앉았다. 화는 나지 않았고 눈이 갑갑하고 피곤했다. 졸음이 몰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새 난로 장작불이 꺼져 집 안은 서늘해지고 있었다. 손가락 사고 이후 나는 두 살 더 나이가 들었다. 기력이 그때만 하지 못해 천 년 먹은 곰을 불러올 수도 없었다. 더구나 요즈음 어깨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는 처지인 것이다.  


  언니에게 전화가 온 건 바로 그때였다. 별일 없니? 한마디에 나는 좀 기운이 났다.

  “언니야, 나 못살겄어.”

  일의 전말을 언니에게 낱낱이 일렀다.

  “고얀 것, 왜 그렇게 속 썩이는 거야.”

  언니는 일단 내 속을 풀어 주고 말했다.

  “그런데 병원 질색하기론 네가 좀 더 하지 않니? 어릴 때 기껏 병원 데려가면 어느새 도망갔잖아. 그런 애가 건강검진이나 제때 하겠냐며 엄마가 걱정하시더라.”

  어디 모자란 건지 별난 건지 참 이상한 아이들이라고 엄마는 동생과 나를 두고 말하곤 했다. 병원이라면 기를 쓰고 피하는 것도 그렇고, 먹는 것도 사는 모양새도 남들처럼 수더분하지 않는 것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어디, 내가 한 번 말해 볼까?” 언니가 말했다. 동생도 차마 큰언니에게 골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쉽게 말을 들을 성싶지는 않았다. “그럼, 돈을 줘 볼까? 한 번 걷는 데 천 원이라며.” 언니가 또 말했다. 언젠가 좀 걷고 싶은데 동생이 도무지 응하지 않기에 “좋아, 그럼 천 원 어때”라고 던졌더니 신나서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그 얘기였다. “글쎄. 그거야 재미 삼아 그런 거고 … 아냐, 통할 것도 같어. 고양이 간식비 벌고 싶어서 웬만하면 넘어올 거야. 근데 병원이니까 꽤 써야 할 걸. 만 원 정도?” 나는 말했다. “뭐, 만 원? 하여간 너넨 웃겨. 산골에 몇 년 파묻혔다고 세상 물가를 도통 모르는구만. 그럼 한 오 만원을 상한선으로 잡고 타진해 보면 되겠네. 전화 바꿔 봐.” 나는 동생을 불러낸 뒤 스피커 버튼을 눌러 언니의 말을 함께 들었다. “야, 얼마면 돼?” 웃음이 푹 나왔다. 점잖고 착한 우리 언니는 다소 격앙되었을 두 동생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오래전 유명했던 한 드라마의 대사를 흉내 내고 있었다. 동생도 피식 웃고 있었다. “내가 그냥 나중에 알아서 갈게.” 동생이 말했다. “일단 가서 상태만이라도 알아보고 와. 아니면 계속 신경 쓰고 살아야 하잖아. 치료비는 우리가 낼 거고, 넌 조금 아프기만 하면 되는데, 자신을 위해 그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하여간 지금 바로 준비해서 다녀와. 그럼 내가 지금 바로 오 만원 보내 주께.”

  그로써 해결되나 했다. 그런데 아직 나는 동생을 다 알지 못하고 있었다. 큰언니와 통화를 마친 동생이 나를 보며 배시시 묘한 웃음을 던지는 게 아닌가. 이건 뭐야, 싶었다. “그냥 큰언니한테 병원 다녀왔다 그럼 안 될까. 그럼, 내가 오 만원에서 언니 만원 떼어 줄게.” 기막혀서 내가 차마 뭐라 대거리도 못하고 동생을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언니였다. '돈은 부쳤다. 반드시 오늘 중으로 인증샷을 보내라.' 군더더기 없는 두 마디를 짧게 전달하고 언니는 전화를 끊었다. 함께 듣고 있던 동생이 입을 딱 벌렸다. 하하,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언니였다. 조용하고 순한 겉모습 속엔 그런 빈틈없는 맏이의 통찰력이 갖춰져 있었다. 그것이 오랜 세월, 늘 어딘가 모자란 듯한 두 동생 때문에 길러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꽤 오래도록 언니의 웬수 같은 동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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