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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Feb 10. 2021

설레는 설날 음식

설빔과 조청의 추억

아주 어릴 적에는 설이 될 무렵이면 달달한 조청의 맛과 함께 새 옷을 받을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좀 자라면서 세뱃돈의 맛을 알게 되었고, 더 자라니 떡국을 썰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결혼을 하니 명절은 고난의 날이었다.


시댁에서의 첫 설에는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갔다가 너무 불편했다. 제사 음식 준비와 더불어 산더미 같이 많은 가래떡을 썰어 떡국떡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추석에 송편 빚기가 있다면 설날은 떡국 떡을 썰어야 한다. 미리 떡을 빼서 하룻밤 지난 상태가 썰기 적절한 상태다. 너무 굳거나 너무 물렁거리면 하기 힘들다.

떢국떡 써는 모습

그 후 시댁에 갈 때는 예쁜 한복 대신에 앞치마를 들고 갔다. 어느 설에는 어머님께서 미리 떡국 떡을 썰어 놓으시기도 하셨다. 우리 시어머님께서는 하실 수만 있다면 힘든 일을 미리 해 놓으시는 분이시다.


지난해 설 제사상, 예전보다 간소하게 차린 것이 이만큼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엊그제 우리들에게 선언하셨다.


이번 명절부터 제사는 지내지 말자!

 

나의 동서는 교회를 지성으로 다니는 신자지만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여태껏 우리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왔다. 어머님의 말씀으로 이제 종교적으로도 자유롭게 된 것이다. 조상님을 섬기는 것도 좋지만 변화된 세상에서 제사음식을 모두 차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된다.


지난주 예쁜 옷을 사들고 어머님께 다녀왔다. 어머님께서 올 설은 각자 지내자고 하셨다. 그래도 설날에 가 뵈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형님네가 모시고 잔다고 한다.


그간 참으로 힘들게 살아오신 어머님께서 결단을 내려 주셔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설을 맞이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우리가 먹을 음식만 장만하기로 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린 날 설빔과 조청의 맛


설이 다가 올 무렵이면 엄마가 이번에는 또 어떤 옷을 사 주실지 몰라 가슴이 뛰었다. 딸이 내리 셋인데 그중 맏이였기 때문에 늘 나는 새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동생들은 나의 옷을 물려받았고, 기껏해야 양말을 사 주는 정도였다.

꼬까 옷 입고 봄맞이 가는 꼬마와 흰소

자라면서 나의 막내 여동생이 어느 날 딱 한번 받은 옷을 서랍에 고이 간직하기에 물었더니 아까워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께서 새 옷을 사 주시자마자 입고 동네방네 돌아다녔는데 말이다. 철없는 언니였으니 어쩔 수 없다. 어린 날을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과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동생과 나누는 일이 어렵다. 만약 내가 한마디 꺼내기만 하면 동생에게 바로 질책을 당한다. 나의 바로 아래 여동생의 푸념을 하염없이 들어야 하는 것은 숙명이다.


그러나 옷 물려주기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막내 여동생은 지금도 내 옷을 물려받아 입는다. 동생이 조금 더 날씬하지만 우리는 옷의 치수가 비슷하다. 내가 새 옷을 샀다가 치수가 작다거나 몇 번 입은 후 싫증이 나면 여동생에게 준다. 그러면 여동생은 고맙다고 입는다. 이렇게 글을 쓰니 못된 언니 같다. 때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새 옷을 못 입는다고 말하면서 섞어 놓기도 한다.


둘째 여동생은 너무 심하게  날씬해서 내 옷을 입을 수가 없다. 이러한 오늘날의 옷 물려주기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익혀온 습관 같은 것이다. 사실 말하자면 우리 막내가 제일 순하고 알뜰하다. 한편, 나의 옷을 선택하는 안목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설빔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오빠가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빠가 여자였다면, 우리 집은 아래로 주르륵 넷이 오빠의 옷을 물려받아야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여동생이 둘씩 되지 않았다 해도 엄마께서 여자 아이 옷을 사 주셨을지는 의문이다. 그만큼 할머니와 엄마의 오빠에 대한 사랑의 도가 큼직하셨다.


조청의 추억


설날이 다가오면 설빔과 함께 부뚜막에서 주걱을 저으며 달이는 조청이 떠 오른다. 유독 설 명절의 조청이 떠 오르는 이유는 유과나 산자 때문인 것 같다. 떡을 조청에 찍어 먹기도 했지만 특히 유과나 산자를 만들 때 쌀 튀밥이 잘 달라붙게 하기 위해 조청을 사용한다.


정읍의 쌍화차 집에서 먹은 구운 떡과 조청의 어울림


산자를 만들 때면, 어린 시절 방 하나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곳에 넓게 잘 마르라고 산자를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구례 오일장에서 사람들이 쌀 튀밥을 많이 하던데 그 이유가 산자나 유과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했다.


튀밥 집, 오일장 모습
유과 산자 참 맛있다!

세뱃돈과 손자의 탄생 


글 서두에서 밝히는 '손자'란 나의 아버지의 손자 즉, 나의 조카다. 우리 집안 손주 11명 중 딱 한 명이 남자아이다.


아이들에게 설날은 뭐니 뭐니 해도 세뱃돈이다. 나의 다섯 형제자매 중 내가 제일 먼저 딸을 낳았다. 이후로 오빠부터 막내까지 모두 딸을 둘씩 낳았다. 그러다가 막둥이 남동생이 아들을 하나 턱 하니 낳았다.  남동생은 딸 둘과 아들 하나다. 나의 아버지 입장에서 손주를 합하면 손녀 10명에 손자 하나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첫 손녀딸인 나의 큰딸을 애지중지하셨다. 출산한 병원의 수술실 팻말에서부터 아기의 모습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캠코더에 담아 후일 주셨다. 차에는 손녀딸 사진을 딱 걸고 다니셨다. 그러다가 내리 쭉 손녀딸만 생긴다고 어느 날부터 나에게 불평을 하셨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큰딸은 할아버지를 조금 싫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고전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셨다. 우리나라가 아들을 선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제사 때문이다.


그런데 친정도 앞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아버지 산소는 남동생이 잘 돌본다. 착한 동생이다.

왜 절 안 해?, 어떻게 하지?, 언니! 오빠! 얼른 해~~~ 뭐해? 쭈르르 서서 절을 할 때면 서로 눈치를 본다.


막둥이라 그런지 나는 남동생 아이들이 더욱 귀엽다. 모두 눈이 왕방울들이다. 올해 새배도 못하니 안타까울 듯하다. 세뱃돈은 톡으로 보내줘야 할 것 같다.




최근 동료가 예쁜 딸을 낳았다. 고령으로 정말 힘들게 출산을 했다. 시댁에서는 조금 실망하셨다고 한다. 정말 그럴 때 씨월드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우리들은 모두 축하해 줬다.


정말 축하해요! 애썼네요.


동료는 초기 유산의 염려가 있어서 겨우 직장에 다녔다. 곁에서 지켜본 우리들이 모두 아슬아슬해서 걱정했던 경우다. 그런 그녀가 출산한 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내가 딸 자랑을 했다. 그녀를 격려하기 위함이다.


우리 딸은요, 코로나 끝나면 여행을 자기와 1번으로 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네요. 하하, 딸이 있으면 좋아요.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사랑스러운 미래의 보물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 덕분에 상처받는 며느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유를 얻었으니 드라이브나 가야겠다. 세상은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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