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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an 10. 2021

2월, 정월 대보름 주먹밥

붕어 엄마

주먹밥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찹쌀이 들어가면 더 쫀득하게 된다. 그래도 건강을 고려해서 찹쌀은 조금 넣고 잡곡과 현미를 더 섞었다.


동그랗게, 네모나게 모양을 내어 상을 차린다. 맨 위에 고명 겸 잔멸치 볶음을 올린다.

주먹밥 하면 생각나는 것은 아이들의 도시락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여러 모양을 내서 도시락을 싸 주었다. 김으로 머리를 만들고 주근깨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케첩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 또 오므라이스를 만들고 하트나 여러 모양을 그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다 잊어버리고 아빠의 요리만 떠 올린다.


주먹밥 중에 으뜸은 어릴 적 정월 대보름에 먹었던 찹쌀 주먹밥이다. 마을을 돌며 넓은 채반에 밥을 받아와 우물가에서 여럿이 앉아 수다를 떨며 먹었다.


정월 대보름은 음력으로 1월 15일 즉, 설날이 지나고 처음으로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2021년은 2월 26일이라고 한다.


달, 특히 보름달에 대한 동서의 사고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정월 대보름을 아주 중시 여겼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갖은 나물 그리고 부럼 등 특별히 먹는 음식들이 있다.

우리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여러 집의 오곡밥을 맛보아야만 그 해의 운이 좋다는 풍속이 있었다. 외국에서 할로윈 데이 때 아이들이 사탕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방문해서 사탕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마을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채반을 들고 집집마다 방문한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그 집만의 밥을 한 덩이 채반에 올려주셨다. 어른들은 풍악을 울리며 가가호호 방문을 했다. 남자애들은 그때 깃발을 들고 풍악을 따라다녔던 것 같다.



우리는 어릴 적에 공부하란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냥 놀았다. 날이면 날마다 골목길을 쏘다녔고, 절기마다 있는 잔치에 구경을 다녔다. 내 다리가 알통(머슬, 근육)이 있는 이유는 이렇게 늘 쏘다녔기 때문이다. 내가 민첩한 면은 있지만 키가 많이 자라지 못한 이유다. 그러다가 조금 자라니 집안일을 자꾸 시키셨다. 중학교에 간 후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공부를 하면 집안일에 면피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아마 계속 놀기만 할 수 있었다면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 여자 어린이들은 채반을 들고 가가호호 방문해서 모은 오곡밥을 마을의 우물로 가져갔다. 우물은 그 당시 여자들의 공간이었던 것 같다. 마을에 하나 깊게 파 놓은 우물에서 공동으로 물도 길었고 빨래도 했다. 마을의 어떤 남자애도 우물에 오지 않았다. 우물가 주변의 넓은 풀 위에 채반을 펼쳐 놓고 보름달을 보면서 오곡 주먹밥을 나눠 먹었다.


우리 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지어낸 줄 안다. 그래서 나도 엄마께 확인까지 했다. 어릴 적에는 밤길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러나 정월 대보름만큼은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온 동네가 축제의 분위기였으며 횃불같이 밝은 달님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풍악소리가 든든했고, 모두들 떼로 우르르 몰려다녔다. 날씨가 좋지 않아 보름달을 보지 못한다 해도 횃불을 더더욱 밝게 켜서 보름달을 대신했다.


정월 대보름에 온 동네의 집밥을 다 조금씩 맛본 우리들은 올 한 해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어른들의 전해지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큰 효력을 발생했다. 정월 대보름만큼은 어른들께서 먹어야 한다는 여러 음식들을 골고루 먹었다. 어릴 때 잡곡밥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이날 오곡밥을 잘 먹는다. 그래야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런 풍속 문화를 미신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풍속은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골고루 먹는 식단, 특히 밥을 중시 여기니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 건강한 것 같다.


주먹밥을 만들고 나니 서울 딸들 생각이 난다. 찹쌀 팥 주먹밥을 만들어 보낸 적이 있다. 이사 갈 때 냉동고에 그대로 있어서 다 버렸다. 너무 속이 상해서 그 후로 다시는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버터 볶음 주먹밥이니 보내줄까?


나는 상처받은 기억을 몇 초도 안 가 잊고 마는 붕어 같은 엄마다. 자꾸 보내고 싶어 져서 탈이다.








* 소시지 계열을 조리할 때 중요한 팁


햄, 소시지, 어묵 등에는 아질산나트륨과 소르빈산 칼륨과 같은 화학첨가물이 들어있다. 대부분 가공식품에 들어있는 화학 첨가물은 칵테일 효과라고 해서 둘셋 이상을 동시에 섭취하게 되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식품 첨가물로부터 밥상을 지키는 방법이 있어 소개한다.


햄, 소시지, 어묵은 요리 전 칼집을 살짝 내고 뜨거운 물에 2~3분 정도 살짝 데치면 첨가물의 약 80%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백종원의 유튜브에서도 김치찌개를 끓일 때 소시지를 살짝 데쳐서 사용하는 게 좋다고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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