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으로 겁쟁이다.

낯선 곳에 모인 낯선 사람들

by 시골쥐 아무개


한밤중이 되어서 도착한 요가원은 속세와 멀리 떨어져 시커먼 논밭 한가운데 오아시스같이 우뚝 있었다. 내가 신청한 요가원은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요가원이라 리조트 직원들이 학생들의 편의를 봐주었다. 리조트가 꽤 넓었고 그 덕에 프런트가 있던 건물에서 내 숙소가 있는 건물까지 골프카트 같은 것을 타고 이동했다.


공항에서 만난 노르웨이 친구와는 굿나잇 인사를 하고 나를 방까지 안내해 준 직원은 문제가 있으면 연락을 하라며 자신의 왓츠앱을 공유해 주곤 떠났다. 방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침대는 쓸데없이 넓었다. 급하게 요가원을 예약하는 바람에 두 번째로 비싼 숙소만 남아 울며 겨자 먹기로 예약한 탓이었다. 나는 옛날 주택 집의 방문 같이 방범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요란한 나무 문을 굳게 잠그고 통창을 커튼으로 가리고 나서야 모든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뭐가 그리 긴장이 되었는지 별로 덥지도 않았는데 공항에서부터 땀을 뻘뻘 흘렸다. (참고로 발리는 남반구에 속해서 내가 갔던 7월이 겨울이었다.) 나는 왜 이리 넓은지 알 수 없는 욕실에서 흘린 땀을 모두 씻어내고 짐을 필요한 것들만 풀어낸 후 내일 있을 오프닝 세리머니를 위한 옷을 세팅하고 잠에 들었다. 사실 약간 무서워서 침대 협탁에 놓인 스탠드를 켜놓고 잠을 청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참으로 겁쟁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러 가니 내가 너무 늦장을 부려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내가 어색한 마음에 식당을 서성거리니 부엌에서 리조트 직원분이 헐레벌떡 나오시더니 정리 중이었다며 나에게 미안해하며 뷔페식이니 원하는 것을 골라먹을 수 있고 모두 비건이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계란 요리가 있으니 오믈렛이나 스크램블에그를 해줄까? 물어보셔서 따뜻한 요리가 먹고 싶었던 나는 오믈렛을 요청드렸다. 자리에 착석하니 푸른 논이 펼쳐진 풍경이 보이고 온갖 새소리, 벌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쌔까만 밤과는 다른 푸른 경치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져 비로소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풍경부터 만난 사람, 음식까지 발리의 아침은 여러모로 따뜻했다.






오프닝 세리머니까지 시간이 비어 요가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햇볕이 쨍하지만 확실히 군데군데 쌀쌀한 기운이 만연했다. 넓은 풀장도 있었지만 추워서 들어갈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풀장 옆 썬베드에 누워 햇볕을 느꼈다. 올 초에 기미 제거 레이저를 하느라 고생 좀 했지만 이렇게 따뜻한 햇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몇 없으리라. 이 순간을 즐기겠다며 누워있었는데 인생에 오랜만에 생긴 여유에 문득문득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되뇌었다.


오후 내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누워있다 보니 점점 요가 매트를 들고 오거나 거대한 커리어를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 드디어 시작이구나. 그리고 어느샌가 초대된 왓츠앱 단톡방에는 세리머니 일정 공지가 올라와있었다. 세리머니는 오후 5시로 그전까지 요가홀에 가면 됐다. 리조트 안에 요가홀은 2개로 하나는 200시간, 하나는 300시간 학생들이 모여 요가 수업을 들을 참이었다. 수업 몇 개는 두 반 같이 들을 예정이었다.




오프닝 세리머니에는 규칙이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올 것. 성스러운 의식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인도에서는 그렇다고 들었는데 발리에서도 그런 규칙이 적용될 줄은 몰랐다. 오프닝 세리머니는 발리 전통 의식으로 진행됐다. 마을에 있는 신부님이 오셔서 기도를 하고 부정을 태우는 의식, 학생들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의식 등이 있었다. 그전에 모든 학생들에게 발리 전통 의상 사룽을 입혀주었다.


들뜬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나는 생각보다 들뜨진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환경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더라지, 하지만 여기선 조금은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오락가락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온통 꽃으로 장식된 요가원을 구경했다.


의식을 시작하기 전 인도인 요가 선생님이 의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원래 인도에서는 의식에 불을 쓰는데 발리에서는 물을 쓴다고. 그래서 오프닝 세리머니는 발리식, 졸업식은 인도식으로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의식 내내 신부님은 우리에게 물을 여러 번 뿌리셨다.





사실 나는 천주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천주교 교리에 익숙했다. 돌고 돌아 결론은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의식은 내 마음을 한껏 씻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발리에 도착해서 본 많은 영적인 물건들이 마치 나에게 이곳에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듯했다. 귀신이라는 존재를 믿고자 하는 말이 아닌, 땅 위를 돌아다니는 작은 개미 한 마리라도 존재를 알고 존중하라는 말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도시에 오랫동안 살며 잊고 있었던 수많은 생명체의 존재감을 다시금 깨달으며 부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기회를, 있는 동안은 부디 이곳에 신이 있다면-개미의 신이라도-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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