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와 우렁이의 소곤거림
쑥절편
양력 6월은 음력 5월에 해당한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초여름을 의미한다. 절식으로 수리취떡이 있다. 수레바퀴 모양으로 찍어낸 쑥절편이다. 절편은 치는 떡을 말한다. 쑥을 맵쌀과 소금 조금, 그리고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섞어서 매우 치댄다. 치댄 후 동글 납작하게 빚어 찐 이 떡을 우리는 쑥개떡이라 했다.
쑥은 영미권으로 본다면 허브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쑥밭이네
라는 표현이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쑥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잡초만큼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자랄 수가 없다. 6월이면 쑥은 키가 한 뼘이 넘게 된다. 쑥은 어린것으로부터 자란 것까지 모두 인간에게 유용하다. 다 자라서 식용을 할 수 없는 상태의 것을 이용해 한방약재로도 쓰이며 찜질 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처음 나온 어린 쑥은 애탕국을 끓이고 조금 자라면 쑥 버무리나 쑥국을 해 먹는다. 아주 많이 더 자라게 되면 낫으로 한 움큼씩 베어 쑥떡을 했다. 너무 자라 국을 끓일 수 없는 상태의 쑥으로 만든 절편이다.
나는 할머니가 해 주신 쫀득한 쑥개떡을 입에 물고 아침에 등교를 했다.
국민학교 어느 한때, 우리 어린이들은 당시 정부의 000 운동의 영향으로 여러 마을의 아이들이 아침 일찍 함께 모여 학교에 등교했다. 하교는 제각각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이들은 정말 순진하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맨 앞의 아이가 깃발을 들고 줄을 맞춰서 학교에 갔다. 나는 주로 뒤에 따라갔다. 혹시라도 뱀 같은 것이 나올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당시 논두렁에는 실뱀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그때는 언니 오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가는 등굣길이 좋았다.
논두렁을 따라 함께 등교하던 행보를 그리 길게 하지는 않았다. 짧은 기간이었는데 강하게 남아있다. 그것이 좋고 나쁜 것을 이제와 논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그저 우리 나름으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6월도 그렇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논두렁 사이에 아기새들이 보였다. 우리들은 그런 아기새를 논병아리라 불렀다.
줄이고 뭐고 우리들은 모두 그 논병아리를 잡기 위해 나섰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아기새는 귀여움 그 자체였다. 어떤 친구가 한 마리를 붙잡았고 나머지는 모두 놓쳤다. 아기새는 마치 병아리같이 어린 우리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도 될 정도로 조그맣고 앙증맞았다. 나는 그때 어찌나 그 아이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아이가 그 새를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우리들의 행동이 그 새의 가족에게 어떤 파장을 끼치는지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니 도둑질이 아니라 여겼고, 그저 눈앞의 예쁜 것을 주워 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기새를 가진 그 아이는 어깨가 위로 솟고 고개는 우쭐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후로 걸어서 등 하교를 할 때면 벼들 사이를 눈으로 샅샅이 훑으면서 다녔다. 그러나 운이 없던 내게는 단 한차례도 보이지 않았다. 그 새는 바로 노래 "뜸~북 뜸~북 뜸~북새"에 나오는 뜸부기였음을 후에 알게 되었다. 엄마 뜸부기와 아기새 들이었다. 불쌍한 뜸부기가 내 눈에 띄지 않아서 나에게 나쁜 업보를 남기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어린 날 뜸부기, 귀엽던 아기새가 근래에 멸종위기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
논에 우렁도 많았다. 그 당시에 내가 우렁을 잡고 놀 일은 없었다. 논가 개울에 가재와 송사리들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우렁이 껍데기만 둥둥 떠 다녔다. 그때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우렁이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렁은 알을 몸 안에서 키우고 알들은 엄마 살을 파 먹으며 자란다고 한다. 결국 아기 우렁이들이 다 자라면 그 아기 우렁이들을 모두 세상에 내놓고 엄마 우렁은 죽는다. 그러니까 그때 둥둥 떠 다닌 빈 껍질은 엄마 우렁이었다. 자연의 슬픈 섭리다.
아기 우렁이들이 논습지에서 신나게 돌아다니고, 아기 뜸부기가 훌쩍 자라면 한여름이 되어 매미가 울어댄다. 그리고 7,8월 여름 비가 쏟아지면 논은 개구리와 맹꽁이의 합창대회가 열리는 무대가 된다. 어느 팀이 더 센지 내기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