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행 비행기에서 깨달은 시절의 인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다

by 시골쥐 아무개


내가 머문 곳은 발리의 우붓에 있는 어느 요가원. 리조트와 함께 운영해서 리조트에 머물며 그 안에 있는 요가원을 열심히 출퇴근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다닌 요가원은 우붓에서도 한참 더 들어간 곳에 있어서 정말이지 속세와 동떨어진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사실 요가 TTC 가 처음이라 200시간 코스를 들었어야 했는데, 내 인생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덜컥 300시간을 신청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200시간을 수료하지 않으면 300시간을 신청할 수 없다는 얘기를 코스 중간에 들었다. 그런데 300시간 반에 생각보다 200시간을 수료하지 않은 채 300시간을 듣는 친구들이 있었다. 사실 수료증이 그리 중요하진 않았고, 요가를 함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수업을 들었다.



airport.jpeg 뭐가 그리 긴장이 됐는지 커피 말곤 내키는 것도 없었다.




발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순탄치는 않았다. 비행시간이 꽤 길었다. 하지만 기꺼이 떠나는 사람에게 무엇이 걸림돌이 되리. 7시간 가까이 되는 비행동안 나는 용감하게도 영화, 유튜브 영상 같이 킬링타임 거리를 하나도 갖고 타지 않았다. 단 한 권의 책.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가지고 탔다.


나는 20대 내내 거주지를 꽤 자주 옮겼는데, 그럴 때마다 만난 인연이 계속되지 못함에 대해서 슬픈 감정을 느껴왔다. 왜 나와의 인연은 계속되지 못할까, 나 자신의 문제일까. 자책도 많이 했고 상대에 집착도 많이 했다. 싯다르타를 읽고도 그리 생각했다. 어떻게 편안한 생활,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또다시 깨달음을 위해 훌쩍 떠나버릴까. 그가 비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윽고 생각했다. 이 세상 모든 인연은 시절의 인연이구나. 그럼 나는 그 시절 인연을 소중히 하고 다음 인연이 오면 그때 또 그 인연에 최선을 다하면 되겠다. 그리 생각하니 내가 집착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손에 쥔 모래알 같았다.



싯다르타를 읽고 한참 되뇌다 도착한 발리. 공항의 설레는 공기를 맡으며 나는 입국 수속을 마쳤다. 로밍을 하지 않았고 주말에 우붓 시내에서 유심을 살 예정이었어서 입국수속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핸드폰으로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받은 QR코드를 찍고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약간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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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원에서 공항 픽업을 와준다고 해서 한국에서 미리 왓츠앱으로 비행 편과 도착시간을 알려주었다. 때마침 공항에 도착하자 픽업을 와주신 분에게 왓츠앱으로 연락을 받고 픽업 오신 분을 찾아갔다. 픽업 와주신 분은 요가원을 운영하는 리조트 직원 분으로 또 다른 학생을 픽업해야 하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해 차 안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공항에서 기다리려고 하니 누가 봐도 외지인인 나에게 계속해서 택시 영업을 하는 탓에 차 안에 있겠다고 자처한 탓이었다.


차에 타며 직원 분에게 마실 물도 받았다. 물병에는 리조트 이름까지 써져 있었지만 시간도 늦었고 처음 온 낯선 곳이라 여러모로 무서운 마음에 물도 마시지 않고 가방에 넣어두고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 핸드폰을 꼭 쥐고 앉아있었다. 차 안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니 요가원 학생이 차에 탔다. 친구는 짐이 안 나와 오래 기다렸다며 툴툴거렸다. 요가원까지는 1시간가량 걸렸다. 나는 긴 비행으로 지쳐 조용히 가고 싶었지만 친구는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한참 떠들다 보니 친구의 모든 사적인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다 알게 되었다. 친구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간호사 일을 하다 이번에 퇴사를 하고 발리에 오게 되었다고. 노르웨이엔 지금 집도 없고 직업도 없어 가진 거라곤 남자친구뿐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른 행세는 아니라 나와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친구는 200시간 코스를 들을 예정이라 함께 할 시간이 많진 않을 테지만 영어 잡담을 나누다 보니 비로소 발리에 왔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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