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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Nov 01. 2020

퇴사하면 그리울 것 같은 것들

'전 직장'과 그리움,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두자니 왠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힘들었던 기억이 유독 많아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보지도 말아야지 생각했던 전 직장들도 가끔 떠오르고, 심지어는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건 주로 저만의 방앗간들과 그곳에서 즐겼던 메뉴가 그리워지는 순간입니다.


늦여름의 눅눅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오렌지 비앙코가 유독 맛있었던 전 직장 앞 카페가 생각납니다. 매콤한 게 당길 때는 '이건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아'라고 생각했었던 쭈꾸미 볶음집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허름해 보이지만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전전 회사 앞 김치찜 맛집이 생각나고, 공채 시즌이 되어 로비에 대기 중인 면접자들을 볼 때면 불안감을 뒤로하고 서로를 다독였던 닭볶음탕 집에서의 장면이 그리워집니다.


지금의 직장에도 그런 저만의 방앗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앗간들은 퍽퍽한 회사 생활 속 조금의 생기를 더해주는 저만의 비법 소스이기도 합니다.





비법소스 2. 방앗간


1. 카페인 충전소_카페

몽롱한 아침을 깨우기 위해 카페인을 주입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빠뜨릴 수 없는 루틴이 되어버린 회사 앞 카페는 제가 아마 제일 많이 오고 가는 방앗간일 겁니다. 별다른 변수 없이 지하철을 제시간에 잘 맞춰 타면, '오늘 커피 사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니까요.



커피 한 모금에 저는 졸음과 피곤을 쫓아내고, 순간의 향을 통해 미소와 여유를 찾고, 다시 일에 몰두하기 위한 쉼을 얻습니다. 커피 한 잔, 사소해 보이지만 힘과 위로를 주는 공간들이기에 저는 이 곳들을 참 좋아합니다.


카페인 충전의 목적도 있긴 하지만, 사실 이곳들은 실제로도 커피 맛집입니다. 원두를 로스팅하는 고소한 향으로 가득한 카페 안에 들어서면,  쉬지 않고 메뉴를 연구하고, 카페 안팎으로 변화를 주는 사장님들이 계십니다. 회사 앞에 위치해있어 그리 열심히 안 하셔도 될 텐데, 쉬지 않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또 다른 에너지를 얻어갑니다.



2. 멘탈 충전소_편의점

편의점은 가성비 좋은 제 멘탈 충전소입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전 편의점에 들러 젤리를 한 봉지 삽니다. 젤리 봉지를 뜯어 달달한 젤리를 입 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고 있자면, 혀끝부터 찌르르 전해져 오는 달달함이 보호막을 만들어주는 기분이 듭니다. 이제 당을 넣었으니 괜찮아질 거야 하고 다독이며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젤리 주면서 일을 부탁하면 더 잘해주누 편입니다:)


사무실의 공기가 턱 막혀 오는 순간엔 탄산수를 찾습니다. 뚜껑을 따는 소리와 동시에 청량하게 퍼지는 탄산 소리, 톡톡톡톡 터지는 탄산들처럼 이 답답함도 함께 터져버리기 바라며 꿀꺽꿀꺽 탄산수를 넘깁니다.


탄산수로도 해결되지 않는 현타의 순간에는 (회사엔 비밀이지만) 맥주를 한 캔 사 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딸깍, 캔 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 조금 답답함이 해소되는 느낌이 듭니다. 탄산수보다 쌉싸름한,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면 이렇게까지 야근을 하는 나 자신이 우습다가도, 이 한 캔으로 위안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며 결국엔 감정이 0으로 수렴됩니다. 살짝 올라오는 알딸딸한 기분에 실려 업무를 하고 있자면 휘리릭 더 잘 풀리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절대 본 업무시간엔 마시지 않습니다:-)


업무가 너무도 밀려 있을 땐 김밥 혹은 컵라면을 사 와 끼니를 때웁니다.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건 요즘 편의점 김밥이 얼마나 맛있게 나오는지 모르는 분들일 겁니다. 빠르고 맛있게 허기를 채우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흐르는 시간에 초조해하는 것보다 훨씬 낫기에. 그래서인지 정말 바쁠 때, 정말 힘들 때 더 편의점을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3. 에너지 충전소_베이커리

저는 빵을 참 좋아합니다. '서울에 있는 빵집을 다 가보기 위해 취직을 하루 빨리 해야겠다'가 자소서에는 미처 쓰지 못했던 제 지원동기이기도 했으니까요. 자연스레 회사 옆에 위치한 빵집들은 저의 단골 방앗간이 되었습니다.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무슨 빵을 먹을지 고르는 일만큼 설레는 일도 없기에 이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에너지가 차오릅니다. 우물우물 밀가루와 버터의 조합이 주는 에너지를 음미하고 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힘이 납니다.



4. 감성 충전소_서점

서점에 가면 저는 괜히 설레어 옵니다. 읽는 양 대비 서점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조금 머쓱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점은 언제 가도 참 좋습니다. 그렇기에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근처 서점에 들러 책장 사이사이를 누비곤 합니다. 관심 있었던 책을 잠시간 들여다보기도 하고, 새롭게 나온 책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추천사 혹은 큐레이션을 보며 생각을 환기하는 시간은 제게 너무도 소중한 시간입니다. 때로는 굿즈에 눈이 멀어 책을 잔뜩 사버리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요, 귀여우면 됐고, 좋으면 된 거죠:)



다 쓰고 보니, 저는 방앗간들의 메뉴가 아닌 그 메뉴와 함께했던 장면들이 더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나의 방앗간들을 즐기고 또 새로운 방앗간을 발굴해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죠:) 새롭게 돌아오는 주에는 나의 방앗간들에 다정한 안녕을 건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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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한 회사생활에 생기를 더해주는 첫 번째 비법소스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just-record/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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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회사생활에 색을 더해주는 마지막 비법소스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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