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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Aug 06. 2020

호박잎 쌈

농막의 사계, 꿈에 투자한다는 것

너의 재산의 전부를 저금하지 말라.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라.

운전을 할 때면 언제나 EBS 라디오를 듣는다. 광고 중에 “너의 재산의 전부를 저금하지 말라.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라.”라는 멘트가 귀에 꽂힌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더구나 제로금리 시대이니 말이다. '자신의 미래'라는 것은 취미, 공부, 재테크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나의 생각에는 누군가 만약 조금의 자본이 있어서 미래에 투자를 하고자 한다면 땅을 사라고 권하고 싶다. 투기성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의 자본으로는 그럴 수도 없다.

가을 농막에는 감이 주렁 주렁 열린다


20년 전에 아주 적은 자본으로 시골에 땅을 구입하여 이것저것 심었다. 고구마를 열심히 심으니 멧돼지가 내려와  먹어치우고, 콩을 심으니 날짐승이 까먹어 버리고, 농약을  하니 잡초가 무성하여 풀베기 바빴다.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로부터 멀리 있어서 자주 가지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작물을 재배하기란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올봄에 자작나무  그루와 여러 가지 나무들을 심었다. 이제 뭔가 구황 작물 재배는 도저히 엄두가  나서  한다. 그곳이 산속의 한옥 체험 마을이 되어 땅값이 오르기는 했으니 투자의 가치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곳은 남편의 꿈의 터전이기에 땅값이 오른  그리  의미는 없다. 남편은 언젠가 그곳에서 뭔가를 한다고 계획하고 있다.

농막의 여름

나는 순전히 ‘나의 미래’를 위해 일 년 전에 시내에 낡은 주택을 사게 되었고, 꿈을 펼치기 위해 구상 중이다. 나의 소견으로는 전원주택을 꿈꾸는 경우에는 시골이 최선이다. 주변에 산과들이 있는 곳이 최상의 장소다. 그러나 자주 찾을 힐링 장소를 원할 경우 직장과 가까운 곳에 해야 현실적으로 그 꿈을 이루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 땅에서 바다가 보이나요?"

"아뇨."

"그럼 당장 파세요. 그렇게 멀면 자주 가기 힘들어요. "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고, 작물을 재배해 본 경험이 전무한 직장 동료가 최근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부안의 땅에 무엇을 심으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을 때 즉시 답변한 내용이다. 세컨드 하우스나 주말 농장 같은 경우는 본인의 집에서 가까워야 한다. 또 바다가 보이지 않는 땅이라면 투자의 가치도 적다고 판단했다. 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있는 나의 농막에 가는 것도 힘든 내가 답변할 때 그것은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며칠 전, 그녀가 또 질문을 했다.


" 준 늙은 호박들이 열렸는데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요?"

" 아니, 땅을 안 팔고 거기에 뭘 심었다고요? "


그녀가 명칭 한 준 늙은 호박이란 애호박과 늙은 호박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상태의 호박을 말한다.


"아! 그거요.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호박잎이랑 된장국 해 먹어도 맛있고, 꽃게탕을 해도 맛있고, 어떤 찜이나 찌개에 넣어도 잘 어울려요. 짜장밥 해 먹어도 잘 어울려요.  그리고 호박잎 쌈이 맛있는 계절이네요.  호박잎은 줄기째 길게 뜯어서 줄기의 껍질을 훌훌 벗겨서 찌고,  청양고추 서너 개를 숭숭 썰어 강된장 두 수저와 물 조금 넣어 아주 약불에 살짝 끓여요. 고기 종류가 있으면 같이 쌈 싸 먹어도 맛있고 그냥 호박잎에 밥과 된장 찜만 있어도 담백한 맛이 있어요.”

"아, 그래요?"

"네, 다 따지 마시고 몇 개는 조금 더 두었다가 늙은 호박 되면 따세요. 늙은 호박으로 호박죽도 해 먹고, 호박 식혜도 좋고, 채 썰어서 호박전을 해도 되고, 또 얄팍하게 썰어 말린 후 호박떡을 해 먹어도 되고요. 그러고 보면 토종 호박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이 먹게 되네요."

"호박 식혜요?"

"네, 호박식혜는 식혜를 먼저 밤사이에 삭힌 후 아침에 밥알이 떠 오르면 한소끔 끓여줘야 하는데요. 그때 따로 익혀둔 늙은 호박을 짓이겨서 식혜와 같이 한소끔 끓여요. 우리 어릴 땐 우리나라가 정말 추웠죠? 밖에 내놓으면 뭐든 다 얼었잖아요. 뜨뜻한 아랫목에서 꽁꽁 언 호박식혜를 녹여 마시면 별미였어요. 별미!"

"오호! 그래요?"

"늙은 호박 잘 되면 저도 한 덩어리 얻을 수 있겠죠? 늙은 호박이 들어간 요리는 무엇이든 다 좋아하고, 저는 바라보기만 해도 그렇게 좋더라고요. 찾아보니 늙은 호박이 단호박보다 염증 제거 성분이 거의 두배나 많대요. 그래서 산후 부기 빼는 음식으로 호박찜을 많이 먹잖아요."

"네, 꼭 잘 키워서 늙은 호박으로 드릴게요! 고들빼기도 심었어요!"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다음에는 고들빼기김치 담는 법 알려드릴게요."

호박잎 쌈밥


나는 그 땅을 얼른 팔고 전주 시내의 가까운 곳에 사라고 충고했던 것일랑은 까맣게 잊고 늙은 호박 구할 생각에 신이 났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에 심은 것들을 돌보는 재미에 푹 빠진 동료는 늙은 호박을 나에게 나눠 줄 생각에 신이 나 보여서 다행이었다.


농막의 겨울
호박잎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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