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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Feb 08. 2021

11월의 시루떡

지푸라기 헛청의 알

집으로 가져온 지푸라기들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우선 산만큼 마당에 높이 쌓아 놓는다. 그러면 맨 아래 공간에 구멍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우리 집 강아지가 그랬는지 아니면 조그만 우리들이 숨바꼭질 장소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강아지와 우리의 놀이터였다.


마당에 쌓아 놓았던 지푸라기들을 다시 모아서 헛청에 놓았다. 헛청(허청)은 헛간의 집채, 즉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놓는 장소로 문이 달려있지 않은 창고다. 우리 집 닭은 그 헛청의 높은 구석에 몰래 들어가 알을 낳았다. 닭이 몰래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에 나도 몰래 따라갔다가 기어 올라가서 달걀을 가져왔다. 따뜻한 달걀을 위와 아래에 구멍을 내서 입에 대고 쪼르륵 빨아먹으면 구수하고 맛있었다. 막 낳은 알은 신선해서 비린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친구가 키우는 청계가 낳은 알. 귀한 알을 이리 많이 준 고마운 친구. 처음 맛본 청계알을 사진으로 남긴다.


수시로 헛청의 땔감을 빼서 아궁이의 군불을 지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할머니 옆에 앉아서 나도 풀무질을 해 봤다. 도정 후 모은 벼 껍질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피기 위해 열심히 풀무를 돌리면 바람이 나와서 벼 껍질 불씨에 불이 붙었다. 막상 벼 껍질에 불이 붙으면 그 여파로 지푸라기나 나무의 불이 활활 타올랐다.

짚 중에 제법 탄탄한 것들은 새끼를 꼬아 초가지붕을 엮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는 집을 몇 번 지으셨다. 초가집, 기와집, 시멘트 집이다. 그리하여 초가집의 기억이 단말마로 남아있다. 그중 아버지가 새끼로 엮어 지붕을 만드시던 장면만이 맴돈다. 작은 새끼를 꼰 후 이를 이용한 공예품도 많았다. 할머니께서는 바구니를 몇 개 만들어 집안에서 사용하셨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 시루떡을 하실 때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드셨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시루(찜솥)와  솥 사이를 반죽으로 메워서 뜨거운 증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맨 위를 흰 천으로 덮어준다. 맨 위가 맨 아래가  된다. 그 때문에 맨 처음 시루 바닥 부분의 쌀가루와 팥이나 여타의 고물을 예쁘게 잘 뿌려 주어야 한다. 켜켜이 고물 한 겹, 쌀가루 한 겹씩 뿌려 올라와서 맨 위까지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다 뿌린 후 가늘고 긴 젓가락 등으로 군데군데 찔러주면 골고루 잘 익는다. 멥쌀이나 찹쌀은 취향에 따라 다르다. 또한 떡에 뿌리거나 섞는 재료에 따라 시루떡의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콩시루 떡, 깨 시루떡, 녹두 시루떡 등등......


나는 할머니가 만드신 여러 시루떡 중 팥 시루떡을 제일 좋아했다. 여기에 늙은 호박 말린 호박고지를 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호박 팥 시루떡이 된다.






이렇게 벼 짚단을 옮기고 나면 논에서 할 일은 끝이 난다. 그러나 논에서 수확한 쌀의 이야기는 일 년 내내 계속된다. 그리고 주식인 밥과 더불어 각종 반찬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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