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4
바람이 불어 날이 선선해졌다. 걷기 좋은 때이다. 아침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다. 걷는다. 오늘의 코스는 섬을 바닷가 쪽으로 반의 반 바퀴도는 것이다. 섬이라니? 그렇다. 내가 사는 곳에 섬이 있다. 섬진강이 바다와 처음 만나는 곳에 작은 섬 두 개가 있다. 둘 중 작은 쪽 섬에 제철소가 바다를 메우고 들어섰다. 거의 40년이 전 일이다. 바다를 메우지 않은 쪽. 그러니까 섬의 남은 절반에 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 지금 내가 걷는 쪽이 이쪽이다. 주택 단지 쪽 바닷가. 지금은 다리가 있어서 섬이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걸어보면 안다. 이곳은 섬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 반을 가리지만, 모자도 써서 남은 반도 가려지지만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 물에 비친 반사광이 생각보다 지독하다. 지난봄 대비 없이 막 걷다가 마스크 쓴 쪽 얼굴과 안 쓴 쪽 얼굴색 차이가 심하게 나서 신랑과 아이의 웃음을 샀다. 선크림까지 다 발랐으면 이제 정말 출발이다.
바닷가 쪽으로 들어서면 걷기 좋은 길이 나타난다. 나는 이 길을 좋아한다. 안쪽으로는 벚나무와 소나무가 가로수로 서있고, 바깥쪽으로는 바다다. 비록 사고를 막기 위한 펜스가 쭈욱 둘러져 있지만 말이다. 봄이면 분홍 꽃그늘 아래를 걷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 아래를 걷는다. 겨울엔 바다에서 부는 찬바람에 맞서며 걷는다. 그 기분도 생각보다 좋다. 정신이 번쩍 들고 비장해진다. 엊그제까지 더운 바람이라 걸을 엄두를 못 내겠더니 금세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단풍이 곱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벌써 말라버려 바닥을 뒹구는 갈색 잎들과 아직 나무에 달려 있는 초록 잎이 함께 있는 계절이라니 이상하긴 하다.
함께 걷는 사람이 있는 것도 좋다. 이런저런 걱정거리도 나누고, 오늘 저녁 메뉴도 공유하고, 그렇게 걷는 것도 즐겁다. 그래서 적절한 수다와 적절한 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걷기 친구를 간절히 원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곧 그 매일 하는 이야기가 지겹고, 그 친구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계속해서 스케줄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에 귀찮아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대화는 상상 친구와 하면서. 나의 상상 친구는 나의 온갖 이야기를 다 들었다.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신랄하게 씹어주기도 했고, 학원 원장이 된 나에게 온갖 진상을 부리는 학보모가 되기도 했다. 아이의 발달에 대한 고민에 조언해 주는 의사이기도 했다가, 맛있는 식당을 발견한 기자가 되기도 했다. 나도 가끔은 이런 내 정신세계를 걱정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운동을 하면서 오디오 북을 듣는다길래 어느 날 나도 시도해 보았다. 기계가 읽어주는 소리가 신기했다. 그럼에도 내용이 잘 들리도 했고 머리에 남는 것들도 있었다. 좋았다. 이렇게도 책을 읽을 수 있구나!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마냥 행복했다… 잠시. 책 한 권을 다 들었을 때쯤 급격한 깨달음이 왔다. 이거 아니야. 나의 산책엔 공상과 헛소리 같은 독백이 있어야 하는 데 오디오 북을 들으니 그게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는 신나고 경쾌한 음악과 나의 상상친구 곁으로.
산책이라 이름은 붙였지만 실상은 걷기 운동이다. 원래도 운동에는 취미, 소질이 없던 사람이었다. 겨우 하는 것이 출퇴근을 비롯한 이동 시에 하던 걷기와 가~끔 엄마 따라다니던 등산이 다였다. 운전을 하게 되고 출산과 육아를 하는 동안은 그 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근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던 사람이 있는 거 없는 거 다 끌어 모아서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점점 변해갔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로 분명 이해한 일인데도 아이에게 짜증과 눈 부라림을 시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고작 두 돌을 갓 넘긴 아이에게. 아이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 싶어 집 밖으로 나왔고,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으니 무작정 걸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골목 안쪽의 작은 꽃가게, 오후 3-4시에 문을 닫는 카페, 아기 옷 파는 옹기종기한 가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얼마나 작은 지도 다시 보였다. 이 정도의 걷기라도 해야 나 아닌 다른 걸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사람이었다. 그 이전엔 그럴 체력이 없었던 것이리라.
이제는 나를 위해서 걷는다. 상상친구와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해결방법을 찾기도 한다. 읽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많은 나는 그 시간에 뭐라도 정리해 둬야 한다. 아이가 하원하고 신랑이 퇴근하면 깊게 든 얕게 든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몰아치는 생활에 생활인 김지야만 남고 비생활인 김지야는 설거지 통 퐁퐁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는 비생활인 김지야를 잡아 두는 방법이 걷기였다. 그래서 오늘도 걷는다. 생활인 김지야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맡겨 두고,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