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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의 계절

모내기와 새참 막걸리

by 루씨

오월은 싱그러움의 상징이다. 그래서 ‘오월의 신부’라는 단어의 느낌은 여느 신부와 다르다. 고향의 오월은 모내기로 분주했다.




품앗이 모내기, 품앗이가 안되면 일꾼을 얻어야 했다.






모내기



우리 집 모내기는 5월 중순 경에 했다. 아빠가 줄을 맞춰 놓으시면 그 줄을 따라 심는 작업을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했다. 아주 큰 논은 일꾼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나는 새참 나갈 때마다 막걸리를 들고 할머니를 따라갔는데 주로 느릿느릿 걸어서 저만치 할머니와 멀어지곤 했다. 막걸리가 흘릴까 봐서 느린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내기 철이면 품앗이할 사람도 적어진다. 모두들 자기 논에 물 대고 모내기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모내기는 나름 재미가 있었다. 거머리가 나의 다리에 딱 달라붙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나는 처음에 기겁을 했다. "이런 거머리 같으니라고! "하는 말이 왜 나왔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물렁물렁한 것이 떼려고 해도 착 달라붙어서 떼면 어느 사이 내 피를 빨아먹은 흔적이 종아리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거머리는 이빨로 물어뜯으면서 마취효과를 내는 물질을 분비해 사람이 물린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단다. 그 시절 흔했던 거머리가 현대 의학에서 의료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허준도 염증 치료에 썼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물려서 피가 나는 종아리를 보면 기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가장 싫어한 것은 거머리가 아니었다.


물뱀이 어느 사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혼비백산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쳤다. 그 당시 아빠 말씀으로는 논 물뱀은 독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생김새도 징그럽고 나는 질색팔색이 되어 늘 도망 다녔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아빠의 일손을 도와야 했다. 사람의 기억이 이상한 것인지 나는 일할 때를 생각하면 늘 혼자다. 그게 분명히 잘못된 기억인 듯 한 이유은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일손을 돕지 않은 사람으로 꼽힌다. 내 생각에는 내가 제일 많이 도와 드린 것 같다.


모내기가 모두 끝난 마을은 연둣빛 향연이다. 물이 잘 대 진 논에서 벼들은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푸른 벼들 사이로 어디선가 날아와 알을 낳은 철새와 우렁이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맹꽁이의 경연대회가 연일 귓가에 울린다.




"쌀"하고 발음을 하면,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우리 선생님은 경상도 출신으로 우리를 잘 이끌어 주셨고 학생 지도에 정말 적극적이셨다. 그런데 '쌀'을 늘 '살'로 발음하셔서 낙엽만 굴러가도 웃었던 우리들을 배꼽 잡고 웃었다. 쌀은 우리 살을 찌우게 하니, 어쩌면 살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니라고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쌀은 벼농사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봄철이면 논을 정비하여 모내기할 논에 물을 단단히 받는다. 겨울을 제외하고 논은 항시 물이 있다. 모내기 철이 되면 논에는 벼 모종을 쿡 박으면 들어가서 안착될 정도로 물이 찰랑인다.



찔레꽃 필 때


어떤 농부 말씀이 모내기는 찔레꽃이 필 무렵 시작한다고 하는데, 찔레꽃의 개화 시기는 5월이다.


찔레꽃 꽃말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이라고 한다. 이런 꽃말이 좋아 스케치도 하고 도자기에도 자주 그렸다.

수작업 도자기들, 찔레꽃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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