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흔들림
비 오는 월요일이다. 원래 비를 좋아한다. 첫눈을 제외하고 눈 내리는 날은 넓은 창가에 앉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한다. 비가 내리면 우산 쓰고 쏘다니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말에 바다와 산과 호수를 둘러보고 단독주택에 나무도 심었다. 월요병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비가 와서가 아니다. 아마도 주말의 여운이 남아서 인듯하다.
지난 토요일 작은 목련 하나를 <루씨의 꿈꾸는 마당>에 심었다. 그런데 오늘 전주 식물병원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백 목련을 부탁'했었는데 깜박하고 취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가서 돈을 지불하고 나무는 다음에 배달해 주시기로 했다. 내가 산 것 보다 훨씬 크다. 7만 원이라고 하신다. 부탁한 것을 가져오신 것이라서 비싸든 싸든 약속을 지켜야 한다. 목련 꽃차를 하든 뭘 하든 심어야지 싶다. 둘 중 하나는 시골 농막에 심어야겠다.
그런데 나무집에 가서 눈을 감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눈을 슬며시 감고 돌아서는데 글쎄, 사과꽃이 예쁘게 피었지 뭔가.
내가 그쪽에 눈길을 주자 곁에서 사장님이 자꾸만 부추기신다. 사장님은 화분에 둔 것이 잘 살아서 지난해 미니 사과를 15개나 따 드셨다고 하신다. 벌레 안 생기냐고 여쭙는다.
진딧물 약만 주면 벌레도 안 생겨요
사람들이 큰 열매 얻으려고 거름을 주는 데 거름 때문에 벌레가 생긴다고 한다. 좋은 흙에 심고 거름을 주지 않으면 열매가 작지만 벌레가 없다고 설명하신다.
거름과 비료, 농약 등을 파시는 식물병원 사장님이 말씀하시니 맞겠지 싶다. 비를 맞지 않으면 탄저병 역시 없다고 한다. 사장님의 가게는 삼면이 뚫린 곳으로 천정은 투명 폴리카보네이트다. 나도 담장 쪽 유리 글라스 천정 있는 곳에 사과 화분 놓고 물만 열심히 줘 볼까.
저 사과나무는 얼마예요?
사과꽃이라니. 빠져들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또 덥석 샀다. 돌아서는데 스카이로켓이 눈에 밟힌다. 지난번에 세 그루 산 것은 집 뒤에 심었다. 아무래도 앞 쪽에 몇 그루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때 저 자리에서 나도 데려가라는 듯 바라보던 애들을 마저 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비싼 나무이기 때문이다. 한그루에 보편적으로 10만 원 선이다. 하긴 첫 번째 공방에서 비슷한 크기 나무를 15만 원 줬었으니, 전주 식물병원이 훨씬 나은 가격이다.
스카이 로켓도 주세요.
하고 말았다. 결국 스카이 로켓 네 그루와 미니 사과나무 한그루, 목련 한그루가 배달될 예정이다.
가게를 나와서 리모델링 집 현장에 갔다. 입구의 코니카 가문비가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코니카 가문비가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밤이 되면 은은한 태양열 전지로 켜는 조명 빛이 별빛이 나오기 전까지만 반짝인다.
아파트에 돌아오면서 전원생활을 하는 두 친구에게 번갈아 전화한다.
"제니퍼가 전화를 안 받아. 나 또 사고 쳤어. 사과 꽃나무가 자꾸 나를 유혹해서." (나)
"괜찮아, 다 그래. 제니퍼는 오늘 또 나무 샀대. 수국이랑 무슨 나무." (줄리아)
"하하하하, 함께 일 저지르니 좀 낫네." (나)
*미니 사과는 루비에스라고 한다. 루비에스는 빨간 루비(Riby)와 작다는 스몰(small)의 합성어라고 한다. 탄저병에도 강한 편이라니 참으로 신기하다.
저녁에 뜨뜻한 생태탕에 맛있게 밥을 먹고 난 후에 생각하니 두릅 사다 놓은 것을 잊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두릅요리를 해 먹는다. 나는 두릅을 정말 좋아한다.
배부르니 뭘 해 먹을 수도 없다. 남동생이 톡을 보냈다. 단독주택 리모델링 이후 남동생과 대화가 늘었다. 말을 하는데 쩝쩝 소리가 맛있게 들린다. 뭘 그렇게 먹냐고 물었다. 막걸리를 마신다고 한다. 나는 남원 생막걸리가 가장 맛있는데 우리 동네는 안 판다고 하니, 자기네 동네는 판다고 한다. '생'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우리 쌀로 빚은 것이라고 한다. 나도 다 아는 이야기다. ^^
생막걸리에도 '아스파탐'이란 합성감미료가 들어 있는데, 그것이 몸에 좋지 않은 첨가물이니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다.(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원. 나도 즐기면서 말이다. 역시 누나니까 잔소리가 나온다.)
누나, 송명섭 막걸리 알아? 전하고 그거 마시는 중이야.
이것은 누나가 말하는 '아스파탐'같은 것도 없고 마실 때부터 배부른 듯한 느낌도 없으며 다음날 숙취도 없다고 선전을 한다. 갑자기 흥미가 발동한다.
당장 이번 주 중으로 남원 생막걸리와 송명섭 한병 남은 것 가져오라고 하고 전화를 마친다.
그런데 또 카톡방에서 알림이 딩동 한다. 줄리아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바로 '두릅튀김'이다.
이 사람들이 지금 오밤중에 먹고 싶어 죽게 만드네
일전의 <봄의 만찬> 글의 쥔장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두릅 튀김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튀기는 족족 남편이 옆에서 입으로 가져간단다. 줄리아는 은근히 귀여운 스타일이다. 오글오글 남편과 사랑의 알콩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도 두릅나무 시골에 심을까?
얼음조각 몇 개와 물 조금, 튀김가루 반죽에 묻혀 튀긴 것이라고 한다. 내가 로컬 푸드점에서 산 것은 땅두릅인데 역시 나무 두릅이 더 작고 맛있어 보인다.
한참만에 제니퍼가 "맛있겠다. 나도 두릅 심었는데 몇 개 못 따먹었어. 대신 땅두릅도 작년에 심어서 그건 좀 따먹었지. 오늘 데쳐서 먹었는데 나도 튀김 해 먹고 싶다." 한마디 한다.
"제니퍼 너는 대체 뭐하다 이제야 대답하냐." (나)
"자수하고 있었어." (제니퍼)
"자수 같은 거 밤에 하지 마. 눈 나빠져. 하긴 나는 매일 글 써. ㅎㅎㅎ" (나)
"나 오늘 나무 이거 저거 샀어. 너는 뭐 샀다고?" (나)
"고광나무하고 정원 수국 투게더라는 거 샀어." (제니퍼)
"나는 지난 토요일에 작은 목련 하나, 밥태기 나무 하나, 조그만 홍가시 하나도 사서 심었어." (나)
"박태기나무." (제니퍼)
"그거 밥알(밥풀의 전라도 사투리) 같이 생겨서 밥태기 나무 아니야?" (나)
"밥티 나무라고도 한대." (제니퍼)
제니퍼는 야생화와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서 내가 늘 자문을 구한다. 우리들은 두릅 이야기에서 나무 이야기로 마지막에는 나의 글 이야기로 말잇기를 하다가 잠 온다고 하면서 끝을 맺었다.
<집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먹고, 자고, 입는 것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찾아보니 미니 사과나무(루비에스)는 가정에서 용이하게 재배하도록 농촌 진흥청에서 연구해서 개발한 품종이다. 참고 하면 좋을 듯 하다.
https://www.dailimseed.co.kr/?r=home&m=shop&cat=99&uid=4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