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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맘 Oct 06. 2020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미국에서 BLM 시위를 지켜보며

원서 Number the Stars



“Black Lives Matter!”




BLM 시위가 202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굴 때,

칼럼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흑인 가족에서 살아온 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그리고 엄마에게서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경찰이 너를 불러 세우면 무조건 용서를 빌고, 항복해라!”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자신이 무엇을 용서 받아야하는지 이유도 모르고서

그들은 경찰 앞에서 무조건 저 자세로 용서를 빌어야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이 칼럼을 읽을 때, 

Number the Stars 라는 원서가 생각났던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The Number the Stars.


“It is important to be one of the crowd, always. Be one of many. Be sure that they never have reason to remember your face.”


군중속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항상 중요한 일이야.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어라. 너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를 결코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렴!




Number the Stars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했을 당시,

수도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앤느 마리 가족이 유대인 친구 엘렌 가족의 탈출을 돕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전쟁, 나치, 유대인.


이 단어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먹먹하게 그려낸 아동문학.

1989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란 일컫는 ‘뉴베리 메달’을 거머쥔 소설로도 유명합니다. 



유대인이 나치에 맞서 살아가야하는 생활이

흑인들이 오랜시간 백인들의 차별적인 시선에 맞서 

조심하며 살아왔던 생활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저 군중 속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잘나서 튀거나 눈에 띄어서는 곤란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꿈틀거렸습니다.


오래전에는 유대인이 나치에 맞서서,

그리고 현재는 흑인이 백인들의 차별적인 시선에 맞서서..


오랜 시간 곪고 곪아 비로소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린 것이 

하필이면  2020년 코로나로 lock down을 한 후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에 있을 때였습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저마다 목소리를 드높이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백악관 앞에서 목청 높여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방송에서 흑인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당한 서러움을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전 대통령인 오바마와 미셸 부부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 영부인이었던 미셸은 이번 일을 계기로 깊은 우울증을 겪었다고 

얼마 전에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죠.



BLM이란 깃발 속 시위대에는 흑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백인들도 많았고,

옆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주는 아시아인들도 많았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목청높여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갈 제 아이가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고 지금도 걱정이 됩니다. 




미국에 처음 어학연수를 나왔을 때,

수업 시간에 배운 인상깊었던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Melting Pot”


미국은 여러 인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Melting Pot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고 자랑스럽게 강의하시던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강의를 노트에 받아적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과제제출에 필요한 경우 저는 하물며 이 단어를 여러번 응용해가며 써먹었습니다.


Melting은 '녹고 서로 섞이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지금의 BLM 사태와 칼럼을 읽고 나니 

물에 기름이 동동 뜬 광경만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서로가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백인은 백인대로,

흑인은 흑인대로,

아시아계는 아시안들끼리..

서로 그렇고 그렇게 얼마쯤은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이가 언젠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 나는 왜 까만 눈동자, 까만 머리를 가졌어요?”


“그거야 엄마 아빠가 까만 눈에 까만 머리칼을 가졌으니까. 

그리고 채연이는 한국인이란 originality가 있단다.”


“그럼 나는 금발은 가질 수 없어요? 

제 친구 XX이는 파란 눈에, 금발 헤어에요. 너무 공주처럼 예뻐요.”


차마 원한다면 금색으로 머리를 염색할 수 있다거나,

가발을 쓸 수 있다거나 하는 말로 아이를 현혹시킬 수가 없어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중에도 분명 네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칼을 부러워하는 아이가 있을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칼라에 자신감을 가져. 얼마나 예쁜데..”


그렇게 말해주고 나서도 뒷맛은 참 씁쓸했습니다.

아니 지독하게도 쓴 맛이 올라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아이가 학교를 가고, 점점 더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한다거나,

누군가로부터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듣고 받게 된다면, 

저는 그때마다 어떤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줘야할까요?


저나 남편,

미국 태생도 아니고,

한국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들이기에 영어도 네이티브보다 서툰데..

아이는 자라나면서 혹시라도 저나 남편을, 자신의 부모를 부끄러워한다거나 자괴감에 빠져야하는 원인이 될까봐 두려워졌습니다.


고민을 하다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습니다.


“It is very special to be a unique one, sometimes.
Don’t be one of many. Be sure that they always have good reason to remember your name.”


때때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특별해. 

군중 속 그저그런 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다오.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기억함에 있어 좋은 이유를 지닐 수 있게 꼭 명심해라.




네가 동양인인 것이,

네가 한국인인 것이

unique한 차별점이 될 수 있게 노력하라고 가르치겠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기억할 때,

‘아, 그 한국계?’, ‘아 그 동양인 아이?'가 아니라

‘아, 아일린?’이란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게 키워봐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봅니다. 



아이에게 무엇보다 군중 속 한 사람이 아니라

네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비록 엄마 아빠는 이민 1세대라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지극히 ‘회색분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만큼은 자신의 칼라를 명확히 내세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저는 늘 원서리딩..하면 '고전 명작을 읽어야지!’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노인과 바다, 오만과 편견, 아니면 어린 시절 만화로 보던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등등등


처음 저는 이 Number the stars로 아동문학이란 장르를 접해보았고, 쇼크를 받았었죠.


‘뭐.. 아동소설이 뭐가 있겠어? 읽기만 편하고 유치할거야’


아니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이 좁은 소견과 선입견에 개탄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정말 잘 쓰여진 동화는 어른 마음에 잔잔하 파동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정말 잘 탄탄하고 멋지게 쓰여진 아동문학과 틴픽션은 

영어 원서를 읽는 재미와 더불어 고전과는 다른 울림과 고민거리를 던져 주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커가고 있는 아이가 제일 먼저 접할 책.

동화책을 떼고 나면 제일 먼저 손에 들어 읽을 수 있을 책.

노인과 바다보다,

오만과 편견보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이 책을 먼저 빌려올 것만 같습니다.



그 책을 먼저 읽고,

이렇게 BLM과 함께 다시 돌아볼 수 있어 행복했던 가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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