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와 새참 막걸리
"쌀"하고 발음을 하면,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우리 선생님은 경상도 출신으로 우리를 잘 이끌어 주셨고 학생 지도에 정말 적극적이셨다. 그런데 '쌀'을 늘 '살'로 발음하셔서 낙엽만 굴러가도 웃었던 우리들을 배꼽 잡고 웃게 만들었다. 수업시간에 쌀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쌀은 우리 살을 찌우게 하니, 어쩌면 살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니라고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쌀은 벼농사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다. 지난 글에서 주먹밥과 관련한 정월 대보름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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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밥을 짓는 쌀과 관련된 글을 당분간 연재하기로 한다. 오늘은 5월의 논 이야기다.
봄철이면 논을 정비하여 모내기할 논에 물을 단단히 받는다. 겨울을 제외하고 논은 항시 물이 있다. 모내기 철이 되면 논에는 벼 모종을 쿡 박으면 들어가서 안착될 정도로 물이 찰랑거리게 된다. 어떤 농부 말씀이 모내기는 찔레꽃이 필 무렵 시작한다고 하는데, 찔레꽃의 개화 시기는 5월이다.
찔레꽃 꽃말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이라고 한다. 나는 찔레꽃을 특히 좋아해서 스케치도 하고 도자기에도 자주 그렸다.
우리 집 모내기는 5월 중순 경에 했다. 아빠가 줄을 맞춰 놓으시면 그 줄을 따라 심는 작업을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했다. 아주 큰 논은 일꾼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나는 새참 나갈 때마다 막걸리를 들고 할머니를 따라갔는데 주로 느릿느릿 걸어서 저만치 할머니와 멀어지곤 했다. 막걸리가 흘릴까 봐서 느린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내기 철이면 품앗이할 사람도 적어진다. 모두들 자기 논에 물 대고 모내기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모내기는 나름 재미가 있었다. 거머리가 나의 다리에 딱 달라붙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나는 처음에 기겁을 했다. "이런 거머리 같으니라고! "하는 말이 왜 나왔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물렁물렁한 것이 떼려고 해도 착 달라붙어서 떼면 어느 사이 내 피를 빨아먹은 흔적이 종아리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거머리는 이빨로 물어뜯으면서 마취효과를 내는 물질을 분비해 사람이 물린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단다. 그 시절 흔했던 거머리가 현대 의학에서 의료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허준도 염증 치료에 썼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물려서 피가 나는 종아리를 보면 기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가장 싫어한 것은 거머리가 아니었다.
나는 혼비백산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쳤다. 그 당시 아빠 말씀으로는 논 물뱀은 독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생김새도 징그럽고 나는 질색팔색이 되어 늘 도망 다녔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아빠의 일손을 도와야 했다. 사람의 기억이 이상한 것인지 나는 일할 때를 생각하면 늘 혼자다. 그게 분명히 잘못된 기억인 듯 한 이유은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일손을 돕지 않은 사람으로 꼽힌다. 내 생각에는 내가 제일 많이 도와 드린 것 같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중학교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동생들 입장에서는 늘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렇게 모내기가 모두 끝난 마을은 연둣빛 향연이다. 그리고 곧 벼들은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푸른 벼들 사이로 어디선가 날아와 알을 낳은 철새와 우렁이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맹꽁이의 경연대회가 펼쳐질 예정이다. <계속>
양희은의 '찔레꽃 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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