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함께라면 더
네 살 난 아이가 앵두 같은 입으로 종달새처럼 말했다.
"엄마~, 나 혼자서도 잘했지~~."
우리 딸이 혼자 신발을 신고 한 말이었다. 신발은 단 두 짝인데 그걸 늘 반대로 신었다. 확률이 반인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오른쪽 신발을 왼편에 왼쪽 신발은 오른편에, 반대로 신고 자랑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귀여워 웃으면서 칭찬했다. "혼자서도 잘하네!"
딸이 다섯 살이 되어 나에게 물었다. (딸은 존댓말을 잘했다.)
"엄마, 아기는 어떻게 세상에 나와요?"
"응~아기는~" 내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에 딸이 스스로 대답했다.
"아~아기는 배로 나오지요? 그리고 배를 딱풀로 딱 붙이는 거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스로 대답하는 아이가 순수해서 웃었다. "그래 그래."
자라서 열 살이 되어 물었다.
"엄마, 이번 주에 운동회 하는데 엄마는 못 오지요?"
"그래, 미안해. 혼자서 괜찮겠어? 엄마가 잠시라도 외출해서 가 볼게. "
"엄마는 어차피 못 올 거라서 못 오신다고 동그라미 쳐서 냈어요."
인쇄물을 가져오지도 않고 스스로 해결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에서 편지가 왔다.
"엄마, 어버이 날을 맞아 편지를 했어요. 시간이 흘러 엄마도 이제 나이가 많아졌네요. 엄마는 왜 그렇게 엄마에게만 뭐를 해 달라고 하냐고 그러시는데 죄송해요.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아빠보다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잖아요....... (중략)...... 이제 앞으로는 엄마도 엄마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세요. 항상 엄마를 사랑하는 딸이."
편지를 받고 울었다. 고등학생이 뭐가 그리 심각하게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는지 미안해서 심각하게 반성했다.
직장생활 3년 차가 된 딸로부터 문자가 왔다.
"엄마, 나 이번 달까지만 직장 다니고 이직 공부하려고 하는데 실망 안 할 거죠?"
"그래, 왜 실망을 하겠어. 네 인생인데."
어른이 되면 눈치를 보고 혼자 선택해서 무엇을 하는 일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는 항상 응원하며 기다려 준다는 것을 알면서 재차 확인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딸은 자주 말한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직장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어요?
나는 딸에게 미안하다. 엄마 직장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가끔 보람을 느꼈다. 감사한 직장생활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 봐도 딸의 직장 생활보다는 낫다고 여긴다.
나는 이제 혼자 잘 논다. 부모가 혼자 잘 놀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을 보면 조금 기분이 나을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여긴다.
엄마도 혼자서 잘해.
알지?
그래도 이번 주 딸들이 서울에서 온다니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엄마가 혼자서 열심히 꾸민 <꿈꾸는 마당>에 우리 딸들이 온다고 생각하니 어서 물건들을 정리 정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같이 마당에 서성이다 보니 내부의 짐 정리가 더디다.
열어 둔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결에 상큼한 향이 일렁인다. 브런치 이웃의 선물이다. 세상은 참으로 신비롭다.
나는 혼자서도 뭐든 잘 하지만 시트랄 향기가 일렁일 때마다 느낀다.
가족 이외에도 친구가 있고 브런치의 이웃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시트랄 향과 함께 충만한 금요일 저녁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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