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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가해차량과 아우디차량

나에게 선물하는 산문집

by 윤호준 Nov 10. 2023

성남대로 4차선을 달리다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사거리에서 유턴을 해야 한다. 그런데, 퇴근시간에는 반대편 차선에도 수많은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진행하다 보니 좌회전 신호가 걸려도 이미 진입한 차량들로 인해 유턴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날의 사고도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내 앞에 있던 아우디 A4 차량이 신호가 바뀌자 꼬리의 끝을 찾아서 멀리까지 가로질러 가다가 유턴을 강행했고, 나는 그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가고 있었다. 멀리까지 가서 유턴에 성공한 후 곧바로 안심을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갑자기 '턱'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이 흔들렸다. 아뿔싸! 나의 타고난 순발력과 예리한 감각으로도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아! 찰나의 접촉!'이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괜찮으신가요? 일단, 차를 도로 옆으로 이동시키고, 보험회사를 부르실까요?"


"네, 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둘이서 어색하게 나란히 서서 각자의 보험사 직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내 차량이 불법 주정차 단속에 걸릴 수 있으니, 번호판을 가리는 것이 좋겠다며 내 차의 번호판 앞에 서서 기다려주었다.


"제가 이런 사고가 처음이라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네요."


" 아! 그러세요? 저도 처음입니다. 보험사에서 알아서 하겠죠 뭐."



그렇게 15분이 흘렀을까? 양측의 보험사 직원들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차량을 향해 사진을 찍는 등 각각 떨어져서 사고 상황을 체크하더니, 곧 양쪽 보험사 직원 둘이서 힐끗힐끗 쳐다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보험사 직원들이 각각의 차량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일단은 고객님 블랙박스에서 SD카드가 안 빠지고요. 저쪽에서는 대인 접수를 요구합니다."


"네? 아까 저하고 같이 서서 기다릴 때는 멀쩡했었는데요? 그리고 블랙박스 SD카드를 저한테 빼달라고 하셔야죠. 대인 접수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럼, 경찰서로 가야 하고 복잡해지죠. 우리 쪽 블랙박스가 고장 나서 영상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인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내일이라도 어떻게든 영상을 보려고 노력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쪽 영상을 보고 왔는데요. 100%입니다."


"그래요? 암튼, 저는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서 상대방 보험회사 출동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야! 우리 쪽에서 대인 접수는 좀 생각해 보겠다고 하신다"


"예, 형님! 그럼, 우리 측 고객님과 얘기해서 경찰서로 가겠습니다."



두 차량 모두 불법 유턴을 하면서 발생한 사고지만 어찌 됐든 내가 뒤에서 접촉했기 때문에 '경찰서'라는 말이 겁이 났다. 더더군다나 당장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상대 쪽 보험사 직원하고 통화를 부탁했다.


"경찰서는 가지 마라. 내가 지인들과 상의 후 1시간 내로 결정하겠다"


라고 달래고는 추운 겨울 저녁의 사고 현장을 철수했다.



그리고 다음날 해당 손해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해차량 운전하신 OOO 고객님이시죠? 몸은 괜찮으신지요? 그런데, 이번 사고는 아우디 차량을 뒤에서 받았기 때문에, 고객님의 과실 100%로 진행해야 합니다."


"아니, 출동하신 기사분도 그렇고 지금 전화 주신 담당자분도 그렇고 그걸 왜 확정 지으며 말씀하시는 거죠? 단 한마디라도 내 편에 서서 얘기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작년에 피해 차량으로 접수했을 때는 '교통사고에 100% 과실은 있을 수 없다'면서 90:10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너무나 황당해하다가 결국 수용한 적이 있는데요."


"네, 전산을 찾아보니 작년에 사고 기록이 있네요. 그런데, 이 건은 가해차량이 옆에서 받았기 때문에 피해 차량도 10% 과실로 처리한 겁니다."


"아니, 그게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처리 규정이란 말입니까?"



결국 사고처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살짝 긁힌 피해 차량의 수리비는 2백5십만 원이 나왔고, 거기에 대인 배상과 대차비 보상까지 합치면 약 6백만 원의 보험처리 금액이 결정되었고, 내 차는 자차보험으로 수리를 진행하여 1백만 원의 수리비가 나왔고 개인부담금인 20만 원을 결재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접촉 사고 처리 과정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또 어떤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가? 내가 당사자로서 느낀 점을 종합해서 나열해 보고자 한다. 첫째, 양측 보험사에서 출동한 기사들은 평소 친분이 있는 형님과 동생 관계였다. 충분히 거래도 가능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상대방 보험사 출동 기사와 피해 차량 운전자의 차량 속 대화 이후 갑자기 '대인 접수' 이야기가 불거졌다. 그리고 내 보험사 출동 기사는 그것을 수용할 것을 권유했다. 셋째, 내 차량의 블랙박스를 출동 기사가 빼내려 하다가 고장을 냈다. 내가 이 분야의 지식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먼저 고객에게 SD카드를 빼내달라고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넷째, 작년에 내 차량이 피해 차량일 때는 교통사고에 100% 과실은 있을 수 없다던 보험사에서, 이번에 가해차량이 되니 100% 과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 영화의 속편인가?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이유가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이유이다. 보험사 직원들이 하나같이 놀라운 표현을 하는 것이다. 가해차량은 그냥 가해차량이고, 피해 차량은 피해 차량이 아니라, 아우디 차량이라는 것이다. 내가 대놓고 물었다.


"왜 피해 차량이라고 하지 않고, 아우디 차량이라고 하느냐?"


"네, 그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죠"라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국산차는 피해 혹은 가해 차량으로 명명하고, 외제차량은 대표 브랜드명으로 높여 부른다는 것인가?



저 보험사 직원들만 그럴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제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그러한 사회행태에 길들여져서인지 우리들 대부분이 외제차에 주눅 들고 혹은 외제차를 뽐내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주택 소유에 목숨을 거는 것과도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얼마 전에는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주택을 구매한다는 '영끌'까지도 성행했으니 말이다. 정치계와 건설회사들 그리고 부동산업계와 투기꾼들 그리고 능력 없는 부동산 기자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씁쓸한 '사기 사건'이 아니었나 되돌아본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장조사를 해보니, 국산 차량인 내 차는 시장가가 5천5백만 원 정도이며, 아우디 A4는 1년 365일 특별 할인을 하고 있어서, 4천5백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4천5백만 원에 주눅 들어하고 또 충성을 다한다. 왜 아우디 차량으로 부르냐고 물었을 때 보험사 직원의 당당하면서도 당황해하는 그 목소리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암튼, 이번 접촉사고 이후 '안전거리 확보'라는 대원칙을 나의 운전습관에 영구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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