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시절
여름이면 뭐니 뭐니 해도 복숭아와 수박이 제일이다. 어릴 때 내가 자두 복숭아라 칭하는 것의 정확한 명칭은 천도복숭아인데 새콤 달콤함이 자두와 비슷한 느낌의 천도복숭아를 필두로 여러 종의 복숭아가 생산되는 마을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청도와 백도를 재배했고, 내가 좋아했던 황도는 이웃에서 나눠주셔서 먹었다.
복숭아나무들 아래에는 수박을 심었다.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원두막에 올라 다리를 달랑거리며, 손으로 탁 잘라 주신 수박을 베어 물고 너른 과수원을 볼 때면 우리들은 마냥 즐거웠다.
복숭아는 장마철이 되면 참 맛이 없어진다. 물을 너무 많이 머금게 되어서 싱거워진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럴 때면 잼을 만들거나 꿀에 재워 냉장고에 두었다가 얼음과 함께 믹서에 갈아서 복숭아 스무디를 해 먹는다. 나의 레시피에 복숭아가 맛없다고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아무리 싱겁고 맛이 없어도 복숭아가 지닌 특유의 상큼한 향은 어떤 과일로도 대체가 안된다. 그런데 인공적인 복숭아 향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을 따를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복숭아는 벌레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복숭아 먹다가 벌레 반쪽 먹은 적도 많으니 말이다. 반드시 약을 치는 과일 중 하나다. 여러 가지 나무에 해를 끼치는데 특히 오갈병이란 것이 생각난다. 나뭇잎이 오그라든다. 과육이 잘 자라기 위해 나뭇잎은 참 중요한 존재다. 과육이 익기까지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나무다.
복숭아나무는 가지치기도 중요한데 이를 전정이라고 한다. 가지치기를 잘해 줘야 맛있는 과일이 열리기 때문이다. 주로 가지치기는 한 겨울에 했던 것 같다. 추워 죽겠는데 겨울이면 과수원에 오빠와 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서야만 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가지를 치시면 아래 떨어지는 가지들을 모아야 했다. 그걸 모아 단단히 엮어 불쏘시개로도 이용할 뿐 아니라 과수원 아래가 엉망이 되는 것을 치우는 것이었다. 먹는 것이야 즐거웠지만 일하는 것은 정말 싫었고, 특히 너무 추워서 손이 꽁꽁 얼려고 했다. 밭은 왜 그리 넓었던지......
봄이면 너른 과수원에 복사꽃이 피고, 곧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아직 어린 열매를 솎아줘야 나머지가 영양분을 받아 잘 자라게 된다. 어린 열매들 중 너무 무성하게 난 곳들의 것들을 솎고 나서, 큼직한 봉지로 각각을 잘 싸준다. 그 봉지 작업을 또 아버지를 도와서 했는데, 풀을 쑤어 네모난 종이 양쪽을 탁탁 접어 중심에 맞춰주면 봉지가 된다. 이런 봉지 작업은 미리 겨울철에 농사일이 적었던 날들에 했던 것 같다.
솎은 열매 중 튼실한 것들을 넓은 볼에 담아 사카린을 아주 조금만 뿌려 뒤적거리면 상큼하고 아삭 거리는 특유의 맛이 난다. 아마 단물 때문에 더욱 맛있어서 먹었을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사카린나트륨, 아스파탐 같은 것들은 화학 첨가물로 인공 감미료다. 설탕의 몇백 배 단맛을 내므로 저렴한 원가 생산을 위해서 또는 적은 양으로 강한 단맛을 내기 위해서 사용된다. 때로는 요리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설탕을 넣게 되면 삼투압 원리로 너무 물이 많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사카린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아스파탐은 대부분 막걸리에 들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처럼 누룩으로만 느린 발효를 하는 재래 막걸리는 찾기가 어렵다. 아마도 공장에서 빠른 시간에 대량 생산되기 때문인 듯하다.
많은 식품에 인공감미료나 인공향료가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런 것 저런 것 따지면 먹을 것이 없어진다. 그래서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그냥 먹을 때는 행복하게 먹자. 그런데 너무 자주 그런 것을 먹는 걸 피하자. 때로는 나 자신에게 달콤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그 나쁘다는 불량 식품을 사 먹기도 한다.
엊그제 친구가 재배한 복숭아 몇 그루에서 수확한 복숭아를 조금 얻었다. 지난해 들렸을 때는, 여름 해가 쨍쨍해서 달달하고 껍질이 쭈욱 벗겨져서 나의 어린 시절 복숭아 맛 그대로였는데, 이번 것은 장마로 인해 단맛이 적었다. 복숭아는 그 종류에 관계없이 맛에 따라 소비가가 찾게 된다던데, 맛이 하나도 없다면서 주는 것을 나는 행복하게 받았다. 향기가 좋아 자꾸만 코를 킁킁거리게 된다. 사진을 찍고, 몇 개는 그냥 먹으려고 두고 나머지는 꿀에 재워 냉동실에 넣었다.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심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 피부가 예민한 편인 나는 이상하게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없다. 복숭아 출하 시기가 되면, 복숭아가 무르게 되기 전에 딴 것들을 작업을 위해 나무 박스에 흰 종이로 개별 포장해서 넣었다. 아버지는 나무 박스를 모두 손수 못으로 박아 만드셨고, 크기에 따라 옆에 개수를 써서 붙이셨다. 더운 날 땀이 목으로 흐를 때, 아버지의 출하 작업을 도울 때면 간지러워도 긁을 수가 없었다. 복숭아 털이 묻으면 더 간지럽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바로 그런 작업들을 해서 내가 지금 복숭아 털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되었나 보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복숭아의 계절도 서서히 끝나간다. 7월 말 장마 직전, 햇살이 너른 과수원에 내리쬐는 동안 또는 장마 후 무더위로 땀을 뻘뻘 흘리는 20일 정도의 한 여름이 복숭아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많은 작업의 결실을 한입 베어 물면서, 남의 밭이 된 복숭아 과수원 언저리에 있는 아버지의 산소를 떠 올린다. 복사꽃이 피고 지고, 복숭아가 열릴 때면 아버지도 좋아하실까.
나의 복사꽃 시절도 안녕, 아빠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