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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May 17. 2020

팀 막내에게 '회식'이란?

한 달에 한 번 떠나는 테이스티 로드


비법소스 3. 맛집투어(A.K.A 회식)


회색 테두리의 네모창 속에서 세상 모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오후, 문득 시선이 오른쪽 하단 시계에 꽂힙니다. 시간은 어느덧 5시 38분을 가리키고 있네요.


'벌써 퇴근 시간이 지났다니...'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고 주위를 살펴봅니다. 어느새 듬성듬성 보이는 빈자리들, 그리고 짙은 회색 공기가 잔뜩 내려앉은 사무실 사이로 누군가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빨리빨리! 시간 없어! 뛰어!"


황급히 노트북을 덮고, 책상 위를 가방에 쓸어 담듯이 사물함에 넣고는 사무실 문밖을 나섭니다. 다행히 아직 택시가 오지 않았네요. 잠시 숨을 고르고 인스타그램을 빠르게 스캔하며 오늘 갈 장소의 베스트 메뉴를 살펴봅니다.

오늘은 저희 팀 회식이 있는 날입니다. 사무실에 놓고 온 노트북의 설움을 대변하듯 핸드폰은 징징거리며 끊임없이 울어댑니다. 울고 있는 핸드폰을 달래느라 택시 안에서도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곧 맛있는 걸 먹을 거거든요:)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날, 우리는 이날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회식 장소를 정할 때면 탁구공이 라켓 사이를 오가듯 빠르게 채팅방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서로 먹고 싶은 메뉴를 공유하며 고르는 과정은 빠르지만 절대 허투루 이뤄지지 않죠.

업무시간은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습니다. 서로의 파동이 겹쳐지며 쉴 새 없이 크고 작게 흔들리죠. 그 팽팽함을 잠시 내려놓은 자리에는 느슨한 틈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그 틈 사이로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와 감정들을 풀어놓습니다. 업무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못다 보였던 생생한 표정과 진심들까지. 마치 얼음이 녹아내리듯이 곳곳에 말랑한 기운들이 가득한 시간, 바로 회식 시간입니다.


구름을 걷는 느낌.... 잊을 수 없다...^^;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합격해서 꼭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귀여운 송별 인사를 건네받던 인턴 때의 첫 회식부터, 난생처음으로 술에 만취해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잘 안되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새로운(?) 경험을 했던 팀워크샵(다행히 주정을 부리거나, 사고를 치진 않았습니다:D 하핳)


오렌지 같았던 어느 날의 회식, 다들 웃음지뢰를 밟았다:-)


별거 아닌 일에 웃음 지뢰가 터져 다들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 웃었던 어느 날의 회식, 확정되지도 않은 조직개편 소식에 세상 근심 걱정 다이고서 답답함을 나누었던 또 어느 날의 회식. 


헤어짐과 새로운 시작의 사이에서 씁쓸한 위로를 나누던 어느 날의 회식, 잘하고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한가득 받았던 어느 날의 회식까지.


그 모든 회식은 제가 여기까지 조금은 더 즐겁게 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생기는 틈을 또 다른 틈이 메워주며,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시간, 우리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저는 오늘도 즐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

드라마와 SNS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회식 괴담을 겪지 않고, 회식을 재밌게, 맛있게 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회식 자리를 만들어준 모든 팀원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코로나가 얼른 잠잠해져서, 즐겁고 편안하게 회식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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