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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Jul 14. 2021

여름철 텃밭

나의 살던 고향은

아주 먼 옛날(2004년 즈음) 코엑스 몰에서 인형 전시회를 했다. 바로 아래 사진의 꼬물이들이다. 이제 이 인형들은 내 품에 없다. 지인에게 선물한 인형도 있고, 어느 박물관에서 전시한다고 해서 보내기도 했다.


사진으로 남아 여름날 향수를 달랜다. 여름날 수박을 먹으며 행복해했던 시절을 담아 만들었던 인형들이다.

헝겊인형, 루씨 작품


열대야가 며칠 지속되고 연일 낮동안 폭염에 시달린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까지 끼고 지내야 하니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여름날엔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하게 해 놓았다가 아삭아삭 베어 무는 수박이 최고다. 퇴근해서 정원의 풀을 뽑고 가지도 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누나, 깎아먹는 수박 주려고. 수박은 친구네 밭에서 얻은 것이고 자두와 복숭아는 시골에서 난 거야.



친구네 수박이 장마로 인해 일찍 따야 했다면서 무려 네 통이나 가져왔다. 깎아서 맛을 본다. 덜 여물었지만 달다. 바로 이게 여름의 맛이지 싶다. 우선 목마름을 해결한 후 나의 텃밭을 돌아본다. 오늘 나의 텃밭은 토마토가 주렁주렁하다. 내 공간에 누가 올 때마다 고추를 따 주는데 며칠 지나면 또 자란 것들이 보인다. 아까 동생 좀 따 줄걸 그랬다. 텃밭에서 나는 것들은 참으로 신기방기다. 카메라를 고정 설치 해 놓고 보고 싶다.

동생이 가져온 복숭아와 자두

지난번 엄마 생신 식사 때, 텃밭의 고추를 드렸다. 엄마께서는 맵지 않고 맛있다면서 나의 텃밭 고추를 맛있게 드셨다. 이후로 고추를 딸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가져다 드리기에는 하루 일과가 벅차다.


방울토마토들 중 일부는 장마로 인해 물러버렸다. 살펴보고 따 내버려야 할 것들을 미리 따 준다.

방울토마토가 짭짤한 맛이 난다. 소금기가 있는 기분이다. 텃밭과 정원의 풀도 뽑고 사진도 찍는다.


수박을 보면 어린 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수박 가운데를 먹고 싶어서 군침 흘리던 때가 생각나는 것이다. 여덟 식구로 가족 구성원이 많아서 수박을 자르면 할머니 먼저 가운데 드리고, 다음은 아빠와 오빠, 이런 식으로 자른 수박을 가져가다 보면 나는 가운데를 먹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수박을 자르면 가운데부터 먹는다.


물론 우리 과수원 아래에 수박이 널렸지만 기억은 희한한 것이다. 아빠가 따 오신 유독 맛있게 생긴 커다란 수박을 자를 때면, 가운데 부분이 나에게까지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그 아쉬움이 오늘에까지 남아 있으니 말이다.

https://brunch.co.kr/@campo/165

아, 여름엔 모기 빼고 다 좋다. 시원하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수박과 향긋한 복숭아가 있다. 친정집 과수원은 현재 다른 사람이 경작하면서 우리에게는 과일 몇 박스로 그 값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남동생이 과수원에서 수확한 복숭아를 가져온다.

깍아먹는 수박 진한 색은 노랑이다. 색도 특이하게 노랑인데 맛있다.

아빠가 만들어주셨던 원두막에서 어린날 우리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놀았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철없이 뛰어놀며 수박을 먹던 시절이 떠 올려지는 바로 그곳으로부터 온 복숭아다.  


글을 쓰고 있는 데, 동생으로부터 톡이 왔다. 바로 막걸리 사진이다. 지난번 사진과 유사하지만 안주가 다르다.


누나, 나도 시골에 오이 고추랑 수박 심어야겠어.


"너 그러면 매일 물 줘야 하는데 시내 살면서 어떻게 해."하고 내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러니까 나이 60살 넘어서 시골 가서 살면서 그렇게 한다고."라고 동생이 답한다.


"어느 세월에 그런다니. 공방 텃밭에서 오늘 고추 땄는데, 수박 씨앗 심은 것은 아직 덩굴만 무성하다. 베란다에 고추 심으면 잘 된다더라. 한번 심어봐."하고 내가 말했다.

남동생의 막걸리 안주

동생은 자기가 안주를 만들었다면서 달걀을 넣고 재료를 볶았다고 한다. 요즘엔 남자들이 요리를 잘하는 것 같다.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매형이 닭발을 사다가 직접 닭발 볶음을 만들어 놓고 조금씩 먹는데, 저번 날 내가 안주로 반을 먹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만 보면 동생은 집에서 혼술(막걸리)을 마실 때 문자를 한다.

깨까지 뿌려서 그럴듯한 모양새. 남편의 요리 솜씨가 점점 늘고있다.
남편의 닭발볶음

한참을 서로 오이 고추가 맛있네. 가지 고추도 괜찮네 하면서 텃밭 이야기를 하다가 내일을 위해 쉬자고 하면서 문자를 멈췄다. 그 옛날 꼬맹이가 다 커서 막걸리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니.....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우리의 복사꽃 시절 이야기를 소환하기로 한다. (브런치에 '원두막의 과일들'이란 글을 쓸 때 나는 브런치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때의 열정이 떠 오르며 미소 짓게 된다.)

https://brunch.co.kr/@campo/6


오늘의 날씨는 맑거나 비 소식 없이 흐리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주말까지 계속 비 소식이니 정원의 나무들에게 너무 많은 물을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화분들은 땡볕에 목말라합니다. 화분에는 물을 줘야겠네요. (2021.7.14.)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


https://brunch.co.kr/brunchbook/memorie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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