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와 나
가을, 황금물결이 이는 논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나에게 벼가 무르익은 논은 고생길이었다. 늘 참새와 전쟁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주로 혼자 논의 사잇길 둔덕에 앉아 참새 쫓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온종일 한 것은 아니니까 아마 동생이나 오빠와 번갈아가면서 했을 것 같다.
<따뜻한 식탁> 매거진의 여름 이야기를 다시 확인하고 가을을 이어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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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논두렁에는 실뱀이 자주 목격되었다. 가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웠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알게 된 이후에는 심심하기 때문에 책을 들고 가서 읽었다. 그 당시에 핸드폰이나 게임 같은 것이 없었다. 시골이라 만화방도 없었다. 오로지 오락 거리라고는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놀거나 자연과 놀기 또는 책이 전부였다.
그런데 책 읽는 것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수시로 지팡이로 주변을 툭툭 건드리면서 혹시 뱀이 오나 살펴야 했다. 무엇보다 '참새 쫓기'라는 본연의 임무를 해야 했다.
그것은 자주 일어나서 줄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반짝이 줄을 잡고 흔들면 거기에 매달린 깡통 속 방울이 소리를 내어 참새가 놀라 달아났다.
그 당시 나는 늘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논 전체를 그물로 덮어버리면 안 되나?
그런데 어린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어른들이 그로부터 몇 년 후 정말 그물망을 만들어 시판했다.
물론 그물망 사이로 참새떼가 날아들어 오기 일쑤였다. 하지만 빠져나가지 못한 새들도 있었다. 결국 그네들은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거나 구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때 나는 실뱀의 무서움을 참새떼를 쫓으며 잊었던 것 같다. 참새는 참으로 똑똑한 새라고 느꼈었다. 그물망이 헐거워진 틈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스며든다는 점과 대다수가 다시 잘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물망 덮개 몇 년 후 결국 이것 또한 참새에게 당해내지 못했다. 그 후 총포소리가 나도록 고정된 기계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농부들은 참새와 전쟁을 치르는 듯 보인다.
책 <파이 이야기>는 바다에서 난파해 보트를 타고 떠도는 '파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망망대해에서 파이는 함께 난파된 뱅갈 호랑이와 대결구도를 그리면서 표류하는 시간을 이겨내고 구조된다. 그 책을 읽고 내가 공포의 시간 동안 어떤 동물과 함께 있다면 좋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참새를 쫓으러 갔던 나는 황금 논의 참새들을 몰아내면서 실뱀의 출현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 것 같다.
9월에 즐겼던 음식은 햅쌀 송편, 토란국, 화양적이 있다.
1) 토란국
토란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이 있어 우리 가족같이 호흡기가 약한 경우 목이 간질거렸다. 그런 연유로 처음엔 들깨탕 속의 토란이 맛있었는데 점차 먹지 않게 되었다.
2) 송편
송편은 추석에 반드시 빚었던 음식으로 햅쌀 중 멥쌀을 익반죽 해서 만든다. 친정에서는 추석이면 여럿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송편을 빚었다. 서로 내 것이 이쁘다면서 다투기도 하고 시샘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시던 엄마께서는 추석명절이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어린애들이야 뭘 알겠는가. 그저 네 것이 예쁘네, 아니 내 것이 예쁘네 티격태격하면서 송편을 빚으면 그만이었다. 자라고 보니 엄마 일을 거들어서 제사상을 차려야 했고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9월 초 결혼 직후 곧바로 추석 명절을 맞이했다.
시댁에서의 , 첫 추석 때 나는 기절할 뻔했다. 친정은 저리 가라 할 일이 태산이었다. 더구나 송편을 한말 가까이 빚는 것이었다. 참고로 한 되는 전라도의 경우 됫박에 담은 채로 재어 1.6kg 정도라고 한다. 한말은 열 되에 속한다. 그 당시 그리 들었지만 이제 와서 기억하자니 정확한 양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른 다섯 명이 세 시간 넘게 빚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종갓집 종손 집안이었고 그 당시는 어르신들이 많이 생존해 계셨다. 오시면 쪄낸 송편을 또 열심히 싸 드려야 했다.
전을 몇 시간 부치고 나니, 송편을 빚어야 한다고 해서 또 몇 시간하고 나니 밤이 되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 어머님께서 “이제 한우 갈비 다듬자!” 하시는 것이었다. 괜히 내가 한우 갈비를 사 가서 오밤중에 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댁도 시골이라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캄캄한데 달은 어찌나 밝은지...... 마당에 잠시 나와 본 달이 너무 밝고 예뻐서 눈물이 났다. 직장에서 일하고 시댁에 오자마자 이게 뭐란 말인지 하소연할 데가 달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무슨 조선시대 여인의 이야기 같다.
우리 시어머님은 나를 고생시키신 것이 아니시다. 그 당시 시 할머님께서 살아계셔서 어머님도 어쩔 수 없이 온갖 일을 하셔야 했다. 어머님께서 만약 미리 하실 일이 있으실 경우 다 해 놓으셨다. 그 많은 살림살이를 싫은 내색 한번 없이 하시는 어머님을 보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첫 해의 경험으로 추석에 송편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미리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머님께서는 시 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송편의 양을 점차 줄이셨다. 급기야 두 해 전부터는 여자들이 전을 부치는 동안 남자들이 송편을 빚게 되었다. 송편의 양이 많으면 쌀 반죽 치대기부터 일단 온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팔이 아플 정도였다. 이제는 남자들이 한 것을 맛있게 먹는 시점이 되어서 행복하다.
우리나라는 쌀을 이용한 떡 종류들이 정말 많다. 이미 매거진을 통해 여러 떡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림만 첨부해 보기로 한다. 나는 어머님의 가마솥 시루떡이 자주 생각난다.
모싯잎 송편이 최근 인기가 많은데 모시잎은 생김새가 깻잎과 유사하다. 6월경부터 8월 사이 많이 나오는데 근래에는 미리 채취한 모싯잎으로 송편을 빚기도 한다. 오늘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시판되는 모싯잎 송편을 먹고 싶어서 인기 많은 동네 떡집에 가서 사 왔다. 모싯잎 송편은 보통의 송편보다 크기도 크다. 모싯잎을 쪄서 떡가루와 함께 잘 섞어 치댄 후 송편처럼 빚은 것이다. 안에 흰 콩고물이 겉의 모싯잎과 조화를 이룬다.
3) 화양적
전과 적의 다른 점은 기본적으로 꼬치에 있다. 꼬치에 꿰어 굽거나 지진 것을 적이라 하며 처음부터 아예 꼬치를 끼우지 않으면 전이라 칭한다. 누름적과 화양적의 가장 큰 차이는 재료를 꼬치에 끼워 마지막에 접시에 낼 때 꼬치를 뺀 음식을 누름적, 꼬치 채 낸 것을 화양적이라 칭한다고 한다. 우리말이 비슷비슷하니 어렵다. 궁금한 이를 위해 자세히 필기를 해 놓았다.
가을에 힘들게 참새를 쫓다 보면 논에서는 이제 추수가 시작된다. 추수 후 탈곡이 끝나면 남은 이삭을 줍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지푸라기를 모아 여러 가지에 쓸 요량으로 짚단을 만들어 집으로 가져간다.
모두 떠난 논은 새들의 잔치 상이 된다. <계속>
참새 설명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