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8

by 따시

벽이 있었다. 벽이 없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 벽이다. 벽은 긍정의 언어이면서 부정의 말이다. 서로에게 기댈 벽이 되어 줄 때 사람 사이 벽은 따뜻하다. 서로를 견줄 때 벽은 겨울 아침 손에 닿은 콘크리트처럼 차갑다. 사람 사이의 벽은 보이지 않는다.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바람壁은 흔들려야 잘 쌓을 수 있다. 벽돌이건 흙이건 나무건, 벽을 쌓을 때는 기초를 놓고 재료를 올리고 다져야 한다. 흔들지 않고 쌓은 벽은 모래언덕처럼 금방 무너진다. 벽을 지탱하는 힘은 흔들림이다. 흔들리면서 더 견고하게 서있는다. 벽을 무너뜨릴 때도 흔들려야 한다. 세상 어떤 벽도 흔들림 없이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 사이도 그렇다. 심한 흔들림으로 철벽이 쌓이고, 심한 흔들림으로 기댈 벽이 쌓인다. 그래서 ‘바람壁’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벽이 없으면 허전하다. 고독하고 외롭다. 늙어가면서도 가끔 어디 기댈 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는 것이 고달프면 더 그렇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자라면서는 스승이, 지인들이 벽이 되어 주었다. 스스로 벽이 되어야 하는 나이가 있다. 누군가의 기댈 벽이 되어 주어야 하는 시기가 온다.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벽의 품앗이다. 흔들리면서 굳건하게 서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든든한 벽이 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벽에 부딪히면 상처가 생긴다. 작은 멍이 들 수도 있지만 찢어지거나 부러지기도 한다. 벽은 통과할 수 없다. 부수거나 문을 찾아서 나가야 한다. 아무리 강한 철벽이어도 부수거나 쌓을 때는 작은 실마리로 시작한다. 큰 벽으로 둘러싸인 대형 건물도 작은 문으로 들어간다. 문을 찾는 것이 벽을 부수는 일이다. 정교하게 잘 쌓아놓은 벽도 문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는 벽은 無다. 벽일 수 없다. 문은 벽의 틈이다. 틈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세상의 벽도 인내하며 잘 찾아보면 어딘가 문이 있다. 실낱같은 틈을 잘 활용해서 벽에서 탈출하자. 세상은 벽 탈출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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