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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뱀마법사 Jan 13. 2023

남여공용 화장실

   유럽에서는 남여공용화장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어떤 나라는 모든 화장실을 남녀공용으로 바꾸고 있고, 어떤 나라는 남, 여 화장실은 그대로 두고 대신 남여공용 화장실을 하나 더 두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식의 변화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하는 것이 현대적 관점에서의 인권에 반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나라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다소 보수적이고 남여공용 화장실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많은 여성들이 아직은 이러한 변화가 시기상조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혹은 대단히 강하게 부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실제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교해볼 때 다소 아이러니하다.

   사실 남여공용 화장실은 우리에게 그다지 생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는 변화와는 다른 이유에서였을 뿐. 남여 화장실을 따로 구분해서 둘만큼의 공간이 없는 많은 소규모 사업장은 화장실을 하나만두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에 호불호가 있었을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남여공용 화장실을 사용했었고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절대 불가한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평균적으로 여성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간이 남성보다 길기 때문에 같은 수의 화장실이 있다고 할 경우 여성 화장실의 대기 줄이 대부분 더 길다. 많은 경우 남성 화장실은 비어있음에도 여성 화장실에는 긴 줄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비어있는 남성 화장실을 쓰는 여성분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반면 흔하지는 않지만 여성 화장실이 비어있다고해서 남성들이 여성 화장실을 쓰는 경우는 제로에 가깝다. 이러한 경우를 통해 여성들이 남여공용 화장실을 비선호하기는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선호’의 문제일 뿐 긴박한 경우는 공용 화장실이 아니라 ‘남자 전용 화장실’도 사용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회사가 위치하는 층에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이 화장실은 2개의 회사만 사용하는데 현재 이 두 회사에는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장애인 화장실까지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화장실은 장애인 화장실이라 붙어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남여공용 화장실로 사용되고있다는 말이다. 남여공용화장실에 대한 불호가 강한 아시아인들, 특히 아시아 여성들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이 화장실은 남자들만 주로 이용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여성 직원들도 사용한다. 아니 사용할 뿐 아니라 선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용 화장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는 손씻는 세면대가 있고 오른쪽에는 여러 칸의 화장실이 있다. 사람이 많을 경우 세면대 쪽에서 줄을서서 먼저 사용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반면 장애인 화장실은 한 칸 밖에 없으며 세면대도 그 화장실 안에 있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은 복도와 바로 연결되어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 화장실 안에 누군가 있으면 똑같이 대기해야 한다 하더라도 복도에 서 있는 것 보다는 다른 화장실에 들어가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즉 내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문 앞에 대기하는 사람도 없고 손을 씻기 위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도 없다. 더 높은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성 직원들은 장애인 화장실을 더 선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화장실이 하나라 다른 선택권이 없는 경우, 또는 참기 힘든 긴박함 혹은 효율성을 이유로 삼을 수 있는 남자 화장실만 비어있는 경우가 아니라 완벽한 선택권이 개인에게 있는 상황, 사용 가능한 여성 전용 화장실이 있는 경우에도 공용 화장실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정치적 정당성 등을 들어 무엇이 옳은가 따위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행동과 말에 모순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이 싫다고 할 때, 내가 정말로 ‘그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것’은 행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가진 이미지’나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그것에 대한 신념’이 내 말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이미지만으로 ‘싫어’하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저 ‘싫어’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될때 우리는 좀 더 괜찮은 사회,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가질 수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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